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4.7
굳어진 나쁜 말 습관 조금은 조심해야
어린 시절 어머니와 아버지가 우리들 앞에서 말씀하시다가 갑자기 일본 말을 하시기 시작하면 '흥 무슨 비밀이 있구나.'했었다. 너무나 궁금해서 혹시 무슨 실마리가 되는 말 한마디라도 있을까 귀를 곤두세워보기도 했다. 나의 부모님 뿐 아니라 그 당시 많ㄴ은 어른들이 일본말이 무슨 큰 재산이나 되듯 적재적소에 써머근 것이 약 오르지만 부럽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니 우리 부모님들이 이중언어를 구사하셨던 것이다.
'말'은 그야말로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똑 같이 궁평하게 주어진 자본금과도 같다. 자본금을 불리고 늘리고 하는 것이 각자의 노력에 따른 것인 것처럼 지금 우리가 미국에 살면서 '영어한마디'에 피눈물 나는 노력을 한 덕분에 필요에 따라 한국말과 영어를 골라 쓸 수 있는 자유와 복을 누리고 있으니 ㄱ것은 정말 큰 재산이 아닐 수 없다. ㄱ러나 '재물'처럼 '말'도 어떠ㅓㅎ게 쓰느냐가 문제가 아닐까한다.
미국 사람이 있는 앞에서 우리끼리 한국말로 막 떠들고 웃고 하는 것, 한번ㅉㅁ 입장을 ㅂ꾸어 생각해보자. 나라면 ㅈ저 사람들이 내 흉을 보고 있ㅈ나 ㅎ않나 기분이 좋지 않을 것 같다. 인도사람이 하고 있는 가게에 갔을 때 그들이 손ㅇ님이 있거나 말거나 자기들끼리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하는 것을 보면 왠지 미개한 사람처럼 보이기도 한다. 가게에서 한국말로 크게 전화를 하면서 한손느로 돈을 거슬러준ㄴ 식의 태도는 그들이 전혀 모 알아듣는 말을 한다는 것과 동시에 손님ㅇㄹ 맞느 ㄴ태돆지 합해서 불친절하다는 느낌을 줄것이다.
옛날 우리 어머니들과는 달리 우리는 평상시도는 자주 대화중에 영어를 집어넣는다. 우리사이의 애교라 하겠다. "어머나 큰일 났네. 우리 애 픽업할 시간 지났어." Pick up은 미국와서 처음 동네 아줌마들한테 배운 현지생활영어이다.
그런데, 한가지 꼭 짚고 넘어가고 싶은 말이있다. 실컷 한국말로 잘 하다가 왜 꼭 유태인이란 말을 할 때 '주이시'라고 하는 지 모르겠다. 우리는 빗ㅅ하게 생긴 미국 사람들 중에 누가 유태인이고 누가 독일 사람인지 잘 구별하지 못한다. 항상 날카로운 자격지심을 갖고 있ㄴ ㄴㅇ태인들이 한국 사람들이 주이시 주이시 하는 것을 듣는다면 어떻겠는가. 미국 연합군이 그들을 해방시키고 히틀러가 자살한 4월이면 유태인들의 행사도 많고 텔레비전마다 특집방영을 하곤 한다. 올해는 우리처럼 그들도 해방 60년이 되는 해이다.
이미 굳어진 습관이라 해도 조금은 조심을 하자.
Thursday, September 12, 2019
노려의 살아가는데 필요한 에티켓/ 옷차림3
2005.3.31
개성보다 먼저 분위기 맞추어야
봄이 다가옴을 알리는 것 중에 하나가 여기저기서 날라 오는 초대장들이다.
"무슨 옷을 입을까"는 '오늘 뭐 해먹지'와 마찬가지로 누구나가 갖고 잇는 영원한 질문이다. 직장 인터뷰 같은 중요한 날이 아니더라도 아이들 학교 선생님이나 집안 어른으르 만나 뵈러 갈 때, 파티다 음악회다 동창회다 온갖 행사들 뿐 아니라 매주 교회 갈 때 그리고 친구 만나러 갈때... 아니 거의 매일매일 우리는 무슨 옷을 입을까 고민한다.
작장에서 일할 때 입는 옷과 파티에 입고 가는 옷이 분명히 다른 만큼, ㅇ떤 경우이던 장소와 모임에 맞지 않는 동떨어진 옷을 입는 일은, 어떻게 생각하면 무례한 행동이나 마찬가지일수도 있다. 물론 자기만의 스타일이 있고 남다른 독특한 개성을 나타내고 싶기도 하겠으나, 지성인이라면 상황에 맞는 '드레스 코드'를 그 보다 한발짝 먼저 생각해야 할것이다.
지난 달 딸아이 학교에서 한국학생들 행사가 있다고 해서 갔었는데, 우리 처럼 잘 입고 있는 사람이 없어서 좀 어색했었다. 대학생들 행사가 어떨 것이라는 상식부족에 경험 부족이었다. 만약 초대장에 '블랙 타이'라고 적혀있을 때에는 파티의 분위기를 최고급으로 하고자하는 초대인의 의도에 맞추어 주어야 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옷 땜에 고민 하는 잉는 분위기에 알맞은 옷을 입는다는 일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소나마 옷 고민을 줄여주는 방법이 있다.
만약 옷장 안에 검저액 정장 한 벌이 있고 감은색 재킷이나 바지 또는 스커트, 스ㅜ에터, 티혀츠가 아나힉이라도 갖추어 있으면, 그 고민은 좀 수월해 진다. 특히 뉴욕에서는 검정 옷을 입고 있으면 눈에 띌 염려는 없다.
검은색이 주는 의미와 그 느낌은 수없이 많다. 때에 따라서 지적이며, 화려하며, 엄숙하며, 안정감을 주며, 힘 있어 보이며, 믿음성을 주며 또한 고독하기도 하고 대중적이기도 하다. 또 신비한 분위기까지도 연출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위기를 못 맞추었을 경우도 얼마든지 있다. 정말로 매너 있는 행동은 이때에 자신의 어울리지 않는 차림을 인정하고 재미있는 한마다 농담으로 변명을 하고느 ㄴ곧 자연스런 태도를 유지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어떤 농담을 할지는 자신들의 유머감각에 맡길 수 밖에 없다.
이미 4월에는 가보고 싶은 아시아 미술 전시가 있고, 잘 아는 화가의 개인전, 한국서 오는 음악회 하나, 뉴욕 동포음악인이 음악회 하나 그리고 결혼식 하나가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매일 입고 다니는 검정색 말고 올봄에는 요새 유행하는 핑크색 화사한 옷 하나 장만해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개성보다 먼저 분위기 맞추어야
봄이 다가옴을 알리는 것 중에 하나가 여기저기서 날라 오는 초대장들이다.
"무슨 옷을 입을까"는 '오늘 뭐 해먹지'와 마찬가지로 누구나가 갖고 잇는 영원한 질문이다. 직장 인터뷰 같은 중요한 날이 아니더라도 아이들 학교 선생님이나 집안 어른으르 만나 뵈러 갈 때, 파티다 음악회다 동창회다 온갖 행사들 뿐 아니라 매주 교회 갈 때 그리고 친구 만나러 갈때... 아니 거의 매일매일 우리는 무슨 옷을 입을까 고민한다.
작장에서 일할 때 입는 옷과 파티에 입고 가는 옷이 분명히 다른 만큼, ㅇ떤 경우이던 장소와 모임에 맞지 않는 동떨어진 옷을 입는 일은, 어떻게 생각하면 무례한 행동이나 마찬가지일수도 있다. 물론 자기만의 스타일이 있고 남다른 독특한 개성을 나타내고 싶기도 하겠으나, 지성인이라면 상황에 맞는 '드레스 코드'를 그 보다 한발짝 먼저 생각해야 할것이다.
지난 달 딸아이 학교에서 한국학생들 행사가 있다고 해서 갔었는데, 우리 처럼 잘 입고 있는 사람이 없어서 좀 어색했었다. 대학생들 행사가 어떨 것이라는 상식부족에 경험 부족이었다. 만약 초대장에 '블랙 타이'라고 적혀있을 때에는 파티의 분위기를 최고급으로 하고자하는 초대인의 의도에 맞추어 주어야 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옷 땜에 고민 하는 잉는 분위기에 알맞은 옷을 입는다는 일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소나마 옷 고민을 줄여주는 방법이 있다.
만약 옷장 안에 검저액 정장 한 벌이 있고 감은색 재킷이나 바지 또는 스커트, 스ㅜ에터, 티혀츠가 아나힉이라도 갖추어 있으면, 그 고민은 좀 수월해 진다. 특히 뉴욕에서는 검정 옷을 입고 있으면 눈에 띌 염려는 없다.
검은색이 주는 의미와 그 느낌은 수없이 많다. 때에 따라서 지적이며, 화려하며, 엄숙하며, 안정감을 주며, 힘 있어 보이며, 믿음성을 주며 또한 고독하기도 하고 대중적이기도 하다. 또 신비한 분위기까지도 연출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위기를 못 맞추었을 경우도 얼마든지 있다. 정말로 매너 있는 행동은 이때에 자신의 어울리지 않는 차림을 인정하고 재미있는 한마다 농담으로 변명을 하고느 ㄴ곧 자연스런 태도를 유지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어떤 농담을 할지는 자신들의 유머감각에 맡길 수 밖에 없다.
이미 4월에는 가보고 싶은 아시아 미술 전시가 있고, 잘 아는 화가의 개인전, 한국서 오는 음악회 하나, 뉴욕 동포음악인이 음악회 하나 그리고 결혼식 하나가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매일 입고 다니는 검정색 말고 올봄에는 요새 유행하는 핑크색 화사한 옷 하나 장만해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노려의 살아가는데 필요한 에티켓 /옷차림2
2005. 3.24
신사복에는 불문율이 많다
부활절 아침이면 파스텔 색조의 드레스에 모자까지 쓴 여자들이 화사한 복장과 겹겹치마를 입은 어린 여자아이들의 예쁜 모습에서부터 지겹도록 긴긴 겨울을 벗어던진 희망의 새봄을 맛본다.
어느 때건 어느 장소이건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여자들의 의상이다. 여자들이 어떤 오을 입었는지를 보는 것도 은근한 하나의 재미이기도 하다. 한편 결혼식을 가나 장례식을 가나 음악회를 가나 남자들 옷은 그저 유니포 같아서 흥미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 ㅈ중에서도 유난히 차림이 세련된 남자에게는 점수를 많아 줘야할 것이다.
여자들 정장에는 정해진 법이 별로 없는 반면에, 남자들의 옷차림에는 때와 장소에 따라 목에서부터 발끜까지 신사로서 갖추어야할 생각보다 많은 불문율이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우선 일반적으로 양복을 차려입었을 때에 상식적으로 챙겨야할 기본을 알아보도록 하자.
첫째, 와이셔츠 칼라가 목을 너ㅜ 조르거나 느슨해서는 안된다. 대략 다 똑 같아 보이는 와이셔츠이 칼라에는 양쪽에 단추를 끼우는 것 Botton Collar ,끝이 둥그런 프렌치(French), 좁다란 스트레이트(Straight)그리고 양끝이 위에서 제껴진 날개(Wing)식 등이 있다.세련된 남자는 자기 얼굴 형태나 체형에 맞는 와이셔츠 칼라를 고를 줄 알아야한다.
둘째, 넥타이, 가장 쉽게 멋을 낼수 있는 부분이 넥타이다. 별로 할 말이 없을 때 '어머 넥타이 멋있네요.'하면 남자들은 너무 좋아한다. 넥타이의 색이나 넓이는 마음대로지만, 넥타이의 길이는 예민하게 정해져 있다. 즉 너무 길어도 너무 짧아도 안 되고 넥타이의 끝이 허리때 윗선에 살짝 닿아야 한다.
뚱뚱한 남자의 넥타이가 배 중간까지 짧게 내려온 것은 게그 컨서트 감이다. 아주 뚱뚱하 사람은 엑스트라 롱 사이즈 넥타이를 사야만 할것이다. 한때 유행하던 넥타이\핀은 꽂지 않은 것이 요즘 트랜드인것 같다.
셋째, 양복 소매와 바지 길이도 쉽지 않은 부분이다. 새 옷을 사면 대부분은 길이를 줄이거나 고쳐야하는데 다행히 세탁소엘 가면 의례히 잘 알아서 해준다. 다만 혹시라도 양복의 소매가, 팔을 느려 트린 자세에서 손을 오므렸을 때 손가락이 급혀진 부분까지 닿지 않거나 접혀질때는 고쳐야 할 것이다.
넷째, 양복과 와이셔츠와 넥타이, 더 나아가 구두와 양말까지 색의 조호가 모든 걸을 말해준다. 멋쟁이 남ㅈ자들은 대범하게 색을 맞추기도 하지만 우리 보통 사람들은 위험한 색의 조화는 피하는 것이 좋겠다.
남편 복장을 꼭 부인들이 신경을 써야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으나, 남자의 차림이 촌스럽고 여자만 멋을 부렸을때의 부조화를 많이 보는 것은 사실이다.
신사복에는 불문율이 많다
부활절 아침이면 파스텔 색조의 드레스에 모자까지 쓴 여자들이 화사한 복장과 겹겹치마를 입은 어린 여자아이들의 예쁜 모습에서부터 지겹도록 긴긴 겨울을 벗어던진 희망의 새봄을 맛본다.
어느 때건 어느 장소이건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여자들의 의상이다. 여자들이 어떤 오을 입었는지를 보는 것도 은근한 하나의 재미이기도 하다. 한편 결혼식을 가나 장례식을 가나 음악회를 가나 남자들 옷은 그저 유니포 같아서 흥미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 ㅈ중에서도 유난히 차림이 세련된 남자에게는 점수를 많아 줘야할 것이다.
여자들 정장에는 정해진 법이 별로 없는 반면에, 남자들의 옷차림에는 때와 장소에 따라 목에서부터 발끜까지 신사로서 갖추어야할 생각보다 많은 불문율이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우선 일반적으로 양복을 차려입었을 때에 상식적으로 챙겨야할 기본을 알아보도록 하자.
첫째, 와이셔츠 칼라가 목을 너ㅜ 조르거나 느슨해서는 안된다. 대략 다 똑 같아 보이는 와이셔츠이 칼라에는 양쪽에 단추를 끼우는 것 Botton Collar ,끝이 둥그런 프렌치(French), 좁다란 스트레이트(Straight)그리고 양끝이 위에서 제껴진 날개(Wing)식 등이 있다.세련된 남자는 자기 얼굴 형태나 체형에 맞는 와이셔츠 칼라를 고를 줄 알아야한다.
둘째, 넥타이, 가장 쉽게 멋을 낼수 있는 부분이 넥타이다. 별로 할 말이 없을 때 '어머 넥타이 멋있네요.'하면 남자들은 너무 좋아한다. 넥타이의 색이나 넓이는 마음대로지만, 넥타이의 길이는 예민하게 정해져 있다. 즉 너무 길어도 너무 짧아도 안 되고 넥타이의 끝이 허리때 윗선에 살짝 닿아야 한다.
뚱뚱한 남자의 넥타이가 배 중간까지 짧게 내려온 것은 게그 컨서트 감이다. 아주 뚱뚱하 사람은 엑스트라 롱 사이즈 넥타이를 사야만 할것이다. 한때 유행하던 넥타이\핀은 꽂지 않은 것이 요즘 트랜드인것 같다.
셋째, 양복 소매와 바지 길이도 쉽지 않은 부분이다. 새 옷을 사면 대부분은 길이를 줄이거나 고쳐야하는데 다행히 세탁소엘 가면 의례히 잘 알아서 해준다. 다만 혹시라도 양복의 소매가, 팔을 느려 트린 자세에서 손을 오므렸을 때 손가락이 급혀진 부분까지 닿지 않거나 접혀질때는 고쳐야 할 것이다.
넷째, 양복과 와이셔츠와 넥타이, 더 나아가 구두와 양말까지 색의 조호가 모든 걸을 말해준다. 멋쟁이 남ㅈ자들은 대범하게 색을 맞추기도 하지만 우리 보통 사람들은 위험한 색의 조화는 피하는 것이 좋겠다.
남편 복장을 꼭 부인들이 신경을 써야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으나, 남자의 차림이 촌스럽고 여자만 멋을 부렸을때의 부조화를 많이 보는 것은 사실이다.
