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August 8, 2019

조선일보: 노려의 맨해튼 저널/ 독립기념일과 응급실

2002년 7월 5일

내일 모레 올해 독립기념일에 무얼 할까? 머리가 멍하다. 별로 하고 싶은 것도 없고 그저 쉬고만 싶다.
이제 아이들도 가 커서 한 아이는 캠프라고 떠나있고 또 큰 아이도 자기 일로 바쁘다.
더군다나 테러 공포까지 겹쳐있어서 어디 특별히 가는 일도 겁나는 일이긴 하다.
온 미국 아니 온 셰게를 뒤흔드는 테러의 공포가 아니라 너무나 퍙온한 때에 내가 맨해튼에서 당한 테러가 생각난다.
어딜가나 교통이 막히고 복잡하고 덥고 지치고하면서도 우리 가족은 거의 매년 7월 4일에 맨해튼 불꽃 놀이 구경으라든지 하여간 어딘가를 갔었다.
한국에서도 추석같은 명절이면 주로 명절 특선이라고 떠들어대는 영화를 보러 가곤했었다.ㅔ
그 때 느끼는 것은 두가지다.
ㅍㅅ 사려고 줄서서 기다리고 나서 겨우 다음 회를 사곤했기 때문에 절대로 명절에 영화 보러 가는게 아니라는 것과 이때 서울 사대문을 닫으면 서울이 얼마나 한가하고 좋을까 하는 것이었다.
가족과 함께 지내라는 캠페인에도 불구하고 크리스마스 때마다 친구들이랑 어우려 가정 밖에서 놀기 일쑤였던 내가 내 가정을 갖고도 어디 가는 것을 좋아하기는 마찬가지이다.
몇 년 전 미국 독립기념일에 가깝게 지내는 이웃 두 딥과 범심ㅇㄹ 잘 해먹고 나서 스테이션 웨고에 끼어 앉아서들 맨해튼으로 놀러 나갔다.
꼬마들이 몇몇 있었으므로 우리는 센튜럴 카프 근처에 차를 세우고 FAO 라는 대규모 장난감 가게에 들렀다. 그날 특별한 이벤트도 많았고 아이들 뿐 아니라 이런 곳엘 처음 와보는 어른들도 동심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평송 팽팽한 긴강감이 들던 맨해튼 거리도 슬슬 걷는 관광객들로 한산하기까지 했다.
근처에서 디즈니 가게며 구경 다니다가 시장기가 돌자 즐거운 기분의 여세를 몰아 우리는 차이나타운으로 가서 실컷 맛있게 먹었더. 거기 까지는 좋았다.
기름진 음식을 잔뜩 먹고 나온 한 대가 슬슬 차이나타운 거리를 거닐때 쯤 '따다다다 펑펑...' 여기저기서 폭죽 터지는 소리가 났다.
하겐 다즈 아이스크림을 손에 들고 우리는 모두 리틀 이태리 쪽으로 걸어갔다.
식당이 즐비한 거리의 뒤편에는 문을 닫은 생선가게며 우중충하고 냄새가 났지만 아랑곳 앟고 걸어갔다.
아이들은 일행과 다른 쪽 거리로 가고 있었고 남편이 내 앞에서 걷고 있었다.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는 것은 '따다다다닫 따딱...'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과 동시에 내 이마에 먼가가 와서 닿으면서 '핑~' 하는 느낌을 받은 것이다.
무의ㅣㄱ적으로 한 손에 들었던 냅킨을 이마에 대고 남편을 불렀다.
부르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는 남편에게 냅킨을 젖혀 보여주었다. 순간은 남편은 다시 뒤돌아 걸어가면서 아이스크림을 땅에 던져버렸다.
어떻게 다른 쪽에 있던 일행들과 만났는지 누가 어떻게(그 때는 셀룰러 폰이 없었다) 911을 불러 응급차가 왔는지 모른다.
하여간 어둑어둑해지는 복잡한 차이아타운 길 뫁ㅇ이에서 사이렌을 울리며 응급실로 ㅏㅆ다. 일행은 뒤쫓아 왔다.
거기서 이마를 몇 바늘 꿰맸고 자정이 다 되어 돌아가는 스테이션 웨곤 차 안엣 한 아줌마는 바빠서 아침에 기도를 못했다고 죄스러워 했다.
"아니 )) 엄마가 기도 안했는데 왜 내가 다쳐요?" 하면서 오히려 내가 위로해주었다.
그 해 더운 여름 상처에 땀이 흐르지 않도록 조심하던 생각이 난다.
내가 당한 그 테러가 그 이후 내 태도에 전혀 부정적인 영향을 주기 않았지만, 얼해 독립기념일이 다가와도 별 감흥이 없는 것은 내가 늙은 탓인가?
그만큼 9.11사태가 일게 모르게 내 정서에 영향을 준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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