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9월 10일
이번 노동절 연휴를 개학 준비로 노동을 하면서 지냈다.
개학 전에 노동절로 휴일이 있다는 것은 나처럼 게으른 엄마로서는 참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그야말로 방학하는 날 던져두었던 아이들 책가방을 찾아 놓고 한글학교 가방까지 아예 챙겨두기도 했다.
준비해야 할 특별한 일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오랫동안 신나게 놀기만 한 아이들에게 학교가는 분위기를 잡아주는 뜻에서 일부러 백 투 스쿨( Back to School)샤핑도 데리고 가고 연필도 미리 ㄷ 깍아서 필통에 넣어 두라고 시켰다.
집안 여기저기 굴러 다니는 동네 도서관에서 빌리 온 책들도 한 곳에 모아두게 하고, 노틉ㄱ, 폴ㄷ, 런치 박스 등을 꺼낸 놓는 일 등 '학교 갈 준비'를 아이들이 직접하게 했다.
아이들도 재미있는지 큰 일이나 하는 듯 열심히 집안을 뛰어 다니며 책이며 연필을 찾아 내곤 했다.
아이들이 이만큼 큰 것이 실감이 나기도 하고 실감이 안 나기도 하다.
큰 애가 처음으로 널서리 스쿨을 갈 때, 선생님 인텁 며칠전 부터 아이가 영어를 못하는 걱정과 내가 선생님과 이야기를 해야 할 일에 너무나 흥분이 되었었다.
할말을 미리 영어로 생각해 두고 머리 속으로 볓번이나 연습을 했고, 막상 그 날 아침엔 마치 시험보는 학생처럼 떨리는 마음으로 아이 손을 잡고 학교로 향했었다.
무사히 10분간의 인터뷰를 끝내고 나올 때 그제서야 내가 드디어 학부모가 되었다는 감격을 하기도 했다.
한국에 있는 동생이 "선생님 만나러 가서 다 영어로 말해? 야 서로 간에 오해가 많겠구나" 놀리던 말이 아직도 지난 날이 농담만은 아니다.
첫번 선생님 면담 이후로도 매년 아이들 학교에 가는 일이나 선생님을 만나는 일에 늘 조금은 흥ㅂㄴ이 되곤 한다.
어쨋든 학부모 초년생은 벗어나서 두째 아이가 1학년이 되는 올해는 아이들에게 직접 준비를 시키기도 하면서 마음이 느긋하다.
매일 매일 그날이 그날 같으면서도 어쩌다 생활의 리듬을 깨는 일이 생기면 가슴이 설레이는 대신에, 그렇지 않아도 바빠 죽겠는데 이런 일 까지 생긴다고 짜증부터 나는 어른 들의 삶 속에도 이렇게 1년에 한 두번씩 여직껏이 생활을 정리하고 앞날을 준비하는 '개학'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긴장된 마음으로 오랜 만에 만날 친구들, 새로운 선생님에 대한 기대와 또 항상 큰 애들로만 보이던 높은 학년으로 나도 올라간다는 가슴 뿌듯함도 느껴 볼것이다.
어쨋든 긴긴 여름이 지나고 드디어 개학이다!
이제부터 또 다시 매일 아침 도시락을 싸줘야 하고 저녁엔 다음날 입을 옷을 꺼내두는 일을 시작해야 하지만, 하루종일 아이들이 놀 꺼리를 마련해주느라 머리 쓰지 않아도 되니까 우선은 홀가분한 기분이다.
나도 개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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