노려의 살아가는데 필요한 에티켓/ 옷차림
2003 3.11
"옷은 잘 입어야 한다"
도널드 트럼프는 '어떻게 하면 부자가 되냐(How to get rich)라는 책에 옷 입는 것에 대해 한 장을 할애하면서, 누구든 부자가 되고 싶은 사람은 옷을 잘 입으라고 했다.
부자가 되어야 옷을 잘 입을 수 있다는 것이 아니고 옷을 잘 입어야 부자가 된다는 말은 "옷 잘 입은 거지가 얻어먹는다."라는 우리 속담과도 토아는 것 같다.
거지의 옷이 남루해야 동정을 사서 한 푼이라도 얻을 것 같으나, 사람의 심리는 그렇지가 않다. 보통 사람들은 무엇보다고 먼저 상대방의 말끔한 겉모습을 보고 호감을 갖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극작가이셨던 나의 어버지가 쓰신 '아무리 옷이 날개라지만.'일ㄴ 극이 김승호 씨 주연으로 영화화 된 적이 있었다. 전쟁 후 우리나라 사람들이 체면만 차리느라 없으면서도 있는척하며 오로지 겈모습에만 신경 쓰는 것을 빗대어 쓴 코미디였다. 물론 어느 쪽이건 너무 치우치면 안되겠지만, 우리는 자신이 겉모습 즉 옷차림에 대해, 심각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옷차림이란 직접적으로 자신을 나타낼수 있는 좋은 방법 붕에 하나이다. 그래서 모두들 비싸고 이름 있는 좋은 옷을 입으려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 우리는 옷을 보고 그 사람의 사회적인 위치를 쉽게 짐작하곤 한다.
예를 들어 은행가는 은행가다운, 선생님은 서냉님 같은, 노동자는 노동자의 또 예술가는 옛ㄹ가다운 차림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사람마다 각자의 생활철학이 있고 독특한 취향과 남다른 개성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단순히 겈모양만 보고 잘못된 판단을 하기도 하고 또 엉뚱한 판단을 당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것은 옷은 잘 입어야한다는 것이다.
이런저런 것을 따지기 이 전에 무조건 옷ㅇㄹ 잘 입어야겠다는 기본적인 마음자셀ㄹ 갖는 것이 중요하다.
잠깐 우유를 사러나간다 해도 거기서 느닷없이 아는 사람을 만나도곤차낳겠다 싶을 정도의 옷차림을 해야 할 것이다. 뿐 아니라 혹시 가게에서 종업언의 도움이 필요랄 경ㅇ가 생길 때에라도 옷ㅇㄹ 잘 입고 있을때와 그렇지 않을 때에 받는 대접이 달다는 것을 명심하자.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의 기분일 것이다.
좋은 옷을 입었을 때 날개가 달린 듯, 일단 기분이 좋지 않은가?
더 나아가서는 누굴 만나도 나도 꿀리지 않는 자신감과 당당함을 느끼지 않는가.
"옷은 잘 입어야 한다"
도널드 트럼프는 '어떻게 하면 부자가 되냐(How to get rich)라는 책에 옷 입는 것에 대해 한 장을 할애하면서, 누구든 부자가 되고 싶은 사람은 옷을 잘 입으라고 했다.
부자가 되어야 옷을 잘 입을 수 있다는 것이 아니고 옷을 잘 입어야 부자가 된다는 말은 "옷 잘 입은 거지가 얻어먹는다."라는 우리 속담과도 토아는 것 같다.
거지의 옷이 남루해야 동정을 사서 한 푼이라도 얻을 것 같으나, 사람의 심리는 그렇지가 않다. 보통 사람들은 무엇보다고 먼저 상대방의 말끔한 겉모습을 보고 호감을 갖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극작가이셨던 나의 어버지가 쓰신 '아무리 옷이 날개라지만.'일ㄴ 극이 김승호 씨 주연으로 영화화 된 적이 있었다. 전쟁 후 우리나라 사람들이 체면만 차리느라 없으면서도 있는척하며 오로지 겈모습에만 신경 쓰는 것을 빗대어 쓴 코미디였다. 물론 어느 쪽이건 너무 치우치면 안되겠지만, 우리는 자신이 겉모습 즉 옷차림에 대해, 심각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옷차림이란 직접적으로 자신을 나타낼수 있는 좋은 방법 붕에 하나이다. 그래서 모두들 비싸고 이름 있는 좋은 옷을 입으려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 우리는 옷을 보고 그 사람의 사회적인 위치를 쉽게 짐작하곤 한다.
예를 들어 은행가는 은행가다운, 선생님은 서냉님 같은, 노동자는 노동자의 또 예술가는 옛ㄹ가다운 차림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사람마다 각자의 생활철학이 있고 독특한 취향과 남다른 개성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단순히 겈모양만 보고 잘못된 판단을 하기도 하고 또 엉뚱한 판단을 당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것은 옷은 잘 입어야한다는 것이다.
이런저런 것을 따지기 이 전에 무조건 옷ㅇㄹ 잘 입어야겠다는 기본적인 마음자셀ㄹ 갖는 것이 중요하다.
잠깐 우유를 사러나간다 해도 거기서 느닷없이 아는 사람을 만나도곤차낳겠다 싶을 정도의 옷차림을 해야 할 것이다. 뿐 아니라 혹시 가게에서 종업언의 도움이 필요랄 경ㅇ가 생길 때에라도 옷ㅇㄹ 잘 입고 있을때와 그렇지 않을 때에 받는 대접이 달다는 것을 명심하자.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의 기분일 것이다.
좋은 옷을 입었을 때 날개가 달린 듯, 일단 기분이 좋지 않은가?
더 나아가서는 누굴 만나도 나도 꿀리지 않는 자신감과 당당함을 느끼지 않는가.
노려의 살아가는데 필요한 에티켓/ 셀룰러 폰
2005년 3월 5일
남에게 피해 줄 장소 벨소리 삼가야
전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셀 폰을 뺄수는 없다. 이것 없이는 살수 없을 정도로 셀 폰이 우리 생활을 편리하게 하는 만큼, 또한 그 만큼 여러 가지로 많은 문제를 주고 있다. 무엇이 문제인지는 일일이 열거하지 않아도 아마 다들 알것이다.
수년 전 셀 폰이 아직 미국에서는 대중화 되지 않았을 때 한국에서 모두가 셀폰을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보고 놀랐었다.
미국에서 온 나를 환영한다고 모인 동창들이 오후 늦은 시간이 되니까 일제히 제각 끔 핸드 백에서 전화를 꺼내어 아이들에게 어떤 과외 선생님이 몇 시에 오시니까 어떻게 하고 있어라 등등 원격조정을 하는 것이었다.
거리를 걸으며 굉장히 중요한 업무를 보느 ㄴ듯이 전화를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왠지 멋있어 보이기도 했었다.
몇 년 지나지 않아, 지금 미국에서도 어린 학생들까지 셀폰을 사용하게 되자, 셀 폰 사용의 안전성, 도덕성 문제가 자주 사회 이유로 등장하곤 한다. 2~3년 전 쯤에 어느 기관에서 조사한 통계를 보니, 극장에서 셀 폰을 끈다고 하는 사람이 57%, 보이스 메일을 틀어놓는다는 사람이 30 %, 자동차에서 끄는 사람 76%, 식당에서 끄는 사람 43%, 중독에 걸린 사람3%였다.
아마 지ㅡㅁ은 셀 폰 끄기를 잊어먹는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고, 대신에 중독 걸린 사람으느 더 많이 늘었을 것으로 본다.
얼마 전 동네 도서관엘 갔을 때에 가방 속에서 셀 폰이 ㅇㄹ리니까 무의식 적으로 전화를 꺼내 받고는 , 순간 아차 했다. 전화르 ㄹ탁 당아버리고 빨리 밖으로 나와 다시 전화를 걸었었지만, 요란하게 울린 전화벨하며 거침없는 '여보세요'며 생각 할수록 창피하다.
셀 폰을 꺼야할 장손ㄴ 음악회, 그ㅡㄱ장, 결혼식장, 장례식ㅈ장, 교회나 또는 회의 장소나 행사 장소 뿐이 아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남에게 피해를 줄 장소 같으면 꼭 셀 폰을 꺼야만 할것이다. 적어도 바이브레이션으로 해놓아야 한다. 요새는 통ㄱㄴ 기차 속에도 셀 폰은 될 ㅅ록 사용하지 말고, 될수록 짧게, 조용하게 하라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인기 작가 데이빗 세다리스의 새 수필집에서 공항 남자 화장실에 앉는 변기가 있는 화장실 속에 들어간 남자가, "어디냐구? 나 여기 공항이야." 라고 큰 소리로 떠드는 거을 쓴 글을 읽었다. '정말 웃겨도 너무 웃겼다'라는 작가에게 동감을 했다.
공중 화장실 속에서이 셀 폰 사용도 삼가 하는 것이 좋겠다.
남에게 피해 줄 장소 벨소리 삼가야
전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셀 폰을 뺄수는 없다. 이것 없이는 살수 없을 정도로 셀 폰이 우리 생활을 편리하게 하는 만큼, 또한 그 만큼 여러 가지로 많은 문제를 주고 있다. 무엇이 문제인지는 일일이 열거하지 않아도 아마 다들 알것이다.
수년 전 셀 폰이 아직 미국에서는 대중화 되지 않았을 때 한국에서 모두가 셀폰을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보고 놀랐었다.
미국에서 온 나를 환영한다고 모인 동창들이 오후 늦은 시간이 되니까 일제히 제각 끔 핸드 백에서 전화를 꺼내어 아이들에게 어떤 과외 선생님이 몇 시에 오시니까 어떻게 하고 있어라 등등 원격조정을 하는 것이었다.
거리를 걸으며 굉장히 중요한 업무를 보느 ㄴ듯이 전화를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왠지 멋있어 보이기도 했었다.
몇 년 지나지 않아, 지금 미국에서도 어린 학생들까지 셀폰을 사용하게 되자, 셀 폰 사용의 안전성, 도덕성 문제가 자주 사회 이유로 등장하곤 한다. 2~3년 전 쯤에 어느 기관에서 조사한 통계를 보니, 극장에서 셀 폰을 끈다고 하는 사람이 57%, 보이스 메일을 틀어놓는다는 사람이 30 %, 자동차에서 끄는 사람 76%, 식당에서 끄는 사람 43%, 중독에 걸린 사람3%였다.
아마 지ㅡㅁ은 셀 폰 끄기를 잊어먹는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고, 대신에 중독 걸린 사람으느 더 많이 늘었을 것으로 본다.
얼마 전 동네 도서관엘 갔을 때에 가방 속에서 셀 폰이 ㅇㄹ리니까 무의식 적으로 전화를 꺼내 받고는 , 순간 아차 했다. 전화르 ㄹ탁 당아버리고 빨리 밖으로 나와 다시 전화를 걸었었지만, 요란하게 울린 전화벨하며 거침없는 '여보세요'며 생각 할수록 창피하다.
셀 폰을 꺼야할 장손ㄴ 음악회, 그ㅡㄱ장, 결혼식장, 장례식ㅈ장, 교회나 또는 회의 장소나 행사 장소 뿐이 아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남에게 피해를 줄 장소 같으면 꼭 셀 폰을 꺼야만 할것이다. 적어도 바이브레이션으로 해놓아야 한다. 요새는 통ㄱㄴ 기차 속에도 셀 폰은 될 ㅅ록 사용하지 말고, 될수록 짧게, 조용하게 하라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인기 작가 데이빗 세다리스의 새 수필집에서 공항 남자 화장실에 앉는 변기가 있는 화장실 속에 들어간 남자가, "어디냐구? 나 여기 공항이야." 라고 큰 소리로 떠드는 거을 쓴 글을 읽었다. '정말 웃겨도 너무 웃겼다'라는 작가에게 동감을 했다.
공중 화장실 속에서이 셀 폰 사용도 삼가 하는 것이 좋겠다.
Tuesday, September 3, 2019
노려의 '살아가는데 필요한 에티켓' 전화
2005년 3월 3일(목)
자신 분명히 밝히고 공손하게
때르르릉....
"여보세요."
"여보세요. 저 누군지 아시겠어요?"
"아, 예에...저어...." 당황해본 경험이 누구에게나 있을것이다.
이때 우리는 본능적으로 저쪽에서 내가 자기를 금방 알아본 것으로 여기도록 일단 어정쩡 대답하고 나서, 동시에 누구인지를 다음 목소리에서 알아채려고 머리를 막 굴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대로 '저 누군지 아시겠어요?'를 해본 경험들도 많을 것이다. 우리는 왜 남이 자기를 금방 알아봐줄것을 그렇게도 원하는 것일까.... 그것도 전화 속 목소리만 갖고.
이유는 알수 없다. 그러나 상대방을 곤란에 빠트리지 안게 위해서뿐만 아니라 자기의 자존심을 위해서라도 이런 모험은 라지 않는 것이 좋다.
전화로 하루를 사작해서 전화로 하루를 끝낸다 해도 될 정도로 전화 없는 세상은 상상도 할수 없다. 전화 중동이 된 사람들도 있을정도다.
순전히 목소리만 갖고 온갖 업무를 다 보게 되는 전화를 걸고 받는 일에는 두 배로 더 예의를 갖추어야 될줄로 믿는다. 직접 만났을 때에는 상대의 얼굴 표정이나 주변 상황을 보면서 말로 표현되지 않는 것 까지 다 이해 할수도 있지만, 목소리만 갖고는 지금 상대가 어떤 상황에 있는지 어떤 기분인지 전혀 알수가 없으므로 ㅅ로지간에 오해의 여지가 더 많을 수 있ㄱ 때문이다.
너무 극단적인지 모르겠으나, 자기가 지금 전화로 상대방을 침범한다고 생각해 두는 것도 어쩌면 필요할 것이다.
전화 걸리 전에 미리 전화를 거는 이유와 상황을 속으로 정리해도구, 처음에 자기가 누구인지를 분명히 밝히고, 될 수록 간단히 분명하게 용건을 말하도록 해야할 것이다.
누구를 바꿔 달라고 할 때에는 더더욱 자신을 분명히 밝히고 공손한 태도를 보여야한다.
한국방송 전화상담 시간에 전화를 건 사람이 '저는 ㅇㅇ 사는 ㅇㅇㅇ 입니다.'하고 곧장 질문으로 들어가면,들을때 얼마나 시원한지....그러나 가끔, 쭈빗쭈빗 여보세요. 로 시작해해서는 새삼스럽게 저어 뭐좀 여쭤보려고 그러는데요... 이럴때는 이 아까운 시간에 저 말은 생략해도 될는데 하고 아따까운 적이 참 많다.
이 사람은 내 시간 뿐 아니라 수 맣은 사람의 시간을 동시에 침범한거나 마찬가지다. 물론 한동안 소식 없이 지내던 보고 싶은 친지에게 느듯없ㅂ이 전화해서 " 나 구누지 알아?"하는 것은 얼마든지 해도 좋다.
자신 분명히 밝히고 공손하게
때르르릉....
"여보세요."
"여보세요. 저 누군지 아시겠어요?"
"아, 예에...저어...." 당황해본 경험이 누구에게나 있을것이다.
이때 우리는 본능적으로 저쪽에서 내가 자기를 금방 알아본 것으로 여기도록 일단 어정쩡 대답하고 나서, 동시에 누구인지를 다음 목소리에서 알아채려고 머리를 막 굴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대로 '저 누군지 아시겠어요?'를 해본 경험들도 많을 것이다. 우리는 왜 남이 자기를 금방 알아봐줄것을 그렇게도 원하는 것일까.... 그것도 전화 속 목소리만 갖고.
이유는 알수 없다. 그러나 상대방을 곤란에 빠트리지 안게 위해서뿐만 아니라 자기의 자존심을 위해서라도 이런 모험은 라지 않는 것이 좋다.
전화로 하루를 사작해서 전화로 하루를 끝낸다 해도 될 정도로 전화 없는 세상은 상상도 할수 없다. 전화 중동이 된 사람들도 있을정도다.
순전히 목소리만 갖고 온갖 업무를 다 보게 되는 전화를 걸고 받는 일에는 두 배로 더 예의를 갖추어야 될줄로 믿는다. 직접 만났을 때에는 상대의 얼굴 표정이나 주변 상황을 보면서 말로 표현되지 않는 것 까지 다 이해 할수도 있지만, 목소리만 갖고는 지금 상대가 어떤 상황에 있는지 어떤 기분인지 전혀 알수가 없으므로 ㅅ로지간에 오해의 여지가 더 많을 수 있ㄱ 때문이다.
