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드디어 5월.
‘화창한 봄날’이란 말이 어울리는 계절이 되었다.
촌스럽기까지한 노란색의 개나리와 하얀 목련이 흐드러지게 피기까지 올 봄은 내게 참 어렵게 찾아왔다.
사실 그 동안 ‘솔솔 부는 봄 바람 쌓인 눈 녹이고, 잔디 밭에 새싹이 파릇파릇 나고요….’하는 고향의 봄을 잊고 살아왔었다.
씨 뿌려 놓고 오시겠다는 것을 순전히 내 욕심만 생각하고 이왕 오실건데 좀 빨리 오시라고 재촉하여, 지난 2월에 오신 친정 어머니는 오시면서 부터 봄을 기다리셨다.
겨울당ㄴ 눈도 없이 포근했던 2월에는 어서 춘 3월이 오기를 기다리셨고, 3월이 되자 계혹 내리는 눈에 언제 봄이 오냐고 기다리셨다.
하루 이틀 햅칭에 성급히 화분들을 내다 좋으시고는 다시 화분을 들여 오시곤 하면서 무척 우울해 하시고 속상해 하셨다. 또 화도 내셨다.
4월이 되어도 날씨가 춥기만 하자 “대동강 물도 녹을 때가 지났는데…” “지금 쯤은 씨를 뿌려야 하는데…” 하시며 하루 하루를 세듯이 날씨를 살피셨다.
그러니 나는 어머니께서 아이들을 봐 주시는 덕에 회사를 다니는 처리라 덩달아 매일 어머니랑 같이 오늘은 몇 도나 되는지, 왜 이렇게 봄이 안 오는지 신경을 곤두 세우면서, 날씨와 어머니 기분을 함께 살피게 되었다.
비가 오고 춥고 하다가 어쩌다 따듯한 날은 “ 엄마 걱정 마. 오늘은 날이 따듯할 거래. 어머 정말 봄 날씨네! 이제야 뭐 더 춥겠어?” 하고 먼저 어머니의 기분을 맞추곤 했다.
어느 날은 어머니께서 오히려 “ 얘 걱정 마라. 나 이제 봄 안 기다리기로 했어.”라며 날 위로해 주셨다.
내 평생 올해 처럼 봄을 기다려 본 적이 없다.
그러다 보니 눈과 찬 바람 속에서 딱딱한 땅으로부터 삐죽이 솟아 나는 풀잎도 발견했고, 마른 가지에 눈에 보일듯 말듯 물이 오르는 것도 알아 챌수 있었다.
아직도 날은 으시시 춥지만 어머니는 요 며칠 사이 부쩍 자라난 부추를 뜯어 부추전을 맛있게 만들어 주셨다.
어쨋던 봄은 기다렸거나 안 기다렸거나 신비한 자연의 섭리대로 왔다.
이 봄은 소녀ㅓ럼 감상적이신 우리 어머니가 한껏 즐기실 수 있는 명실공히 “봄’이 되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비록 한국에서 맛 보던 푸른 들판에 아지랑이 피어 오르던 그런 봄은 없었으나, 이나마 갑자기 여름이 되어 버릴까 미리 걱정이 되기도 한다.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