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얼마전 ‘센추럴 파크’에서 폴 싸이몬이 노래한다(11월 5일)
는 소식을 듣고는 금방 “어머, 꼭 가봐야지. 어디 한국에서라면 꿈이라도 꿔 볼 일인가?” 하며 마음이 들떴었다.
그 옛날 <Simon and Garfunkel> 시절 부터 내가 얼마나 좋아한 가수인가…..
어두컴컴한 다방에 앉아 그냥 시간 보내던 대학시절이 생각나고, 친구들 얼굴이 떠오르기도 했다.
“얘, 나 폴 싸이몬 공연 봤다. 역시 많이 늙었더라…..”하며 자랑할 생각까지 했다.
그런데, 공연날이 목요일? 가족과 함께 여행을 떠나기로 한 바로 전 날이었다.
여름 내내 동네에서 하는 ‘데이 캠프’에만 보내고 애들 좋아할 일을 못해줘서 미리부터 벼루어 날을 잡아 두었는데, 옷가지 등을 챙기고, 김밥도 싸야지, 준비할 것이 무척 많았다.
그렇지만 폴 싸이몬은 일생에 한번 있을까한 기회인데, 게다가 “한번 같이 안 가볼래요?” 하고 아는 사람이 전화까지 걸어왔다. 갈등이 생겼다. 억지로라도 가볼까? 일찍 가서 자리 잡고 있다가 중간 일찍 나오면 되잖아. 정말 뉴욕 아니면 맛 볼수 없는 절호의 챤스인데. 그리고 내가 얼마나 좋아하는 가수인데 말야. 궁리를 했다. 궁리할 일이란 남편과 가족을 설득 시키는 일이었다.
분명히 못 마땅해 할 남편에게 구구절절 구차하게 말을 늘어 놔야 할 일에 그만 미리 지쳐버리는 기분이 들었다. 휴~. 수없이 많은 사람이 모일텐데, 오고 가는 차편은 또 얼마나 복잡할까. 암만 그래도 밤 늦게야 집에 오게 될거야. 관두지 뭐. 놓치고 사는게 한 두개인가, 어디.
그리고는 공연이 있는 날, 아침부터 비가 오락가락 하는 날씨에 공연히 창밖을 내다보며 신경을 쓰면서도, HBO에서 공연 중계를 해주는 것 조차도 놀러 갈 준비에 하도 바빠서 못보고 말았다.
뉴욕에 살면서 미국이니까, 더구나 뉴욕이기 때문에만 할 수 있고,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것들을ㅇ 한 껏 내 생활에 포함시키며 살아보려고 했다. 그래야만 아직도 내게는 어색하기만 한 ‘이민 생활’로 인해 당하는 외로움, 보고 싶고 만나고 싶고 얘기하고 싶은 가족들, 친구들을 멀리 둔 억울한 생활을 그나마 좀 보상하는게 된다고, 내 나름대로 생각해 낸 것이었다.
그래서 주말엔 한가한 시간을 내서 박물관에도 가고, 센투럴 파크 연못가에 앉아 쉬기도 하고, 소호나 그리니치 빌리지에 나가 구경을 하면서 재미있는 남미산 물건을 사 모으기도 하고, 브로드웨이 뮤지칼도 1년에 한 두번은 관람하며 또 뉴욕서 가꺼운 곳으로 단풍 들땐 허드슨 강 근처 쯤에 소풍을 갔다가, 돌아 오는 길엔 ‘앤틱 스토어’에도 들리며 그렇게 살고 싶었다.
친구랑 어느 오후엔 ‘웨스트 브로드웨이’ 찻 집에서 카푸치노 커피 한잔 마시며 얘기도 나누고. 또 매트 오페라는 …… 등등
잡지 책을 뒤적여서 안ㄴ 것도 많고 여기저기서 줏어들은 것도 많았다.
그런데 그게 잘 안됐다. 잘 안되는 정도가 아니라 꼭 해야 될 일조차 뒤로 미루며 시간은 어김없이 1주일 단위로 정말 꼭 책 장 들치듯 휙휙 지나가버리고 말았다. 이걸 깨닫기는 실은 오래 되었다.
그래도 아직도 <뉴욕> 잡지책을 꼬박꼬박 보면서 새로 나온 영화는 뭐가 있나, 또 어느 뮤지움에 특별 전시가 있는지를 찾아보고 달력에 표시를 해놓기도 한다. 물론 그 뿐이다.
처음에 내 뜻대로 생활이 되어지지 않음을 알았을 땐 이게 뭐람, 뉴욕에 산다고 뭐 다른거 하나 없고 하면 진정 화도 났었다.
그러나 아직도 그 꿈에의 희망은 버리지 않았다.
쉽게 시간을 내어 문화생활을 즐길 순 없지만 대신에 손쉬운 방법을 터득했다. 서울에서라면 결코 볼 수 없는 맨하탄 섬에 놓여진 수 많은 멋진 다리들을 감상한다든가, 하루 종일 60년대, 70년대 흘러간 팝송만을 하는 라디오를 들으며 옛날을 회상하다든가.
매일 아침 저녁 7번 트레인 유리창을 통해 바라다 보이는 맨하튼 빌 딩 술의 모습을 보는 일, 또는 오고가며 만나는 각 나라 사람들의 특징을 살펴보는 일 등은 분명 이곳 뉴욕이 아니면 해볼수 없는 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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