너무 극단적인지 모르겠으나, 자기가 지금 전화로 상대방을 침범한다고 생각해 두는 것도 어쩌면 필요할 것이다.
전화 걸리 전에 미리 전화를 거는 이유와 상황을 속으로 정리해도구, 처음에 자기가 누구인지를 분명히 밝히고, 될 수록 간단히 분명하게 용건을 말하도록 해야할 것이다.
누구를 바꿔 달라고 할 때에는 더더욱 자신을 분명히 밝히고 공손한 태도를 보여야한다.
한국방송 전화상담 시간에 전화를 건 사람이 '저는 ㅇㅇ 사는 ㅇㅇㅇ 입니다.'하고 곧장 질문으로 들어가면,들을때 얼마나 시원한지....그러나 가끔, 쭈빗쭈빗 여보세요. 로 시작해해서는 새삼스럽게 저어 뭐좀 여쭤보려고 그러는데요... 이럴때는 이 아까운 시간에 저 말은 생략해도 될는데 하고 아따까운 적이 참 많다.
이 사람은 내 시간 뿐 아니라 수 맣은 사람의 시간을 동시에 침범한거나 마찬가지다. 물론 한동안 소식 없이 지내던 보고 싶은 친지에게 느듯없ㅂ이 전화해서 " 나 구누지 알아?"하는 것은 얼마든지 해도 좋다.
노려의 "살아가는데 필요한 예티켓' 인사소개 2
2005년 2월 24일
악수는 자신감을 나타내며 힘 있게
아카데미 시상식을 재미있게 보기위해서는 가장 화제에 올라있는 영화는 미리 봐두는 것도 좋다. 올해 11개부문이나 ㅎ보에 오른 '에비에이터'에서, 병균이 손에 묻을까봐 화장실 손잡이도 못 잡는 결벽증 걸린 완벽ㅈ의자 레오날도 디카프리오(하워든 휴즈 역할)가 사업상의 사람과 서슴없이 힘차게 악수를 하는 것을 눈여겨 보았다. 마음 속에는 무서운 경쟁심을 숨겨두고서 손을 내밀어 악수로 사업을 시작하는 욕망의 모습을 나타내는 멋진 연기였다.
약가느이 간격을 두고 서로 마주서서 고개를 숙여 절을 하는 수즙은 듯 겸손한 듯 우리의 동양식 소극적인 인사법에 비해, 악수는 무척 활발하고 친근감 있는 적극적인 서양 인사법이다.
약수(Shake Hands)는 옛날에 자신이 무기를 갖ㅈ고 있지 않다느 ㄴ것을 보여주기 위해 빈손을 내밀어 보여주는데서 시작했다고 한다. 물론 요즘에 그런 뜻은 간데 없고, 우리는 사람을 만나면 남자나 여자나 거의 무방비상태로 악수부터 하고 보느 ㄴ것이 당연지사로 되어있다.
악수의 방법은 오른팔을 내밍어 엄지손가락이 위로 올라가게 하여 상대방의 내민 오른 손을 잡는 것이다. 어느 목사님이 악수를 하실때 내 손을 잡지 않고 손바닥을 반듯이 피고만 게셔서 무척 어색했던 적이 있었다. 아마 수많은 사람과 한거번에 악수를 하시곤 하니까 나중엔 손아귀가 아프셔서 그러신 건가 추측을 했었지만, 그래도 악수는 상대방의 손을 '잡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상대의 손을 잡는다는 이 단순한 악수라는 행동에 자기의 자신감과 상대에 대한 친근감, 신뢰감 그리고 세련미와 정서까지도 표현 할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서 그동안 무의ㅣㄱ적으로 해오던 자기 자신의 악수하는 모습을 점검해보자.
우선 악수를 하기위해 손을 먼저 내미는 순서는 어름이 나이 어린 사람한테, 사회적인 지위가 높은 사람이 낮은 사람한테, 우선권이 있는 사람이 처분을 기다리는 쪽 사람에게로 되어있다. 한편, 여자들에게 남자가 감히 악수를 청하는 것은 무뢰한 것이고 오로지 여자 쪽엣 손을 내밀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예의 있는 신사라고 되어있었지만, 현대사회에서는 남자가 먼저 여자한테 손을 내밀어도 크게 신사도를 손상시키지 않는다고 되어있다.
손에 땀이 나있어서 상대에게 불쾌감을 주지 않도록 해야하며, 손을 잡을때에는 너무 꽉 잡아서는 안 되겠지만, 엄지손락까지 오므려서 힘있게 잡아야 한다. 그리고 서로 눈을 마주 치면서 한두번 힘있게 손을 흔들어서 명실공히 Shake Hands 를 해야 할것이다.
악수는 자신감을 나타내며 힘 있게
아카데미 시상식을 재미있게 보기위해서는 가장 화제에 올라있는 영화는 미리 봐두는 것도 좋다. 올해 11개부문이나 ㅎ보에 오른 '에비에이터'에서, 병균이 손에 묻을까봐 화장실 손잡이도 못 잡는 결벽증 걸린 완벽ㅈ의자 레오날도 디카프리오(하워든 휴즈 역할)가 사업상의 사람과 서슴없이 힘차게 악수를 하는 것을 눈여겨 보았다. 마음 속에는 무서운 경쟁심을 숨겨두고서 손을 내밀어 악수로 사업을 시작하는 욕망의 모습을 나타내는 멋진 연기였다.
약가느이 간격을 두고 서로 마주서서 고개를 숙여 절을 하는 수즙은 듯 겸손한 듯 우리의 동양식 소극적인 인사법에 비해, 악수는 무척 활발하고 친근감 있는 적극적인 서양 인사법이다.
약수(Shake Hands)는 옛날에 자신이 무기를 갖ㅈ고 있지 않다느 ㄴ것을 보여주기 위해 빈손을 내밀어 보여주는데서 시작했다고 한다. 물론 요즘에 그런 뜻은 간데 없고, 우리는 사람을 만나면 남자나 여자나 거의 무방비상태로 악수부터 하고 보느 ㄴ것이 당연지사로 되어있다.
악수의 방법은 오른팔을 내밍어 엄지손가락이 위로 올라가게 하여 상대방의 내민 오른 손을 잡는 것이다. 어느 목사님이 악수를 하실때 내 손을 잡지 않고 손바닥을 반듯이 피고만 게셔서 무척 어색했던 적이 있었다. 아마 수많은 사람과 한거번에 악수를 하시곤 하니까 나중엔 손아귀가 아프셔서 그러신 건가 추측을 했었지만, 그래도 악수는 상대방의 손을 '잡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상대의 손을 잡는다는 이 단순한 악수라는 행동에 자기의 자신감과 상대에 대한 친근감, 신뢰감 그리고 세련미와 정서까지도 표현 할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서 그동안 무의ㅣㄱ적으로 해오던 자기 자신의 악수하는 모습을 점검해보자.
우선 악수를 하기위해 손을 먼저 내미는 순서는 어름이 나이 어린 사람한테, 사회적인 지위가 높은 사람이 낮은 사람한테, 우선권이 있는 사람이 처분을 기다리는 쪽 사람에게로 되어있다. 한편, 여자들에게 남자가 감히 악수를 청하는 것은 무뢰한 것이고 오로지 여자 쪽엣 손을 내밀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예의 있는 신사라고 되어있었지만, 현대사회에서는 남자가 먼저 여자한테 손을 내밀어도 크게 신사도를 손상시키지 않는다고 되어있다.
손에 땀이 나있어서 상대에게 불쾌감을 주지 않도록 해야하며, 손을 잡을때에는 너무 꽉 잡아서는 안 되겠지만, 엄지손락까지 오므려서 힘있게 잡아야 한다. 그리고 서로 눈을 마주 치면서 한두번 힘있게 손을 흔들어서 명실공히 Shake Hands 를 해야 할것이다.
Thursday, August 29, 2019
살아가는데 필요한 에티켓/ 인사소개
2005/2/11
자신을 소개할때 호칭은 생략해야
한국에서 온 사람을 데리고 멀리 늊지에 사는 사람을 만나러 간적이 있었다. 서로가 초면이고 초행길이라 무슨 색 무슨 차라고 미리 알렺고, 톨게이트에서 만나 거기서 부터 차를 쫗아가기로 했었다. 차들이 쌩쌩 다리는 상횡에 멈추어서서 재빨리 인사를 하고 뒤쫓아가려는데, 멀리서 온 사람이 명함을 꺼내주는 바람에 한국서 온 사람도 놀라서 '아, 예, 예' 부랴부라 부시럭 부시럭 명함을 꺼내주면서 인사를 할수밖에 없었다. 목적지에 도착해서 편안하게 인사소개를 할수도 있었을텐데, 얼마나 어색하고 황급한 인사였는지.
첫 인상이 중요하다는 거은 두말이 필요엇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났을때 어떤 경우이건 자신의 이름을 또박또박 정확하게 발음하는 것에서부터 자기 자신을ㅇ 분명하고 당당하게 소개할수 있어야 한다.
상대방이 자기 이름을 알고 있으리라고 미리 짐작하고 자기 이름을 말하지 않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ㄱ면일 경우에라도 만에 하나 이름을 모를 수도 있고, 전에 알려줬으나 깜박 잊어버렸을 수도 있는 것이다.
안면은 있으나 잘 알지 못하는 사이에 만났으면 꼭 자신의 이름을 밝히는 것이 현명하다.
더구나 우연히 예전에 좀 알던 ㅏ람을 만났을때에는 ㅓㄴ저 알아보 ㄴ사람이 상대방이 난처해하지 아도록 자신을 밝혖는 것이 서로가 어색해지지 않게 하는 자여느ㅓㅁ 방법이다. 자신을 소개할때에는 호칭을 붙이는 것이 아니다.
"제가 김 한국 박사입니다."라는 가 '저 이한ㄱㄱ 사장입니다.'이렇게 하지 안은 다."미스터 김입니다.'이런 소갠ㄴ 더 좋지 않다. 한ㄱㄱ이 ㄴ아줌마들이 자기를 미세즈 김, 메세즈 리로 소개하곤 하는데 그만큼 자신의 존재를 흐지부지해버리는 것이 된다.
또 김집사 박집사로 소개하는 경우도 흔히 듣는데 아무리 서로가 교인이라고 해도 호칭은 생락하고 이름만 마하는 것이 좋다.
명함을 주고 받ㅇㄹ때, 만나자 마자 명함부터 내미는 것은 신사 숙녀 답지 않다.
서로가 충분히 소개가 되고 또 중요한 이야기들을 다 나누고 나서, 헤어질 무렵에 몀함을 꺼내 주는 것이 자연스럽다.
붇ㄱ디 명함을 먼저 주고 받는 경우에는 받는 그 자리에서 명함을 천천히 읽어보면서 명함에 적힌 내용에 대해 한마디라도 언급하는 것이 더 사려 깊은 태도라 하겠다.
자신을 소개할때 호칭은 생략해야
한국에서 온 사람을 데리고 멀리 늊지에 사는 사람을 만나러 간적이 있었다. 서로가 초면이고 초행길이라 무슨 색 무슨 차라고 미리 알렺고, 톨게이트에서 만나 거기서 부터 차를 쫗아가기로 했었다. 차들이 쌩쌩 다리는 상횡에 멈추어서서 재빨리 인사를 하고 뒤쫓아가려는데, 멀리서 온 사람이 명함을 꺼내주는 바람에 한국서 온 사람도 놀라서 '아, 예, 예' 부랴부라 부시럭 부시럭 명함을 꺼내주면서 인사를 할수밖에 없었다. 목적지에 도착해서 편안하게 인사소개를 할수도 있었을텐데, 얼마나 어색하고 황급한 인사였는지.
첫 인상이 중요하다는 거은 두말이 필요엇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났을때 어떤 경우이건 자신의 이름을 또박또박 정확하게 발음하는 것에서부터 자기 자신을ㅇ 분명하고 당당하게 소개할수 있어야 한다.
상대방이 자기 이름을 알고 있으리라고 미리 짐작하고 자기 이름을 말하지 않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ㄱ면일 경우에라도 만에 하나 이름을 모를 수도 있고, 전에 알려줬으나 깜박 잊어버렸을 수도 있는 것이다.
안면은 있으나 잘 알지 못하는 사이에 만났으면 꼭 자신의 이름을 밝히는 것이 현명하다.
더구나 우연히 예전에 좀 알던 ㅏ람을 만났을때에는 ㅓㄴ저 알아보 ㄴ사람이 상대방이 난처해하지 아도록 자신을 밝혖는 것이 서로가 어색해지지 않게 하는 자여느ㅓㅁ 방법이다. 자신을 소개할때에는 호칭을 붙이는 것이 아니다.
"제가 김 한국 박사입니다."라는 가 '저 이한ㄱㄱ 사장입니다.'이렇게 하지 안은 다."미스터 김입니다.'이런 소갠ㄴ 더 좋지 않다. 한ㄱㄱ이 ㄴ아줌마들이 자기를 미세즈 김, 메세즈 리로 소개하곤 하는데 그만큼 자신의 존재를 흐지부지해버리는 것이 된다.
또 김집사 박집사로 소개하는 경우도 흔히 듣는데 아무리 서로가 교인이라고 해도 호칭은 생락하고 이름만 마하는 것이 좋다.
명함을 주고 받ㅇㄹ때, 만나자 마자 명함부터 내미는 것은 신사 숙녀 답지 않다.
서로가 충분히 소개가 되고 또 중요한 이야기들을 다 나누고 나서, 헤어질 무렵에 몀함을 꺼내 주는 것이 자연스럽다.
붇ㄱ디 명함을 먼저 주고 받는 경우에는 받는 그 자리에서 명함을 천천히 읽어보면서 명함에 적힌 내용에 대해 한마디라도 언급하는 것이 더 사려 깊은 태도라 하겠다.
살아가는데 필요한 에티켓/ 팁
2005/2/3
팁은 두둑이, 그러나 상식적으로
'그저 팁은 두둑이'라고 했지만, 사실 어떤 경우에 얼마의 팁을 줘야하는지가 애매모호할때가 참 많다.
사업상 여행을 많이 하는 친구가 새삼스럽게 호텔 벨 보이에게 얼마를 주는 거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글쎄...보통 1달러 주잖아."했다. 그런데 그 친구가 짐을 날라다 준 사람에게 1달라를 주니 아무래도 안색이 별로 안 좋더라는 거였다. 아마 친구가 좀 예민하게 느낀 모양이겠지 했다.
그 후 어느 잡지에 보니 '팁'에 대해 자세히 나온 것이 있어 그 친구 생각을 하면서 관심 있게 읽어본 적이 있다. 호텔 벨 보이에 대해서는 1달라에서 4달라라고 되어있다, 경우에 ㄸ라서는 4달라라고? 하긴 가방 하나 옮겨줬을 때와 서너개이 무거운 가방을 옮겨줬을 때가 달라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한가지 더 생각해볼수 있는 것은 호텔의 수준이다. 최고급 호텔이라면 벨 보이가 당연히 후한 액수에 익숙해져 있을것이다.
'팁' 또한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바탕으로 한 상식적인 문제이다. 그래서인지 팁은 딱 정해진 값이 있는 것이 아니고 얼마에서 얼마까지라고 되어있다.
팁 문하가 없는 한국 사람들 뿐 아니라 팁주는 것이 생활화 되어있는 미국사람에게도 팁을 주는 매너에 대해 자주 거론이 되곤 한다. 일상생활에서 팁을 줄 사람은 생각보다 많다.
호텔만 하더라도 벨 보이서부터, 하우스 키퍼, 룸 서비스 그리고 택시를 잡아주는 도어맨에 까지 일일히 1달라에서 2달러 또는 4ㄷ달러, 호텔 방으로 시켜먹은 음식 총금엑이 10-20 %라는 에티켓이 있다.
미용사: 세금후 금액의 15퍼센트, 미용 보조사 : 2-5달라, 마사지 테라피스트 : 총 금액의 10-20퍼센트, 세차장 종업원: 차 ㅏㄴ대 당 2-5달러, 가구 배달원: 1인당 5-10달러, 택시 운전사: 요금의 10- 15퍼센트, 등등.... 문화인으로서 알아두어야 할 기본적인 '팁' 액수이다.
