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신선한 충격과 큰 꿈
새벽에 전화 벨이 울린다.
“나,OOO야, 기억나니?”
기억이 안난다. 상대방은 열심히 자신을 설명한다.
아아- . 어렴풋이 그 이름이 얼굴이 떠 오르는 듯 하다. 같은 과가 아닌 대학 동창이다.
네가 뉴욕에서 열심히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어. 실은 …” 하면서 그 동창은 결국 뭘 좀 알아봐 달라고 한다.
이 곳에 살면서 한국에 있는 친지들로부터 뭔가를 ‘알아봐 달라’는 부탁을 많이 받는다. 어떤 어떤 상품의 시장성 같은 것을 문의해 오기도 하지만, 주로는 대학이나 예는 관계의 학교에 관해서이다. 요즈음 ‘조기 유학’이 유행이라 기숙사 있는 사립 중고등학교를 물어오는 경우도 많다.
나도 10년 전, 친구가 학교를 알아보고 서류를 보내줘서 미국엘 왔다.
이 새벽에 온 전화의 내용은, 미대를 나오고 고향에둘아가 아이 키우며 살림하면서 한편 미술 학원도 운영하며 착실히 그림 그리고 전시회도 종종 열어 왔었는데, 이제 한계를 느낀다고ㅎ했다. 그래서 이제 좀 더 넓은 세상에 나와, 새로운 것을 보고 피부로 느끼며, 새롭게 자신의 작품 세계를 펼쳐 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는 사람 하나 없고, 뉴ㅠ욕에 대해 하나도 모르니까 좀 알아봐 달라는 것이었다.
이 경우 나는 40이 다 된 가정주부인 동창생의 새롱ㄴ 세ㅖ를 경험하려는 뀸을 높이 평가, 1, 2, 3…. 번호를 붙여가며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심히 써서 보냈다.
또 한번은 내가 아는 사람이 잘 아는 어느 지방 미술교사인데, 자신의 작품에 신선한 충격을 주기위해, 세계 미술의 중심지인 뉴욕에서 그것도 꼭 그리니치 빌리지나 소호에서 지내고 싶으니, 방학동나 한달간 있을 장소를 찾아 달라는 부탁을 받았어다. 참 용감한 독신 여성의 자유가 부럽기도 하여, 그 험한 소호 지역에 영어 한 마디 못하는 여자가 지낼 곳을 알아 보느라 사방팔방 전화해 보며 애쓴 적이 있다.
그런데, 최근 받은 부탁 편지는 도저히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아무런 답을 봇하고 있다.
‘... 내가 잘 아는 가정인데 막내 딸을 미국에 보내, 국민학교에 들어가기전 유치원 과정을 미국식으로 받게하여, 어린 나이에 보다 더 큰 꿈을 키워주려고 한단다….. 부유한 집이니 부모가 한 달에 한 번 쯤 미구에 가서 아이를 만나 볼 예정인데… 한 1년 아이를 친 딸 처럼 데리고 있어 줄 가정을 좀 알아봐 주렴. 혹 네가 좀 만타 줄수는 없는지?...’였다.
6살 아이를 어떻게 홀로 미국에 보내겠다느 ㄴ생각을 할 수가 있을까? 그 부모에게 기가 질려 답장을 못 보내고 있는 것이다.
세월이 엄청나게 바뀌고 특히 한국에서는 옛날의 10년이 요새 며칠이라는 것도 많은 면에서 경험을 하고 있다.
그러나 앞서가는 생각이 중요하고 ‘큰 꿈’과 ‘신선한 출격’ 다 참 그럴 듯한 말이기는 하지만, 6살 조기 유학? 좀 너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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