1974년 1월 14일, 일간 스포츠
아르바이트
아르바이트를 안 해본 대학생이 있을까?
흔히들 하는 가정교사 - 경기고 卒, 서울大, 경험 多, 책임지도, 입주 원 - 도 좋은 재미있는 아르바이트일지도 모른다.
내 경우 지난 어느 여름 웬지 아르바이트는 꼭 햐야될걸로 생각했다.
친구와 돈을 합쳐 그래도 전공분야를 해보겠다는 꿈을 갖고 염천교 가죽상회에서 쇄가죽(한마리)를 샀다.
좁은 방에 가죽을 펼쳐놓고 그 고약한 냄새를 맡으며 당시 아직 유행하지 않던 피터 막스의 별이며, 히피마크며를 그렸다. 파라핀 끓이는 연기에 기침을 연발하고 염색물감이 잘 안 먹어 붓뒤로 막 문질러대면서도 계속 라이오에 박자를 맞췄고, 드디어 외국 책을 보고 디자인한 가방이 만들어졌을 때 난 너무 좋아 흥분했었다. 팔아버릴 생각을 하니 아까왔다.
아주 잘 팔릴것 같았고 친구와 둘이서 그 많은 돈을 어떻게할까? 여행? 등록금에 보태자, 아니 밎천으로 하자, 의견은 계속 비약했었다. 그러나 사람들의 첫 마디는 “ 아유 비싸.”였다.
가격을 푹 내렸다. 오징어, 찐빵, 콜라라 값은 빼고라도 엄마한테 빌린 원금도 모자랐다.
기가 막혔다. 너무 허무했다.
그러나, 비참한 상태로 남은 가죽 조각들을 바라보다가 그걸 이용할 방법을 생각했다. 작은 지갑, 벨트, 시계줄…… 가격도 쌌다. 그런데 그 히피 마크와 별은 인기가 대단했다. 피터 막스 씨가 우리를 살려준 셈이다. 이대 앞 가게에서는 주문을 재촉하고, 우리는 신이 났고, 돈도 많이 생겼다. 정말 잘 팔렸다.
거리에서 우리가 만든 가방을 폼나게 메고 가는 사람을 보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고, 낡은 청바지에 별을 그린 벨트를 한 대학생을 보면, 뛰어가 “그건 내가 그린 거라오.” 말을 걸고 싶었고, 아케이드에서 홍콩제라고 바싸게 팔릴땐 어이가 없었고, 점점 여러가게에 유사품이 진열될 때 약이 올랐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온다. 좀 더 많은 지식과 실력을 쌓을 중요한 시간들을 낭비한건 아닌가 불안도 하고, 돈계상에 밝아진 것이 쑥스럽기도 하지만, 난 그해 그 여름 열흘간의 즐거운, 멋진 여행을 했었고 그것으로써 만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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