또 요즈음 같이 커피한잔 사는데도 커피으 ㅣ종류가 다양하고 사이즈도 다양하며 설탕, 사카린 밀크, 스킴 밀크, 그림 등등 손님의 입맛도 복잡한 풍토에서는 커피셥에서도 팁을 주라고 권하고 있다. 앞에 컵이 놓여있으면 거기다 거스름돈이나 잔돈을 넣으면 된다.
그런데 밎장원 주인이 머리 염색도 해주고 잘라 주기도 했으면? 자 이때가 바로 우리의 양심과 상식을 총동원 할때이다.
팁은 두둑이, 그러나 상식적으로
'그저 팁은 두둑이'라고 했지만, 사실 어떤 경우에 얼마의 팁을 줘야하는지가 애매모호할때가 참 많다.
사업상 여행을 많이 하는 친구가 새삼스럽게 호텔 벨 보이에게 얼마를 주는 거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글쎄...보통 1달러 주잖아."했다. 그런데 그 친구가 짐을 날라다 준 사람에게 1달라를 주니 아무래도 안색이 별로 안 좋더라는 거였다. 아마 친구가 좀 예민하게 느낀 모양이겠지 했다.
그 후 어느 잡지에 보니 '팁'에 대해 자세히 나온 것이 있어 그 친구 생각을 하면서 관심 있게 읽어본 적이 있다. 호텔 벨 보이에 대해서는 1달라에서 4달라라고 되어있다, 경우에 ㄸ라서는 4달라라고? 하긴 가방 하나 옮겨줬을 때와 서너개이 무거운 가방을 옮겨줬을 때가 달라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한가지 더 생각해볼수 있는 것은 호텔의 수준이다. 최고급 호텔이라면 벨 보이가 당연히 후한 액수에 익숙해져 있을것이다.
'팁' 또한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바탕으로 한 상식적인 문제이다. 그래서인지 팁은 딱 정해진 값이 있는 것이 아니고 얼마에서 얼마까지라고 되어있다.
팁 문하가 없는 한국 사람들 뿐 아니라 팁주는 것이 생활화 되어있는 미국사람에게도 팁을 주는 매너에 대해 자주 거론이 되곤 한다. 일상생활에서 팁을 줄 사람은 생각보다 많다.
호텔만 하더라도 벨 보이서부터, 하우스 키퍼, 룸 서비스 그리고 택시를 잡아주는 도어맨에 까지 일일히 1달라에서 2달러 또는 4ㄷ달러, 호텔 방으로 시켜먹은 음식 총금엑이 10-20 %라는 에티켓이 있다.
미용사: 세금후 금액의 15퍼센트, 미용 보조사 : 2-5달라, 마사지 테라피스트 : 총 금액의 10-20퍼센트, 세차장 종업원: 차 ㅏㄴ대 당 2-5달러, 가구 배달원: 1인당 5-10달러, 택시 운전사: 요금의 10- 15퍼센트, 등등.... 문화인으로서 알아두어야 할 기본적인 '팁' 액수이다.
또 요즈음 같이 커피한잔 사는데도 커피으 ㅣ종류가 다양하고 사이즈도 다양하며 설탕, 사카린 밀크, 스킴 밀크, 그림 등등 손님의 입맛도 복잡한 풍토에서는 커피셥에서도 팁을 주라고 권하고 있다. 앞에 컵이 놓여있으면 거기다 거스름돈이나 잔돈을 넣으면 된다.
그런데 밎장원 주인이 머리 염색도 해주고 잘라 주기도 했으면? 자 이때가 바로 우리의 양심과 상식을 총동원 할때이다.
노려의 살아가는데 필요한 에티켓/ 식당에서 3
2005/1/27
식당에서 작은 일들
어느 웨이트레스의 이야기다.
노부부가 식사 계산서를 보고 쩔쩔 매며 하는 말이 "우리가 식사값은 되는데 팁 놓을 돈이 안된다.'해서 웨이트레스가 '괜찮아요. 걱정마세요.'라며 웃음으로 노부부를 보냈다. 그런데 나중에 옆 테이블 사람이 놓고 간 계산서에 메모가 있더라고.
"그 사람들이 못 주고간 팁을 우리가 놓고 갑니다."
우리 한국 1세들에게 팁을 놓는 일이 아직은 그리 익숙치 않은 것 같다. 아니 그보다는 아직도 팁 놓는 일에 인색하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언제부터인가 아이들이 식당에서 팁을 계산할때 마다 간섭을 하기 시작했다.
"엄마 좀 더 놔." "아니 세금 빼고 합계가 얼만데...... 이만큼이면 되잖아." 결국ㅇㄴ 1달러 더 놓은 것을 갖고 실랑이를 벌이곤 했다.
단골 미장원이나 마사지 같은데 가서는 팁을 두둑이 주는 편인데도 식당에서는 부지런히 속으로 암산을 하면서 계산을 짜게 한다. 그런데 이 미국사회는 '그저 팁은 두둑히'가 생활화 되어있는 것 같다.
식당에서이 팁은 적어도 15퍼센트에서 20퍼센트라고 문사화 되어있다. 그 비율은 세금계산 이전이 금액에서 이며 또한 쿠폰 사요요 전, 디스타운트 받기 전의 금액에서다. 그 위에 서비스가 훌륭했으면 얼마를 더 얹으라고 에티켓 책에 쓰여있다.
보다 손쉽게 살고 싶은 사람은 시중에서 팔고 있는 명함 크기의 팁 챠트를 사서 지갑에 넣고 다니면 된다. 구굳단 외우기처럼 1달라에서 100달라까지, 15%는 얼마, 20%는 얼마라고 답이 쭉 나와있다.
크레딧 카드로 팁까지 내려면 계산서에 팁도 적고 총계를 적어주는데, 이때에 합계에 센트를 안 부팅려고 열심히 계산하는 것도 우아하지 않다. 쉽게 우수리 없는 팁을 써 넣은 것이 함께 식사를 한 사람에게도 좋은 인상을 주게 된다. 따라서 암만 친한 친구관계라해도 팁을 얼마줄까 의논하는 것은 더더욱 문하인 답지않은 행동이다.
그런데 혹시 서비스가 엉망이었다고 해서 그 대신 팁을 적게 주는 것은 신사답지 않다.
이 때에도 적어도 15퍼센트라는 선은 지키고 메니저를 찾아가 조용히 불평사항을 말하는 것이 더 좋다. 이와 가찬가지로 기분 좋은 서비스를 받았으면 팁도 더 주지만, 나아가서 매니저에게도ㅗ 알려주어 그들예게 자부심을 갖게 해주는 것도 좋은 일이라 여겨진다.
발레 파킹을 팁도 마찬가지다.
Friday, August 16, 2019
노려의 살아가는데 필요한 에티켓/ 식당에서 2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오드리 헵번의 이미지를 이용한 '틴에이져를 위한 티파니 테이블 메너(Tiffany's Table Manners For Teenagers)'라는 책이 있다.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이 개봉된 1961년에 소책자로 출판되었다가 수년간 새로 티파니 보석상의 상징 색인 영한 에메랄드 색 커버로 재발행 되어,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의 눈을 끌고 있다.
한입에 너무 많은 음식을 넣지 말것,
팔꿈치를 테이블에 올려놓지 말것,
씹는 소리를 내지 말것,
어른이나 식탁의 주인공이 식사를 시작할 때까지 기다릴 푤요까지는 없지만, 음힉을 보자마자 달려들어 먹지 말것. 등등...
마치 사립학교의 엄격한 규율같다.
'음식을 먹을 때는 몸을 약간 음식 접시 쪽으로 기울여야한다. 커피 컵 속에 차 숫가락을 담가놓지 말것 등의 메너는 꼭 어린 아이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많은 어른들이 쩝쩝 소리를 내며, 입에 음식물을 가득 넣고도 큰 소리로 떠들어댄다. 어떤 공직자의 부인이 공식적인 식사자리에서 팔꿈치를 식탁에 올려놓고 떠들더라고 흉보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사실 어렸을때부터 몸에 밴 예법이 가장 바람직한 것이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지금이라도 자신이 자세를 재점검 해보면 어떨까.
주로 한국 아저씨들 팔을 앉은 의자뒤로 제끼고 삐딱하니 앉은 자세, 주로 아주머니들 가슴을 테이블에 붙일 정도로 바짝 앉아 식사하는 것, 떠들고 돌아다니는 아이들을 말리지 않는 ㅜ모들, 쉽게 눈에 거슬리는 장면들이다. 기본적인 자세서부터 다시 한번 점검하면서, 정통 서양식 테이블 메너에까지 관심을 갖고 여기저기서 찾아보고 하나씩 익히고 기회가 될 때마다 그 하나씩을 실천해보면 어딜가나 당당한 자세를 갖출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공연히 포크와 나이프가 줄지어 하펴져있고 높고 낮은 ㅇ리컵이 놓여있는 식탁을 대하면 지레 주국이 들곤한다.
그러나 이것 역시도 책을 찾아보던지, 아는 사람한테 물어보던지, 영화나 TV에서의 식사장면 같은 것을 유심히 봐둔다든가... 뜻만 있으면 약간의 신경을 기울여 해결 할 수 있다.
혹시 자신이 에티켓에 어긋난 행동을 했다면, 가볍게 웃음으로 넘길 수 있는 여유도 필요하다. 에티켓이 어디까지나 남을 배려하는 행동이지 딱딱한 '법칙'은 아니기 때문이다. 갑자기 숫가락을 떨어트리면 놀래서 당장 집으려고 하게 되는데, 그 때에는 식탁 밑으로 몸을 굽히지 말고 웨이터를 불러 새 것을 가져오게 하는 것이 예법이라는 것이 나중에 생각났으면, 줏은 숫가락을 웨이터에기 주면서, 떨어트렸던 거니까 새것으로 달라고 하면 되는 것이다.
또 예를 들어 <음식을 입에 넣고 말하지 말것>을 지키느라 음식을 씹는 동안 침묵한다면 식탁은 딱딱해질 수 밖에 없지만, <음식을 조금씩 입에 넣은다.>란 기본을 익히면, 얼마든지 음식을 먹으면서 요령껏 평안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운 식사시간을 갖을 수가 있는 것이다.
자칫 성경의 율번을 지키느라 가장 중요한 '사랑'자체를 무시하게 되듯이...식사예번 빼둠에 자연스럽고 화기애애한 식탁의 분위기를 망칠수는 없는 것이다.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이 개봉된 1961년에 소책자로 출판되었다가 수년간 새로 티파니 보석상의 상징 색인 영한 에메랄드 색 커버로 재발행 되어,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의 눈을 끌고 있다.
한입에 너무 많은 음식을 넣지 말것,
팔꿈치를 테이블에 올려놓지 말것,
씹는 소리를 내지 말것,
어른이나 식탁의 주인공이 식사를 시작할 때까지 기다릴 푤요까지는 없지만, 음힉을 보자마자 달려들어 먹지 말것. 등등...
마치 사립학교의 엄격한 규율같다.
'음식을 먹을 때는 몸을 약간 음식 접시 쪽으로 기울여야한다. 커피 컵 속에 차 숫가락을 담가놓지 말것 등의 메너는 꼭 어린 아이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많은 어른들이 쩝쩝 소리를 내며, 입에 음식물을 가득 넣고도 큰 소리로 떠들어댄다. 어떤 공직자의 부인이 공식적인 식사자리에서 팔꿈치를 식탁에 올려놓고 떠들더라고 흉보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사실 어렸을때부터 몸에 밴 예법이 가장 바람직한 것이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지금이라도 자신이 자세를 재점검 해보면 어떨까.
주로 한국 아저씨들 팔을 앉은 의자뒤로 제끼고 삐딱하니 앉은 자세, 주로 아주머니들 가슴을 테이블에 붙일 정도로 바짝 앉아 식사하는 것, 떠들고 돌아다니는 아이들을 말리지 않는 ㅜ모들, 쉽게 눈에 거슬리는 장면들이다. 기본적인 자세서부터 다시 한번 점검하면서, 정통 서양식 테이블 메너에까지 관심을 갖고 여기저기서 찾아보고 하나씩 익히고 기회가 될 때마다 그 하나씩을 실천해보면 어딜가나 당당한 자세를 갖출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공연히 포크와 나이프가 줄지어 하펴져있고 높고 낮은 ㅇ리컵이 놓여있는 식탁을 대하면 지레 주국이 들곤한다.
그러나 이것 역시도 책을 찾아보던지, 아는 사람한테 물어보던지, 영화나 TV에서의 식사장면 같은 것을 유심히 봐둔다든가... 뜻만 있으면 약간의 신경을 기울여 해결 할 수 있다.
혹시 자신이 에티켓에 어긋난 행동을 했다면, 가볍게 웃음으로 넘길 수 있는 여유도 필요하다. 에티켓이 어디까지나 남을 배려하는 행동이지 딱딱한 '법칙'은 아니기 때문이다. 갑자기 숫가락을 떨어트리면 놀래서 당장 집으려고 하게 되는데, 그 때에는 식탁 밑으로 몸을 굽히지 말고 웨이터를 불러 새 것을 가져오게 하는 것이 예법이라는 것이 나중에 생각났으면, 줏은 숫가락을 웨이터에기 주면서, 떨어트렸던 거니까 새것으로 달라고 하면 되는 것이다.
또 예를 들어 <음식을 입에 넣고 말하지 말것>을 지키느라 음식을 씹는 동안 침묵한다면 식탁은 딱딱해질 수 밖에 없지만, <음식을 조금씩 입에 넣은다.>란 기본을 익히면, 얼마든지 음식을 먹으면서 요령껏 평안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운 식사시간을 갖을 수가 있는 것이다.
자칫 성경의 율번을 지키느라 가장 중요한 '사랑'자체를 무시하게 되듯이...식사예번 빼둠에 자연스럽고 화기애애한 식탁의 분위기를 망칠수는 없는 것이다.
Sunday, August 11, 2019
노려의 살아가는데 필요한 에티켓 / 식당에서(1)
식당 입구에서 안내인 기다리는 것 매너
레스토랑을 음식 맛, 분위기, 가격에 따라 등급을 매겨 1년에 한번 씩 발행하는 책자 '쟈겟(Zagat)'이란 식당가이드 책이 있는데, 대부분의 미국 사람들이 해가 바뀌면 새 달려과 함께 새 '쟈겠'을 살 정도로, 식당에 가는 일은 그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한국 사람들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그저 한끼 떼우기 위해 식당을 찾는다기 보다는 뭔가 새로운 음식 또는 특별한 분위기를 찾아 식당에 가는 문화가 자리를 잡고 있는듯 하다.
그야말로 밥 하기 싫어서 가는 경우서부터, 사람들을 만나는 장소로, 사교의 모임이나 온갖 파티, 또 회사이 중요한 회의까지 목적은 달라도 식당이라는 장소는 사람들의 문화수준을 가장 잘 보여 줄 수 있는 곳이다.
식당에 발을 드려놓은 순간부터 나올 때까지 갖춰야 할 매너가 있다.
입구에서 무작정 안으로 쑥 들어가서 두리번 거리는 것은 우아하지 않다. 우선 입구에 서서 안내인이 안내를 하러 올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안내 되어간 자리가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다. 이 때는 다른 자리를 손으로 가리키며 큰 소리로 저 자리로 가겠다고 하기 보다는 안내원에게 '혹시 다른 자리고 가면 안 돼겠냐'면서 조용한 자리라던지 창가 쪽이라던지....설명을 붙여 공손하게 물어보는 것이 좋다.
여러가지 이유로 요청이 들어지지 않을때에는 빨리 포기하고 웃음으로 안내원에게 '땡큐'를 하고 자리에 앉아야한다. 같이 온 사람끼리도 소란스럽게 '여기 앉으세요, 아니예요 저기 앉으세요' 하지 말고 서로 재빨리 눈치껏 자리에 앉는다.
상 위에 혹시 냅핀이 놓여져 있다면, 슬쩍 냎킨을 들어 상 아래에서 살짝 흔들어 핀 다음에 무릎에 올려 놓는다. 식당에 오기 전부터 먹을 것을 정하고 있었다고 해도, 잠시 메뉴를 훑어보는 시간을 갖고, 웨이터가 오늘의 특별 요리를 말 할 때에는 경청하는 것이 신사숙녀다운 태도다. 메뉴를 한참 들여다봐도 정하지를 못하는 때도 종종 있다. 이럴 때 웨이트레스에게 '시간을 좀더 주세요.'라고 말하면 된다. 웨이트레스를 세워놓고 메뉴를 찾던지 같이 간 사람들이랑 뭘 먹지? 이거 맛있어요? 쑥덕거리며 의논하는 것은 보기에 좋지 않다.
한국음식처럼 떡국이요 해물볶음이요 하고 끝나면 좋은데, 미국 식당에서는 시키는 음식에 따라 웨이트레스의 질문이 많다. 우선 아페타이즈, 메인 메뉴 디저트까지 정해야 할 것이 많다. 물론 3 코스를 다 하지 않아도 되지만, 곧장 메인 메뉴로 시킬때는 다정하게 정중하게 말한다. 메뉴를 다 정했다해도, 살라드에는 어떤 드레싱을 칠 것인지 고기는 잘 익힐 것인지 덜 익힐 것인지....하나하나 천천히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 좋다.
즉 한마디로 서두르지 않으면서 느긋하게 식사에 임하는 것이다.
식사가 끝났을 때에 '배가 부르다'며 디저트를 생략하는 것은 문제가 없는 일이다. 그러나 친지들과 더 이야기를 하고 싶으면, 디저트를 시키면 된다.
레스토랑을 음식 맛, 분위기, 가격에 따라 등급을 매겨 1년에 한번 씩 발행하는 책자 '쟈겟(Zagat)'이란 식당가이드 책이 있는데, 대부분의 미국 사람들이 해가 바뀌면 새 달려과 함께 새 '쟈겠'을 살 정도로, 식당에 가는 일은 그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한국 사람들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그저 한끼 떼우기 위해 식당을 찾는다기 보다는 뭔가 새로운 음식 또는 특별한 분위기를 찾아 식당에 가는 문화가 자리를 잡고 있는듯 하다.
그야말로 밥 하기 싫어서 가는 경우서부터, 사람들을 만나는 장소로, 사교의 모임이나 온갖 파티, 또 회사이 중요한 회의까지 목적은 달라도 식당이라는 장소는 사람들의 문화수준을 가장 잘 보여 줄 수 있는 곳이다.
식당에 발을 드려놓은 순간부터 나올 때까지 갖춰야 할 매너가 있다.
입구에서 무작정 안으로 쑥 들어가서 두리번 거리는 것은 우아하지 않다. 우선 입구에 서서 안내인이 안내를 하러 올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안내 되어간 자리가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다. 이 때는 다른 자리를 손으로 가리키며 큰 소리로 저 자리로 가겠다고 하기 보다는 안내원에게 '혹시 다른 자리고 가면 안 돼겠냐'면서 조용한 자리라던지 창가 쪽이라던지....설명을 붙여 공손하게 물어보는 것이 좋다.
여러가지 이유로 요청이 들어지지 않을때에는 빨리 포기하고 웃음으로 안내원에게 '땡큐'를 하고 자리에 앉아야한다. 같이 온 사람끼리도 소란스럽게 '여기 앉으세요, 아니예요 저기 앉으세요' 하지 말고 서로 재빨리 눈치껏 자리에 앉는다.
상 위에 혹시 냅핀이 놓여져 있다면, 슬쩍 냎킨을 들어 상 아래에서 살짝 흔들어 핀 다음에 무릎에 올려 놓는다. 식당에 오기 전부터 먹을 것을 정하고 있었다고 해도, 잠시 메뉴를 훑어보는 시간을 갖고, 웨이터가 오늘의 특별 요리를 말 할 때에는 경청하는 것이 신사숙녀다운 태도다. 메뉴를 한참 들여다봐도 정하지를 못하는 때도 종종 있다. 이럴 때 웨이트레스에게 '시간을 좀더 주세요.'라고 말하면 된다. 웨이트레스를 세워놓고 메뉴를 찾던지 같이 간 사람들이랑 뭘 먹지? 이거 맛있어요? 쑥덕거리며 의논하는 것은 보기에 좋지 않다.
한국음식처럼 떡국이요 해물볶음이요 하고 끝나면 좋은데, 미국 식당에서는 시키는 음식에 따라 웨이트레스의 질문이 많다. 우선 아페타이즈, 메인 메뉴 디저트까지 정해야 할 것이 많다. 물론 3 코스를 다 하지 않아도 되지만, 곧장 메인 메뉴로 시킬때는 다정하게 정중하게 말한다. 메뉴를 다 정했다해도, 살라드에는 어떤 드레싱을 칠 것인지 고기는 잘 익힐 것인지 덜 익힐 것인지....하나하나 천천히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 좋다.
즉 한마디로 서두르지 않으면서 느긋하게 식사에 임하는 것이다.
식사가 끝났을 때에 '배가 부르다'며 디저트를 생략하는 것은 문제가 없는 일이다. 그러나 친지들과 더 이야기를 하고 싶으면, 디저트를 시키면 된다.
Saturday, August 10, 2019
노려의 살아가는데 필요한 에티켓/ 선물
2004년 12월 23일(목)
선물(Gratuity)주는 데도 에티켓이 있다.
간단한 카드. 정성스런 마음 표시해야
1년 중 가장 바쁜 이대, 가게 운영 등으로 지친 몸인데도 불구하고, 교회생하세 동창회에 온갖 망년회가 겹치며, 선물 사러 다니느라 논 코 뜰 새가 없다. 윗사람들서부터 아이들, 친지들...선물 사야할 리스트는 길기만하다.
이럴때 일수록 누구에게보다 먼저 지극한 배려흘 해야 할 선물 리스트가 있다. 연례행사이 '체면치레'가 아닌, 지난 1년 동안도 꾸준히 우리의 일상생활에 서비스를 해 온 사람들이다. 즉, 우펴내달부, 신문배달부, 쓰레기 치우는 사람, 베이비시터, 파출부, 정원사 또는 단골 이발사나 미용사 등이다.
법으로 정해진 일은 아니지만 미국 사람들 대부분이 크리스마스와 연말에 이들에게 돈이나 선물로 감사표시를 한다. 그냥 봉ㅌㅇ 돈을 넣어 주는 것이 아니라 간단한 카드와 함께 정성스럽게 마음을 표시한다.
겨울 방학을 ㅏ면서 학교 선생님한테 주는 선물은 10달라에서 20다라 사이, 한국 사람들은 자기 아이를 좀 잘 봐다라고 비싼 선물을 하곤 하는데, 이것은 오히려 서로지간이 품위를 떨어트리는 일이 된다. 또한 선생님 한테는 절대로 돈을 선물로 하지 않는 것이 미국 사회의 불문율이다.
우체부나 쓰레기 치우는 사람들에게는 돈을 주는 것이 상례이다.그런데 미 정부의 다른 기관과 마찬가지로 우정국도 직원들이 돈을 받느 ㄴ걱으 ㄹ금하고 있지만, 크리스마스 때 만큼은 20달라 한도 내에서 돈이나 선물을 받는 것은 허용을 하고 있다.
물론 주는 사람의 마음에 달린 일이지만, 얼만 큼ㅇㄹ 저야하는 건지 모를때마 맣다. 보통 쓰레기 치우는 사람은 각각 15달라에서 20달러를 ㅈ는 것이 합당하며, 베이비 시터는 두번 정도의 베이비 시트를 하는 값, 청수해 주는 사람에게는 1주일 급료, 이발사나 미용사 등에게는 한번 머리를 해주는 비용에 간단한 선물을 겸하기도 하며, 신문 배달원의 경우 일간지는 15달러에서 20달러 주간지일 경우는 달라에서 15달라를 주는 것이 예이에 어긋나지 않는다.
그 외에도 아파트 관리인, 동 맨, 주차해주는 사람 등 우리의 삶을 편안하게 해주는 사람들에게 꼭 작은 선물이나마 전하며, 새해에도 좋은 서비스를 기대해보는 것이 현명하다.
미국에 와서 색다르게 느낀 것 중에 하나가, 한국과는 달리 사장님이나 직장이 보스가 오히려 직언이나 종업원들에게 선물을 한다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물심양명' 이것이 진정한 선물의 의미가 아닌가 한다.
선물(Gratuity)주는 데도 에티켓이 있다.
간단한 카드. 정성스런 마음 표시해야
1년 중 가장 바쁜 이대, 가게 운영 등으로 지친 몸인데도 불구하고, 교회생하세 동창회에 온갖 망년회가 겹치며, 선물 사러 다니느라 논 코 뜰 새가 없다. 윗사람들서부터 아이들, 친지들...선물 사야할 리스트는 길기만하다.
이럴때 일수록 누구에게보다 먼저 지극한 배려흘 해야 할 선물 리스트가 있다. 연례행사이 '체면치레'가 아닌, 지난 1년 동안도 꾸준히 우리의 일상생활에 서비스를 해 온 사람들이다. 즉, 우펴내달부, 신문배달부, 쓰레기 치우는 사람, 베이비시터, 파출부, 정원사 또는 단골 이발사나 미용사 등이다.
법으로 정해진 일은 아니지만 미국 사람들 대부분이 크리스마스와 연말에 이들에게 돈이나 선물로 감사표시를 한다. 그냥 봉ㅌㅇ 돈을 넣어 주는 것이 아니라 간단한 카드와 함께 정성스럽게 마음을 표시한다.
겨울 방학을 ㅏ면서 학교 선생님한테 주는 선물은 10달라에서 20다라 사이, 한국 사람들은 자기 아이를 좀 잘 봐다라고 비싼 선물을 하곤 하는데, 이것은 오히려 서로지간이 품위를 떨어트리는 일이 된다. 또한 선생님 한테는 절대로 돈을 선물로 하지 않는 것이 미국 사회의 불문율이다.
우체부나 쓰레기 치우는 사람들에게는 돈을 주는 것이 상례이다.그런데 미 정부의 다른 기관과 마찬가지로 우정국도 직원들이 돈을 받느 ㄴ걱으 ㄹ금하고 있지만, 크리스마스 때 만큼은 20달라 한도 내에서 돈이나 선물을 받는 것은 허용을 하고 있다.
물론 주는 사람의 마음에 달린 일이지만, 얼만 큼ㅇㄹ 저야하는 건지 모를때마 맣다. 보통 쓰레기 치우는 사람은 각각 15달라에서 20달러를 ㅈ는 것이 합당하며, 베이비 시터는 두번 정도의 베이비 시트를 하는 값, 청수해 주는 사람에게는 1주일 급료, 이발사나 미용사 등에게는 한번 머리를 해주는 비용에 간단한 선물을 겸하기도 하며, 신문 배달원의 경우 일간지는 15달러에서 20달러 주간지일 경우는 달라에서 15달라를 주는 것이 예이에 어긋나지 않는다.
그 외에도 아파트 관리인, 동 맨, 주차해주는 사람 등 우리의 삶을 편안하게 해주는 사람들에게 꼭 작은 선물이나마 전하며, 새해에도 좋은 서비스를 기대해보는 것이 현명하다.
미국에 와서 색다르게 느낀 것 중에 하나가, 한국과는 달리 사장님이나 직장이 보스가 오히려 직언이나 종업원들에게 선물을 한다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물심양명' 이것이 진정한 선물의 의미가 아닌가 한다.
노려의 살아가는데 필요한 에티켓/ 아이 엠 쏘리
2004년 12월 30일(목)
"I am Sorry "뒤엔 변명 않는 것이 좋아
'어쩌면 고맙단 말 한마디도 안할까'와 꼭 마찬가지로 우리가 흔히 듣는 말이 하나 더 있다. "어쩌면 미안하단 소리 하나 없지?"
'사랑은 미안하단 소리를 하지 않는 거예요.' 영화 러브 스토리에서 알리 맥그로우가 라이언 오닐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이다. 사랑한다면 미안해 할 일은 아예 하지 말라는 소리인지? 아직도 그 깊은 뜻은 잘 모르겠지만, 우리는 남에게 뿐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에게까지도 얼마나 많이 미안한 일을 하면서 사는 지 모른다.
작게는 붐비는 지하철 속에서 남이 몸에 부딪쳤을 때서부터, 온갖 인간관계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커다란 불화에 까지. 단순한 말 'I am sorry'는 부뚜막의 소금과도 같은 역할을 하게 된다.
생각 외로 많은 사람들이 살짝 애교 있게 '미안해요' 한마디로 넘어 갈 수 있는 것을ㅇ 무뚝뚝하게 함구무언하여 일을 크게 만들곤 한다.
매일매일 수 많은 사람들을 대하는 비지네스를 하고 있는 하눅 사람들로서는 아주 사소한 일에도 'I am sorry'를 하여,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쩔 수 없었던 일이었다 해도 상대에게 불편을 까쳤을 때에는 구구절절 변명을 늘어 놓은 것 보다는 간단히 'I am sorry'를 하느 ㄴ것이 훨씬 효과가 있다.
I am sorry해놓고는 BUT... 하고 설명을 늘어놓지 않는 것이 좋다.
그러나 뭐든지 그렇듯이, 입에 말린 I am sorry는 상대방을 더욱 화나게 하며, 미안하단 말을 잒 반복하는 것도 오히려 역효과를 준다.
더구나 객관적으로 봐도 전혀 미안할 일도 아닌 것을 미안하다고 하는 경우도 종종 있는데, 가식적인 성격마 더 나타내 줄 뿐이다.
미안함을 표현할 때에도 상대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정중한 태도를 갖춰야 할 것이다. '아, 미안하다고 했잖아요.'라는 식이, 이 한마디로 모든 것이 해결됬대는 태도는 말 안 하니만 못하다.
더 나아가서는 , 상대방의 사과를 너그러히 잘 받아 들여 주는 태도를 함께 갖추어야 명실공히 멋진 인품이 소유자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에티켓이란 복잡하고 까다로운 법칙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공동 생활에서 남의 기분을 배렿ㄴ느 정신이 기본인 것이다, 즉 입장을 바꿔보며 금방 알 수 있는 일이다.
Thank You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I am sorry를 말하는 것도 우리가 늘 챙겨야 할 일상생활의 과제이다.
"I am Sorry "뒤엔 변명 않는 것이 좋아
'어쩌면 고맙단 말 한마디도 안할까'와 꼭 마찬가지로 우리가 흔히 듣는 말이 하나 더 있다. "어쩌면 미안하단 소리 하나 없지?"
'사랑은 미안하단 소리를 하지 않는 거예요.' 영화 러브 스토리에서 알리 맥그로우가 라이언 오닐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이다. 사랑한다면 미안해 할 일은 아예 하지 말라는 소리인지? 아직도 그 깊은 뜻은 잘 모르겠지만, 우리는 남에게 뿐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에게까지도 얼마나 많이 미안한 일을 하면서 사는 지 모른다.
작게는 붐비는 지하철 속에서 남이 몸에 부딪쳤을 때서부터, 온갖 인간관계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커다란 불화에 까지. 단순한 말 'I am sorry'는 부뚜막의 소금과도 같은 역할을 하게 된다.
생각 외로 많은 사람들이 살짝 애교 있게 '미안해요' 한마디로 넘어 갈 수 있는 것을ㅇ 무뚝뚝하게 함구무언하여 일을 크게 만들곤 한다.
매일매일 수 많은 사람들을 대하는 비지네스를 하고 있는 하눅 사람들로서는 아주 사소한 일에도 'I am sorry'를 하여,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쩔 수 없었던 일이었다 해도 상대에게 불편을 까쳤을 때에는 구구절절 변명을 늘어 놓은 것 보다는 간단히 'I am sorry'를 하느 ㄴ것이 훨씬 효과가 있다.
I am sorry해놓고는 BUT... 하고 설명을 늘어놓지 않는 것이 좋다.
그러나 뭐든지 그렇듯이, 입에 말린 I am sorry는 상대방을 더욱 화나게 하며, 미안하단 말을 잒 반복하는 것도 오히려 역효과를 준다.
더구나 객관적으로 봐도 전혀 미안할 일도 아닌 것을 미안하다고 하는 경우도 종종 있는데, 가식적인 성격마 더 나타내 줄 뿐이다.
미안함을 표현할 때에도 상대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정중한 태도를 갖춰야 할 것이다. '아, 미안하다고 했잖아요.'라는 식이, 이 한마디로 모든 것이 해결됬대는 태도는 말 안 하니만 못하다.
더 나아가서는 , 상대방의 사과를 너그러히 잘 받아 들여 주는 태도를 함께 갖추어야 명실공히 멋진 인품이 소유자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에티켓이란 복잡하고 까다로운 법칙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공동 생활에서 남의 기분을 배렿ㄴ느 정신이 기본인 것이다, 즉 입장을 바꿔보며 금방 알 수 있는 일이다.
Thank You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I am sorry를 말하는 것도 우리가 늘 챙겨야 할 일상생활의 과제이다.
Thursday, August 8, 2019
노려의 살아가는데 필요한 에티켓/땡큐 땡큐
2004년 12월 16일
땡큐 땡큐!
<백이 민족, 은근과 끈기, 동방예의지국은 우리 민족에게 붙여진 이름들이다. '백의 민족'이야 아마도 엣날 맨 광목으로만 옷을 해 입어서 그랬을 것이가 짐작은 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이 정말로 은근하고 끈기가 있는 성격을 갖고 있는지, 또 정말로 우리를 예의지국이 사람들이라 자부할수 있는지? 답은 이미 알고 있다. 미국ㅇㄴ 청바지 통기타 시절부터 누구나 동경하던 자유이 나라다.
그런데 이 큰 나라 이 대단한 사람들의 자유는 철저하게 질서와 예절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을 알아야한다.
이제 웬만큼 잘 살고들 있고 2세들이 미숙 주류사회로 쭉쭉 진출 해가는 이때에, 1세 한국인들의 품격도 함께 업그레이드 할 때가 된 것 같다. 누가 '동방 예의지국'사람이라고 알아주진 않더라도 적어도 자녀 들이 부모님과 같이 고급 레스토랑에 가기를 속으로 꺼려하지 않을 정도만이라도 보조를 맞추어 보면 어떨까?
'코리안'이라는 너무나 확실하게 드러나는 겉 모습을 갖고 어느 곳 어느 상황에서나 자연스러울 수 있는 '에티켓'에 대해 전 한국일보 깆자 노려 씨와 조목 조목 교과서랑 수련장 찾아보면 함께 하는 과외공부를 해보자.>
'땡큐 할 때는 꼭 상대방 눈 마주쳐야'
'어쩌면 고맙단 말 한마디 없을까...' 귀에 익은 말이다.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은 성경에도 '범사에 감사하라'란 말이 있듯이 인간이 갖춰야 할 최상의 인격이다.
그러나 감사의 마음을 나타내지 앟으면 아무 소용 없다. 엔만한 미국 사람들은 하루 종일 '땡큐'란 말을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은 어린아이가 말을 배우기 지작하기도 전부터 땡큐를 가르친다.
가게에서 물건을 사고 나서 물건으 판 사람에게 오히려 고맙다고 말하며 아이에게 '뭐라고 말해야 되지?" 하면서 꼭 "Thank You"란 말을 하도록 시킨다. 물건을 살 수 있었음을 감사하는 것이다.
땡큐를 할 때에는 꼭 상대방의 눈과 마주치도록 해야한다.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고는 얼굴 땡큐를 할 때에는 곡 상대방의 뒤에다 대고 "땡큐"를 하는 것은 좋지 않다.
성의 없이 습관적으로 나오는 땡큐야 말로 불쾍ㅁ을 주는 행위이다.
"Thank you very much' 'Thank you so much'하는 것이 더 세련되고 우아하며 예절바른 태도지만 자주 보는 친한 사이의 작은 일에는 가볍게 'Thanks'라고 하는 것이 더 친근감이 있다.
한국 사람들이 /댕큐는 잘해도 땡큐에 대한 답을 잘 안하는 경향이 있다. 상대방이 땡큘ㄹ 했을 때에는 당연히 "You are welcome' 'No problem''Any time' 등으로 응답을 해야한다. 영어가 잘 안되는 사람이라도 이것 만큼은 여슨블 해서라도 꼭 익혀둬어야겠다. "Thank you '에 대한 공부는 영ㅇ 공가 아니라 인품에 대한 것이다.
또한 미국 사람들의 좋은 관습 중 하나가 땡큐 카드를 보내는 것이다. 결혼 뿐 아니라 생일, 졸업 이사, 승진 등 선물을 받았을 때, 장례식, 문병 등 남으로부터 받은 배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카드에 짧게 적어 보내는 것이다.
크리스마스 연말 연시 복잡하고 스트레스가 많을 때일 수록 따듯하게 땡큐를 ㅈ고 받으며 또 지난 1년 지내오면서 감사해야 할 사람들을 찾아 자기만이 독특한 방법으로 마음을 전해야겠다.
땡큐 땡큐!
<백이 민족, 은근과 끈기, 동방예의지국은 우리 민족에게 붙여진 이름들이다. '백의 민족'이야 아마도 엣날 맨 광목으로만 옷을 해 입어서 그랬을 것이가 짐작은 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이 정말로 은근하고 끈기가 있는 성격을 갖고 있는지, 또 정말로 우리를 예의지국이 사람들이라 자부할수 있는지? 답은 이미 알고 있다. 미국ㅇㄴ 청바지 통기타 시절부터 누구나 동경하던 자유이 나라다.
그런데 이 큰 나라 이 대단한 사람들의 자유는 철저하게 질서와 예절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을 알아야한다.
이제 웬만큼 잘 살고들 있고 2세들이 미숙 주류사회로 쭉쭉 진출 해가는 이때에, 1세 한국인들의 품격도 함께 업그레이드 할 때가 된 것 같다. 누가 '동방 예의지국'사람이라고 알아주진 않더라도 적어도 자녀 들이 부모님과 같이 고급 레스토랑에 가기를 속으로 꺼려하지 않을 정도만이라도 보조를 맞추어 보면 어떨까?
'코리안'이라는 너무나 확실하게 드러나는 겉 모습을 갖고 어느 곳 어느 상황에서나 자연스러울 수 있는 '에티켓'에 대해 전 한국일보 깆자 노려 씨와 조목 조목 교과서랑 수련장 찾아보면 함께 하는 과외공부를 해보자.>
'땡큐 할 때는 꼭 상대방 눈 마주쳐야'
'어쩌면 고맙단 말 한마디 없을까...' 귀에 익은 말이다.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은 성경에도 '범사에 감사하라'란 말이 있듯이 인간이 갖춰야 할 최상의 인격이다.
그러나 감사의 마음을 나타내지 앟으면 아무 소용 없다. 엔만한 미국 사람들은 하루 종일 '땡큐'란 말을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은 어린아이가 말을 배우기 지작하기도 전부터 땡큐를 가르친다.
가게에서 물건을 사고 나서 물건으 판 사람에게 오히려 고맙다고 말하며 아이에게 '뭐라고 말해야 되지?" 하면서 꼭 "Thank You"란 말을 하도록 시킨다. 물건을 살 수 있었음을 감사하는 것이다.
땡큐를 할 때에는 꼭 상대방의 눈과 마주치도록 해야한다.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고는 얼굴 땡큐를 할 때에는 곡 상대방의 뒤에다 대고 "땡큐"를 하는 것은 좋지 않다.
성의 없이 습관적으로 나오는 땡큐야 말로 불쾍ㅁ을 주는 행위이다.
"Thank you very much' 'Thank you so much'하는 것이 더 세련되고 우아하며 예절바른 태도지만 자주 보는 친한 사이의 작은 일에는 가볍게 'Thanks'라고 하는 것이 더 친근감이 있다.
한국 사람들이 /댕큐는 잘해도 땡큐에 대한 답을 잘 안하는 경향이 있다. 상대방이 땡큘ㄹ 했을 때에는 당연히 "You are welcome' 'No problem''Any time' 등으로 응답을 해야한다. 영어가 잘 안되는 사람이라도 이것 만큼은 여슨블 해서라도 꼭 익혀둬어야겠다. "Thank you '에 대한 공부는 영ㅇ 공가 아니라 인품에 대한 것이다.
또한 미국 사람들의 좋은 관습 중 하나가 땡큐 카드를 보내는 것이다. 결혼 뿐 아니라 생일, 졸업 이사, 승진 등 선물을 받았을 때, 장례식, 문병 등 남으로부터 받은 배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카드에 짧게 적어 보내는 것이다.
크리스마스 연말 연시 복잡하고 스트레스가 많을 때일 수록 따듯하게 땡큐를 ㅈ고 받으며 또 지난 1년 지내오면서 감사해야 할 사람들을 찾아 자기만이 독특한 방법으로 마음을 전해야겠다.
조선일보: 노려의 맨해튼 저널/ 백조의 호수
2001년 7월 11일
백조의 호수
지난 7월 4일 모처럼 연휴를 앞두고 무엇을 할까 고민했었다. 어디 가고 싶은 곳도 없었고, 어디서 오라는데도 없었고 또 가까이 사는 친천ㄱ도 멀리 여행을 떠난다고 했다.
신문을 뒤적이는데 머리에 기털을 꽂은 공주님과 공주님으르 사랑하는 애틋한 몸짓이 왕자님 사진의 발레 광고가 눈에 띄었다.
백조의 호수! 갑자기 먼 먼 어린시절 어느 나라인지도 모르는 나라의 공주와 오아자의 이야기를들로 가슴이 설레이던 그 기분이 슬쩍 스치는 듯했다. 그렇지, 마술에 걸려 백조가 된 공주, 그리고 멋진 왕자님, 공주님 이름이 생각났다. 오데뜨 공주 그리고 지그프리드 왕자님!
딸도 어릴때 한국싶굼점에서 빌려온 어린이 만화비디오 '백조의 호수'ㄹㄹ 재미있게 봤었다고 했다. 신문광고에 난 전화번호르 ㄹ돌렸다. 신호가 떨어지자 마자 나오는 말은 '이번 스피링 시즌 발레 공연에 매진된 표는 없습니다.'였다. 용기를 내서 누루라느 넌호르 ㄹ따라 눌러보니, 20불, 25부르 70불, 80불짜리 표가 있었다. 25불 짜리고 결정했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 무척 유명한 곳이지만 그 곳은 나하고 큰 관계가 없는 곳이었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를 친정 어머니가 오셨을 때 한번 모시고 갔을 뿐 여유를 갖고 우아하게 오페라 감상하러 가 본적이 없다.
그 옆 알리스 툴리 홀이며 작은 컨서트 홀에야 ㅅ도 없이 많이 갔었고, 링컨 센터 광장에서 열리곤 하는 크래프ㅡ 페어느 ㄴ읿ㄹ 찾아가곤 했었지만, 이제야 제대로 그 자온인 메트로폴리탄 ㅗ페라 하우스엘 간 것이다.
한 여름밤을 발레 구경으로 즐길 온 ㅅ 많은 사람들에 ㅅㄲ여 과히 나쁘지 않은 좌석을 찾아가 앉고 나니, 음을 고르는 오케스트라의 소리와 웅장한 무대의 커텐과...... 오길 잘했다 싶었다.
워낙 발레에ㄹ는 기본 저식이 없던 터ㅇ라, 누가 공연을 하는지, 누가 안무를 했는지 별 관심이 없었다. 프로그램을 뒤적이며 무용가들 사진을 건성으로 보면서 뻔히 다 알고 있는 스토리지만 무용으로 어떻게 전개 해 나갓을까 하여 스토리를 읽어보았다. 글을 읽던 내 눈이 딱 머추고 만 귀절이 있었다.
마귀이 주술에 걸려 공주가 백조로 변하자 공주의 어머니가 흘린 눈물로 호수가 채워졌다는 구절이었다. 그렇구나. 만약 내 딸이 백조로 변해버렸다면, 내가 얼마나 울었을까. 그 엄마이 심정이 갑자기 내 것처럼 다가왔다. 눈시울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엄마라는 존재는 똑 같은가보다. 어린 시절엔 백조의 호수하면 우아한 하얀 백조가 아름다운 공주로 변하는 환상적인 광경이라든지 미남 왕자님이 목숨건 사랑의 이야기만이 중요했다. 간혹 여학교 시절 무용반 공연에서 단편적으로 보던 백조의 홋 무용의 인상은 그저 하연 망사로 부채처럼 펼쳐지는 무용복이 아ㅡㅁ답다는 것 뿐이었다. 그러고보니 이 이야기이 제목이 '백조가 된 공주'라든지 '백조 공줄ㄹ 사랑한 왕자민'이 아니라 '백조의 호수'라고 지어진 것이 의미심장했다.
어머니의 눈물로 만들어진 호수가 아닌가.
흥청대는 독립기념일 연휴를 백조의 호수로 정하고 나서도 내가 늙었나보다 했는데, 그 백조의 호수 4막 중 한번도 등장하지 않는 공주의 어머니에 마음이 사로잡혀 버린 내가 정말 이젠 어쩔수 없이 노년기에 정ㅂ어들었다는 것을 확인했다.
며칠 후 신문에 '아메리칸 발레 극장'의 스프링 시즌을 마감하는 리뷰가 난 것을 보니, 바로 우리가 본 백조의 호수를 다루고 있었다. 호평이었다.
특히 두 남녀 주인공이 차 잘한거라고 했다. 그리고 그 수많은 백조 중 누구는 어떻고 또 누구는 어떻다는 평을 하면서 왕자님이 어머니로 나온 여왕은 이번 공연을 마지막으로 은퇴한다고 했다.
내 자신이 어머니로서 동서고금이 어머니가 같다는 공통점으 진하게 맛 본 '백조의 호수'였다.
백조의 호수
지난 7월 4일 모처럼 연휴를 앞두고 무엇을 할까 고민했었다. 어디 가고 싶은 곳도 없었고, 어디서 오라는데도 없었고 또 가까이 사는 친천ㄱ도 멀리 여행을 떠난다고 했다.
신문을 뒤적이는데 머리에 기털을 꽂은 공주님과 공주님으르 사랑하는 애틋한 몸짓이 왕자님 사진의 발레 광고가 눈에 띄었다.
백조의 호수! 갑자기 먼 먼 어린시절 어느 나라인지도 모르는 나라의 공주와 오아자의 이야기를들로 가슴이 설레이던 그 기분이 슬쩍 스치는 듯했다. 그렇지, 마술에 걸려 백조가 된 공주, 그리고 멋진 왕자님, 공주님 이름이 생각났다. 오데뜨 공주 그리고 지그프리드 왕자님!
딸도 어릴때 한국싶굼점에서 빌려온 어린이 만화비디오 '백조의 호수'ㄹㄹ 재미있게 봤었다고 했다. 신문광고에 난 전화번호르 ㄹ돌렸다. 신호가 떨어지자 마자 나오는 말은 '이번 스피링 시즌 발레 공연에 매진된 표는 없습니다.'였다. 용기를 내서 누루라느 넌호르 ㄹ따라 눌러보니, 20불, 25부르 70불, 80불짜리 표가 있었다. 25불 짜리고 결정했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 무척 유명한 곳이지만 그 곳은 나하고 큰 관계가 없는 곳이었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를 친정 어머니가 오셨을 때 한번 모시고 갔을 뿐 여유를 갖고 우아하게 오페라 감상하러 가 본적이 없다.
그 옆 알리스 툴리 홀이며 작은 컨서트 홀에야 ㅅ도 없이 많이 갔었고, 링컨 센터 광장에서 열리곤 하는 크래프ㅡ 페어느 ㄴ읿ㄹ 찾아가곤 했었지만, 이제야 제대로 그 자온인 메트로폴리탄 ㅗ페라 하우스엘 간 것이다.
한 여름밤을 발레 구경으로 즐길 온 ㅅ 많은 사람들에 ㅅㄲ여 과히 나쁘지 않은 좌석을 찾아가 앉고 나니, 음을 고르는 오케스트라의 소리와 웅장한 무대의 커텐과...... 오길 잘했다 싶었다.
워낙 발레에ㄹ는 기본 저식이 없던 터ㅇ라, 누가 공연을 하는지, 누가 안무를 했는지 별 관심이 없었다. 프로그램을 뒤적이며 무용가들 사진을 건성으로 보면서 뻔히 다 알고 있는 스토리지만 무용으로 어떻게 전개 해 나갓을까 하여 스토리를 읽어보았다. 글을 읽던 내 눈이 딱 머추고 만 귀절이 있었다.
마귀이 주술에 걸려 공주가 백조로 변하자 공주의 어머니가 흘린 눈물로 호수가 채워졌다는 구절이었다. 그렇구나. 만약 내 딸이 백조로 변해버렸다면, 내가 얼마나 울었을까. 그 엄마이 심정이 갑자기 내 것처럼 다가왔다. 눈시울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엄마라는 존재는 똑 같은가보다. 어린 시절엔 백조의 호수하면 우아한 하얀 백조가 아름다운 공주로 변하는 환상적인 광경이라든지 미남 왕자님이 목숨건 사랑의 이야기만이 중요했다. 간혹 여학교 시절 무용반 공연에서 단편적으로 보던 백조의 홋 무용의 인상은 그저 하연 망사로 부채처럼 펼쳐지는 무용복이 아ㅡㅁ답다는 것 뿐이었다. 그러고보니 이 이야기이 제목이 '백조가 된 공주'라든지 '백조 공줄ㄹ 사랑한 왕자민'이 아니라 '백조의 호수'라고 지어진 것이 의미심장했다.
어머니의 눈물로 만들어진 호수가 아닌가.
흥청대는 독립기념일 연휴를 백조의 호수로 정하고 나서도 내가 늙었나보다 했는데, 그 백조의 호수 4막 중 한번도 등장하지 않는 공주의 어머니에 마음이 사로잡혀 버린 내가 정말 이젠 어쩔수 없이 노년기에 정ㅂ어들었다는 것을 확인했다.
며칠 후 신문에 '아메리칸 발레 극장'의 스프링 시즌을 마감하는 리뷰가 난 것을 보니, 바로 우리가 본 백조의 호수를 다루고 있었다. 호평이었다.
특히 두 남녀 주인공이 차 잘한거라고 했다. 그리고 그 수많은 백조 중 누구는 어떻고 또 누구는 어떻다는 평을 하면서 왕자님이 어머니로 나온 여왕은 이번 공연을 마지막으로 은퇴한다고 했다.
내 자신이 어머니로서 동서고금이 어머니가 같다는 공통점으 진하게 맛 본 '백조의 호수'였다.
조선일보: 노려의 맨해튼 저널/ 독립기념일과 응급실
2002년 7월 5일
내일 모레 올해 독립기념일에 무얼 할까? 머리가 멍하다. 별로 하고 싶은 것도 없고 그저 쉬고만 싶다.
이제 아이들도 가 커서 한 아이는 캠프라고 떠나있고 또 큰 아이도 자기 일로 바쁘다.
더군다나 테러 공포까지 겹쳐있어서 어디 특별히 가는 일도 겁나는 일이긴 하다.
온 미국 아니 온 셰게를 뒤흔드는 테러의 공포가 아니라 너무나 퍙온한 때에 내가 맨해튼에서 당한 테러가 생각난다.
어딜가나 교통이 막히고 복잡하고 덥고 지치고하면서도 우리 가족은 거의 매년 7월 4일에 맨해튼 불꽃 놀이 구경으라든지 하여간 어딘가를 갔었다.
한국에서도 추석같은 명절이면 주로 명절 특선이라고 떠들어대는 영화를 보러 가곤했었다.ㅔ
그 때 느끼는 것은 두가지다.
ㅍㅅ 사려고 줄서서 기다리고 나서 겨우 다음 회를 사곤했기 때문에 절대로 명절에 영화 보러 가는게 아니라는 것과 이때 서울 사대문을 닫으면 서울이 얼마나 한가하고 좋을까 하는 것이었다.
가족과 함께 지내라는 캠페인에도 불구하고 크리스마스 때마다 친구들이랑 어우려 가정 밖에서 놀기 일쑤였던 내가 내 가정을 갖고도 어디 가는 것을 좋아하기는 마찬가지이다.
몇 년 전 미국 독립기념일에 가깝게 지내는 이웃 두 딥과 범심ㅇㄹ 잘 해먹고 나서 스테이션 웨고에 끼어 앉아서들 맨해튼으로 놀러 나갔다.
꼬마들이 몇몇 있었으므로 우리는 센튜럴 카프 근처에 차를 세우고 FAO 라는 대규모 장난감 가게에 들렀다. 그날 특별한 이벤트도 많았고 아이들 뿐 아니라 이런 곳엘 처음 와보는 어른들도 동심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평송 팽팽한 긴강감이 들던 맨해튼 거리도 슬슬 걷는 관광객들로 한산하기까지 했다.
근처에서 디즈니 가게며 구경 다니다가 시장기가 돌자 즐거운 기분의 여세를 몰아 우리는 차이나타운으로 가서 실컷 맛있게 먹었더. 거기 까지는 좋았다.
기름진 음식을 잔뜩 먹고 나온 한 대가 슬슬 차이나타운 거리를 거닐때 쯤 '따다다다 펑펑...' 여기저기서 폭죽 터지는 소리가 났다.
하겐 다즈 아이스크림을 손에 들고 우리는 모두 리틀 이태리 쪽으로 걸어갔다.
식당이 즐비한 거리의 뒤편에는 문을 닫은 생선가게며 우중충하고 냄새가 났지만 아랑곳 앟고 걸어갔다.
아이들은 일행과 다른 쪽 거리로 가고 있었고 남편이 내 앞에서 걷고 있었다.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는 것은 '따다다다닫 따딱...'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과 동시에 내 이마에 먼가가 와서 닿으면서 '핑~' 하는 느낌을 받은 것이다.
무의ㅣㄱ적으로 한 손에 들었던 냅킨을 이마에 대고 남편을 불렀다.
부르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는 남편에게 냅킨을 젖혀 보여주었다. 순간은 남편은 다시 뒤돌아 걸어가면서 아이스크림을 땅에 던져버렸다.
어떻게 다른 쪽에 있던 일행들과 만났는지 누가 어떻게(그 때는 셀룰러 폰이 없었다) 911을 불러 응급차가 왔는지 모른다.
하여간 어둑어둑해지는 복잡한 차이아타운 길 뫁ㅇ이에서 사이렌을 울리며 응급실로 ㅏㅆ다. 일행은 뒤쫓아 왔다.
거기서 이마를 몇 바늘 꿰맸고 자정이 다 되어 돌아가는 스테이션 웨곤 차 안엣 한 아줌마는 바빠서 아침에 기도를 못했다고 죄스러워 했다.
"아니 )) 엄마가 기도 안했는데 왜 내가 다쳐요?" 하면서 오히려 내가 위로해주었다.
그 해 더운 여름 상처에 땀이 흐르지 않도록 조심하던 생각이 난다.
내가 당한 그 테러가 그 이후 내 태도에 전혀 부정적인 영향을 주기 않았지만, 얼해 독립기념일이 다가와도 별 감흥이 없는 것은 내가 늙은 탓인가?
그만큼 9.11사태가 일게 모르게 내 정서에 영향을 준것인가.
내일 모레 올해 독립기념일에 무얼 할까? 머리가 멍하다. 별로 하고 싶은 것도 없고 그저 쉬고만 싶다.
이제 아이들도 가 커서 한 아이는 캠프라고 떠나있고 또 큰 아이도 자기 일로 바쁘다.
더군다나 테러 공포까지 겹쳐있어서 어디 특별히 가는 일도 겁나는 일이긴 하다.
온 미국 아니 온 셰게를 뒤흔드는 테러의 공포가 아니라 너무나 퍙온한 때에 내가 맨해튼에서 당한 테러가 생각난다.
어딜가나 교통이 막히고 복잡하고 덥고 지치고하면서도 우리 가족은 거의 매년 7월 4일에 맨해튼 불꽃 놀이 구경으라든지 하여간 어딘가를 갔었다.
한국에서도 추석같은 명절이면 주로 명절 특선이라고 떠들어대는 영화를 보러 가곤했었다.ㅔ
그 때 느끼는 것은 두가지다.
ㅍㅅ 사려고 줄서서 기다리고 나서 겨우 다음 회를 사곤했기 때문에 절대로 명절에 영화 보러 가는게 아니라는 것과 이때 서울 사대문을 닫으면 서울이 얼마나 한가하고 좋을까 하는 것이었다.
가족과 함께 지내라는 캠페인에도 불구하고 크리스마스 때마다 친구들이랑 어우려 가정 밖에서 놀기 일쑤였던 내가 내 가정을 갖고도 어디 가는 것을 좋아하기는 마찬가지이다.
몇 년 전 미국 독립기념일에 가깝게 지내는 이웃 두 딥과 범심ㅇㄹ 잘 해먹고 나서 스테이션 웨고에 끼어 앉아서들 맨해튼으로 놀러 나갔다.
꼬마들이 몇몇 있었으므로 우리는 센튜럴 카프 근처에 차를 세우고 FAO 라는 대규모 장난감 가게에 들렀다. 그날 특별한 이벤트도 많았고 아이들 뿐 아니라 이런 곳엘 처음 와보는 어른들도 동심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평송 팽팽한 긴강감이 들던 맨해튼 거리도 슬슬 걷는 관광객들로 한산하기까지 했다.
근처에서 디즈니 가게며 구경 다니다가 시장기가 돌자 즐거운 기분의 여세를 몰아 우리는 차이나타운으로 가서 실컷 맛있게 먹었더. 거기 까지는 좋았다.
기름진 음식을 잔뜩 먹고 나온 한 대가 슬슬 차이나타운 거리를 거닐때 쯤 '따다다다 펑펑...' 여기저기서 폭죽 터지는 소리가 났다.
하겐 다즈 아이스크림을 손에 들고 우리는 모두 리틀 이태리 쪽으로 걸어갔다.
식당이 즐비한 거리의 뒤편에는 문을 닫은 생선가게며 우중충하고 냄새가 났지만 아랑곳 앟고 걸어갔다.
아이들은 일행과 다른 쪽 거리로 가고 있었고 남편이 내 앞에서 걷고 있었다.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는 것은 '따다다다닫 따딱...'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과 동시에 내 이마에 먼가가 와서 닿으면서 '핑~' 하는 느낌을 받은 것이다.
무의ㅣㄱ적으로 한 손에 들었던 냅킨을 이마에 대고 남편을 불렀다.
부르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는 남편에게 냅킨을 젖혀 보여주었다. 순간은 남편은 다시 뒤돌아 걸어가면서 아이스크림을 땅에 던져버렸다.
어떻게 다른 쪽에 있던 일행들과 만났는지 누가 어떻게(그 때는 셀룰러 폰이 없었다) 911을 불러 응급차가 왔는지 모른다.
하여간 어둑어둑해지는 복잡한 차이아타운 길 뫁ㅇ이에서 사이렌을 울리며 응급실로 ㅏㅆ다. 일행은 뒤쫓아 왔다.
거기서 이마를 몇 바늘 꿰맸고 자정이 다 되어 돌아가는 스테이션 웨곤 차 안엣 한 아줌마는 바빠서 아침에 기도를 못했다고 죄스러워 했다.
"아니 )) 엄마가 기도 안했는데 왜 내가 다쳐요?" 하면서 오히려 내가 위로해주었다.
그 해 더운 여름 상처에 땀이 흐르지 않도록 조심하던 생각이 난다.
내가 당한 그 테러가 그 이후 내 태도에 전혀 부정적인 영향을 주기 않았지만, 얼해 독립기념일이 다가와도 별 감흥이 없는 것은 내가 늙은 탓인가?
그만큼 9.11사태가 일게 모르게 내 정서에 영향을 준것인가.
조선일보: 노려의 맨해튼 저널/ 뉴욕엔 똑 같은게 없다
2002년 6월 24일
뉴욕에서 한참 살다가 몇 년 만에 한국에 갔을 때 김포공항에 들어서면서 느낀 것은 '야 모두 한국 사람이네'라는 것이었다.
게다가 모두가 다 비슷비슷한 몸 싸이즈로 뭔가 획일적이라는 첫 인상을 받았다.
서울 시내에 나가보면, 뽀얗게 분을 바른 여성들의 동글납작한 얽ㄹ에 질서정연하게 진하고 뚜렷하게 한줄로 잘 그려진 눈 섶과 아웃라인을 분명하게 해서 정성 스럽게 립스틱이 칠해져 있는 입숙이 전부 다 똑 같게 보였다.
그리고 그 해의 유행색이었는지 거의 모든 여성이 파스텔 조의 옅은 쑥색 아니면 옆은 핑크 색 계통의 베이지 색의 옷들을 잘 차려입고들 있었는데, 이 모든 광경이 정말 낯 설게 느껴졌었다.
그러넫 매해튼 한 장소에 잠시만 머물러 서서 지나가는 사람을 바라보면 얼마나 다른 모습의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는지 금방 알수 있다.
무지무지 뚜ㅜㅇ뚱한 사람에서부터 장대같이 큰 사람, 땅따한 사람, 까만 얼굴, 밤색 얼굴, 머리에 터번을 두른 남자, ㅁ리 꼭데기에 빵덕 같은 헝겊을 얹은 남자, 여름에도 까만색 코틀ㄹ 입은 남자, 잠옷 같은 머풀러를 디집어 쓴 여인, 사리를 입은 인도 여인,빡빡 민 머리, 빠글빠글 곱슬머리, 노랑 머리, 빨간 머리...거기에 팔자 걸음 걷는 한국 아저씨에 손ㅇㄹ 획획 정며 걸어간ㄴ 한국 아줌마까지 뉴욕의 풍경을 장식한다.
그 중에서 여성들만 바라본다면, 물론 피부색부터가 제각각이지만, 전혀 남을 흉내 내지 않은, 제 멋대로이면서 세련된, 개성있고 독특한 모습을 한 뉴요커 여성들에게 놀랄 것이다.
한마디로 멋쟁이다. 분명 뉴욕에도 유행은 있다. 유행하는 색이 있고 옷이 있고 헤어 스타일이 있고 유행하는 가방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구두에도 가방에도 유행이 있다. 아마도 욕이야말로 항상 새로운 유행을 만들어내는 곳이지도 모른다.
9.11이후 뉴욕 사람들도 한 마음 한뜻으로 뭉치는 것을 보았지만, 그런ㄴ데도 각각이 다 다르게 보이는 이유는 뭘까. 그것은 각자가 자기만이 세곌ㄹ 갖고 있는 때문이 아닐까.
자기만의 세계를 갖고 그 다음에는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자신을 맞출 줄을 아는 것이 아닌가 한다.
월 스트릿 근처를 가보면 정장하고 화장 잘 한 여성들이 운동화를 긴고 서류갑방을 들고 백을 메고,또 그것도 모자라서 쇼핑 백까지 겹쳐 들고 바삐 걷는 모습을 본다.
저녁 때 브로드웨이나 링컨 센터, 카네기 홀 같은 곳에서는 화려하고 우아하게 차려입은 사람들이 대붑ㄴ이다.
한국에서 느낀 것은 백화점 갈때 친구 만날때나 음악회 갈 때나 차림이 똑 같다는 것이었다.
다른 스타일의 구찌 -빽이라도 한국 사람들이 들었을 때는 구ㅜ찌라는 이름의 같은 가방으르보이는 것은 나의 지나친 신경쓰임인가.
좀 다른 이야기 같지만 월드 컵 축구로 한국이란 온 나라가 빨간 모습 빨간 마음으로 일시분란하게 움직이는 것을 보면서 어떻게 저럴 수가 있을까 하는 마음에서 더욱 이렇게 다양한 미국 사람들, 뉴욕 사람들이 다시 보이는지도 모르겠다.
뉴욕에서 한참 살다가 몇 년 만에 한국에 갔을 때 김포공항에 들어서면서 느낀 것은 '야 모두 한국 사람이네'라는 것이었다.
게다가 모두가 다 비슷비슷한 몸 싸이즈로 뭔가 획일적이라는 첫 인상을 받았다.
서울 시내에 나가보면, 뽀얗게 분을 바른 여성들의 동글납작한 얽ㄹ에 질서정연하게 진하고 뚜렷하게 한줄로 잘 그려진 눈 섶과 아웃라인을 분명하게 해서 정성 스럽게 립스틱이 칠해져 있는 입숙이 전부 다 똑 같게 보였다.
그리고 그 해의 유행색이었는지 거의 모든 여성이 파스텔 조의 옅은 쑥색 아니면 옆은 핑크 색 계통의 베이지 색의 옷들을 잘 차려입고들 있었는데, 이 모든 광경이 정말 낯 설게 느껴졌었다.
그러넫 매해튼 한 장소에 잠시만 머물러 서서 지나가는 사람을 바라보면 얼마나 다른 모습의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는지 금방 알수 있다.
무지무지 뚜ㅜㅇ뚱한 사람에서부터 장대같이 큰 사람, 땅따한 사람, 까만 얼굴, 밤색 얼굴, 머리에 터번을 두른 남자, ㅁ리 꼭데기에 빵덕 같은 헝겊을 얹은 남자, 여름에도 까만색 코틀ㄹ 입은 남자, 잠옷 같은 머풀러를 디집어 쓴 여인, 사리를 입은 인도 여인,빡빡 민 머리, 빠글빠글 곱슬머리, 노랑 머리, 빨간 머리...거기에 팔자 걸음 걷는 한국 아저씨에 손ㅇㄹ 획획 정며 걸어간ㄴ 한국 아줌마까지 뉴욕의 풍경을 장식한다.
그 중에서 여성들만 바라본다면, 물론 피부색부터가 제각각이지만, 전혀 남을 흉내 내지 않은, 제 멋대로이면서 세련된, 개성있고 독특한 모습을 한 뉴요커 여성들에게 놀랄 것이다.
한마디로 멋쟁이다. 분명 뉴욕에도 유행은 있다. 유행하는 색이 있고 옷이 있고 헤어 스타일이 있고 유행하는 가방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구두에도 가방에도 유행이 있다. 아마도 욕이야말로 항상 새로운 유행을 만들어내는 곳이지도 모른다.
9.11이후 뉴욕 사람들도 한 마음 한뜻으로 뭉치는 것을 보았지만, 그런ㄴ데도 각각이 다 다르게 보이는 이유는 뭘까. 그것은 각자가 자기만이 세곌ㄹ 갖고 있는 때문이 아닐까.
자기만의 세계를 갖고 그 다음에는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자신을 맞출 줄을 아는 것이 아닌가 한다.
월 스트릿 근처를 가보면 정장하고 화장 잘 한 여성들이 운동화를 긴고 서류갑방을 들고 백을 메고,또 그것도 모자라서 쇼핑 백까지 겹쳐 들고 바삐 걷는 모습을 본다.
저녁 때 브로드웨이나 링컨 센터, 카네기 홀 같은 곳에서는 화려하고 우아하게 차려입은 사람들이 대붑ㄴ이다.
한국에서 느낀 것은 백화점 갈때 친구 만날때나 음악회 갈 때나 차림이 똑 같다는 것이었다.
다른 스타일의 구찌 -빽이라도 한국 사람들이 들었을 때는 구ㅜ찌라는 이름의 같은 가방으르보이는 것은 나의 지나친 신경쓰임인가.
좀 다른 이야기 같지만 월드 컵 축구로 한국이란 온 나라가 빨간 모습 빨간 마음으로 일시분란하게 움직이는 것을 보면서 어떻게 저럴 수가 있을까 하는 마음에서 더욱 이렇게 다양한 미국 사람들, 뉴욕 사람들이 다시 보이는지도 모르겠다.
조선일보: 노려의 맨해튼 저널
2002년 6월 14일
1석 5,6 조
지난 일요일 화창한 초 여름 오후, 리버사이드 교회로 한인 남성 중창단의 음악회 취재를 갔다.
좋은 전시회나 음악회를 취재갈 때 나는 1석 3조의 마음ㅇㄹ 갖고 간다. 신문을 만드니까 좋고, 동포사회에 마음의 야익을 전해줄수 있어서 좋고 또 하나는 내 자신이 예술을 즐길 수 있으니 좋은 것이다.
그러나 주로 저녁 시간에 열리는 공영이나 전시회 오프닝에 갈 때면 매번 몇 가지 일이 겹치고 이래저래 시간에 쫏기기 일쑤다.
장소에 헉헉 거리며 늦게 도착하거나 아니면 행사가 다 끝나기도 전에 나와야 하는 일도 부지기수다.
더구나 택시타기도 복잡한 맨해튼 거리를 밤 중에 뛰어 다니는 일이 더 쓰트레스를 받곤한다.
또한 연주회나 전시의 주인공들을 만나 인터뷰도 겸하기 때문에, 에술적인 분위기에 젖어 있을 수가 없다. 어떻게 정보를 잘 얻어서 좋은 기사를 쓸 수 있을까 부담을 갖기 때문이다.그런데 리버사이드 교회에서이 취재는 달랐다. 아침나절 일요일이면 의례히 치루워야 하는 온갖 일들, 교회 다녀오고 아들 축구장 데려다 주고 빨래하고, 점심 먹고 그리고 카메라챙겨들고 남편과 딸과 함께 나왔다.
리버 사이드 교회까지는 지하철로 가기도 쉽지 않고, 또 파킹이 어렵다고도 해서 오랜 만에 가족 나들일ㄹ 해보자고 제안했는데, 의외로 남편과 딸이 순수히 응해주었다.
리버사이드 교회는 작년에도 동생 네가 서울 서 왔을 때 한번 가본 적이 있었다.
교회 앞 '리 그랜트 장군 기념관'에 가서 구경도 하고 본당에 들어가 파이프 오르간 연주도 들어보고 나왔는데 갈 길이 바빠서 "으응 이런 곳이었구나."하면서 그저 한 바퀴 둘러보는 식이었다.
음악회 시간 보다 빨리 도착해 운 좋게 교회 앞에 파킹을 할수 있었고 딸아이랑 사진도 찍을 수 있었다.
음악회가 시작되기 전 예배당 안을 둘러보고 스테인드 글래스도 찬찬히 쳐다보면서 마음이 가라 앉았다.
드디어 하얀 유니폼을 입은 함성 중창단들이 등장하자 높은 천정과 예배당 귬ㅎ에 비해 그들이 참 '작다'라고 느끼며 카메라를 챙겨 사진 찍을 기회를 놓치지 말어야지 했다.
한곡 두곡 노래가 진행되면서, 가사가 마음에 전달되면서 충중들의 박수에 나도 동감되었다.
음악회 중간에 지휘자는 불치의 병에 걸린 단원 한 사람에게 음악회를 바친다고 했다.
다 끝나고 나서 리버사이드 교회의 음악 디렉터는 여직껏 이 교회에서 수 많은 음악회를 했지만 이렇게 감동스런 음악회는 없었다고 했다.
아 그랬구나. 나 혼자만 느낀 것이 아니었구나.
교회를 나서는데 한 여인이 하얀 강아지 한 마리를 데리고 교회로 들어가고 있었다. 딸아이와 나는 동시에 '어이구'했다. 우리 강아지와 같은 종류인데 우리 강아지는 털도 못 깍아줘서지저분하고 이 강아지는 깨끗하게 이발이 되어 있는 것이 달랐다.
내가 '어이구' 한 뜻은 반갑기도 해고 대접 못 받고 있는 우리 강아지가 가엾다는 뜻이기도 했다.
신문 기사도 쓰고, 우리 동포에게 감동의 스토리도 전해줄 수 있고, 음악에 빠져 진정한 감상도 했고 그리고 아프신 분 위해 진심으로 기도했고, 우리 가족도 마음을 같이 했고, 또...... 그래서 이번 치재는 1석 5,6조가 되었다. <부국장>
1석 5,6 조
지난 일요일 화창한 초 여름 오후, 리버사이드 교회로 한인 남성 중창단의 음악회 취재를 갔다.
좋은 전시회나 음악회를 취재갈 때 나는 1석 3조의 마음ㅇㄹ 갖고 간다. 신문을 만드니까 좋고, 동포사회에 마음의 야익을 전해줄수 있어서 좋고 또 하나는 내 자신이 예술을 즐길 수 있으니 좋은 것이다.
그러나 주로 저녁 시간에 열리는 공영이나 전시회 오프닝에 갈 때면 매번 몇 가지 일이 겹치고 이래저래 시간에 쫏기기 일쑤다.
장소에 헉헉 거리며 늦게 도착하거나 아니면 행사가 다 끝나기도 전에 나와야 하는 일도 부지기수다.
더구나 택시타기도 복잡한 맨해튼 거리를 밤 중에 뛰어 다니는 일이 더 쓰트레스를 받곤한다.
또한 연주회나 전시의 주인공들을 만나 인터뷰도 겸하기 때문에, 에술적인 분위기에 젖어 있을 수가 없다. 어떻게 정보를 잘 얻어서 좋은 기사를 쓸 수 있을까 부담을 갖기 때문이다.그런데 리버사이드 교회에서이 취재는 달랐다. 아침나절 일요일이면 의례히 치루워야 하는 온갖 일들, 교회 다녀오고 아들 축구장 데려다 주고 빨래하고, 점심 먹고 그리고 카메라챙겨들고 남편과 딸과 함께 나왔다.
리버 사이드 교회까지는 지하철로 가기도 쉽지 않고, 또 파킹이 어렵다고도 해서 오랜 만에 가족 나들일ㄹ 해보자고 제안했는데, 의외로 남편과 딸이 순수히 응해주었다.
리버사이드 교회는 작년에도 동생 네가 서울 서 왔을 때 한번 가본 적이 있었다.
교회 앞 '리 그랜트 장군 기념관'에 가서 구경도 하고 본당에 들어가 파이프 오르간 연주도 들어보고 나왔는데 갈 길이 바빠서 "으응 이런 곳이었구나."하면서 그저 한 바퀴 둘러보는 식이었다.
음악회 시간 보다 빨리 도착해 운 좋게 교회 앞에 파킹을 할수 있었고 딸아이랑 사진도 찍을 수 있었다.
음악회가 시작되기 전 예배당 안을 둘러보고 스테인드 글래스도 찬찬히 쳐다보면서 마음이 가라 앉았다.
드디어 하얀 유니폼을 입은 함성 중창단들이 등장하자 높은 천정과 예배당 귬ㅎ에 비해 그들이 참 '작다'라고 느끼며 카메라를 챙겨 사진 찍을 기회를 놓치지 말어야지 했다.
한곡 두곡 노래가 진행되면서, 가사가 마음에 전달되면서 충중들의 박수에 나도 동감되었다.
음악회 중간에 지휘자는 불치의 병에 걸린 단원 한 사람에게 음악회를 바친다고 했다.
다 끝나고 나서 리버사이드 교회의 음악 디렉터는 여직껏 이 교회에서 수 많은 음악회를 했지만 이렇게 감동스런 음악회는 없었다고 했다.
아 그랬구나. 나 혼자만 느낀 것이 아니었구나.
교회를 나서는데 한 여인이 하얀 강아지 한 마리를 데리고 교회로 들어가고 있었다. 딸아이와 나는 동시에 '어이구'했다. 우리 강아지와 같은 종류인데 우리 강아지는 털도 못 깍아줘서지저분하고 이 강아지는 깨끗하게 이발이 되어 있는 것이 달랐다.
내가 '어이구' 한 뜻은 반갑기도 해고 대접 못 받고 있는 우리 강아지가 가엾다는 뜻이기도 했다.
신문 기사도 쓰고, 우리 동포에게 감동의 스토리도 전해줄 수 있고, 음악에 빠져 진정한 감상도 했고 그리고 아프신 분 위해 진심으로 기도했고, 우리 가족도 마음을 같이 했고, 또...... 그래서 이번 치재는 1석 5,6조가 되었다. <부국장>
조선일보: 노려의 맨하탄 저녈/ 베이지 색 커피의 쓴 맛
2002년 5월 9일(목요일)
베이지 색 커피의 쓴 맛
커피 중독도 다른 중독 못지 않게 평온한 삶을 방해하는 존재다. 그 옛날 한국에서 매일 마시던 커피는 진하게 쓰고 진하게 단 맛이엇다.
그래도 좋은 기억으로 남는 것은 커피 맛보다는 젊음이라는 분위기였던 것 같다. 미국 와서 마신 첫 커피는 항아리만한 잔에 철철 넘치게 따라서 우유만 푹 넣어준 싱거운 커피였다. 얼마 후에 한국엘 가서 찐하게 쓰고 단 커피를 다시 마시니 입맛에 맞질 않았다. 그 후 가지가지 이름도 이상한 커피를 맛 보는 재미가 붙었고, '커피야 쓴 맛에 마시지' '단 맛에 커피 마신다.'라는 것은 문화인이 못 되는 듯이 커피 전문점 찾아다니며 여러 종류의 원두커피를 사다가는 시간과 공을 들여가며 커피 맛을 즐기기도 했었다.
그러다 곧, 백투 베이직스(Back to Basics)! 가장 평범한 페귤ㄹ 아메리칸 커피가 내 입맛에 제일 잘 맞았다. 그런데 요즘 세상에 그저 커피한잔 한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막바로 "커피 한잔(One Coffee)하고 주문할수가 없다. 그렇게 말하면 점원이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본다.
어딜 가나 커피 메뉴가 너무 길어서 그 중에서 낵 좋아하는 커피를 여기서는 뭐라고 불러야 하나를 알아야하고, 커피의 양도 스몰, 미디움, 라지, 엑스트라 라지, 그것도 어떤 카페에서는 콜, 그란데...뭐 이런 이름으로 되어잇어서 복잡하기만 하다.
카페인 없고 있고도 밀리 말해줘야 하며, 커핑에 우유를 넣는지 크림을 넣는지? 설탕ㅇ 또는 스윗엔 로우? 설탕이라면 몇 스푼? 까지 말해주어야만 겨우 커피 한잔 얻어 마신다.
나는 커페이 크림을 탄 석을 좋아한다. 크림을 너무 조금 넣으면 부드러운 맛이 안 나고 너무 많이 넣으면 커피의 맛이 죽고 하니까 그야말로 커피색이 옅은 밤색이 되오록 적당히 넣어야하는데, 사무실에서 마실 이 '적당한' 커피 한잔을 출근 길에 사는 일이 고통이다.
던킨 도너츠이 커피 맛이 좋아서 일부러 좀 멀리 있는 더킨 도너츠에 가곤했는데, 최근 며칠을 연거퍼 크림이라고 주문해도 마셔보면 유유가 들어있길레, 아마 전달이 안돼었나 싶어 다음날엔 크림을 넣을 때 그것이 확실히 크림이야고까지 물어봤는데, 인도인 두명이 동시에 "예스예스, 크림크림" 했다. 그러나 역시 그날도 우유가 들어 있었다. 그 다음날은 늘지나다기기만 했던 한국 델리에 들여 "커피 한잔 주세요. 크림만 넣어 주세요."했는데 한국 아저씨 "설탕은요' 하고 물어봐서 "아니요." 했다. 그런데 커피 잔에 크림을 하도 살짝 부어 넣길래, "크림을 좀 더 넣어주세요." 하니까 그 아저씨는 말없이 컵의 커피를 확 딸아 버리고 거기에 크림을 확 부어 넣으면서, "처음에 그렇게 말 하세요." 한다. 야단을 맞은 거다. 중요한 공중도덕을 어긴 사람처럼.
크림 값이 비싸서 그런가? 아침에 재수 없게 왠 여자가 말이 많아서였나? 그 아저씨 고달픈 인생이 이해는 가지만.....그날의 그 거의 흰색을 뛴 베이지 색 커피! 그 커피 맛은 쓴 맛이었다.
베이지 색 커피의 쓴 맛
커피 중독도 다른 중독 못지 않게 평온한 삶을 방해하는 존재다. 그 옛날 한국에서 매일 마시던 커피는 진하게 쓰고 진하게 단 맛이엇다.
그래도 좋은 기억으로 남는 것은 커피 맛보다는 젊음이라는 분위기였던 것 같다. 미국 와서 마신 첫 커피는 항아리만한 잔에 철철 넘치게 따라서 우유만 푹 넣어준 싱거운 커피였다. 얼마 후에 한국엘 가서 찐하게 쓰고 단 커피를 다시 마시니 입맛에 맞질 않았다. 그 후 가지가지 이름도 이상한 커피를 맛 보는 재미가 붙었고, '커피야 쓴 맛에 마시지' '단 맛에 커피 마신다.'라는 것은 문화인이 못 되는 듯이 커피 전문점 찾아다니며 여러 종류의 원두커피를 사다가는 시간과 공을 들여가며 커피 맛을 즐기기도 했었다.
그러다 곧, 백투 베이직스(Back to Basics)! 가장 평범한 페귤ㄹ 아메리칸 커피가 내 입맛에 제일 잘 맞았다. 그런데 요즘 세상에 그저 커피한잔 한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막바로 "커피 한잔(One Coffee)하고 주문할수가 없다. 그렇게 말하면 점원이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본다.
어딜 가나 커피 메뉴가 너무 길어서 그 중에서 낵 좋아하는 커피를 여기서는 뭐라고 불러야 하나를 알아야하고, 커피의 양도 스몰, 미디움, 라지, 엑스트라 라지, 그것도 어떤 카페에서는 콜, 그란데...뭐 이런 이름으로 되어잇어서 복잡하기만 하다.
카페인 없고 있고도 밀리 말해줘야 하며, 커핑에 우유를 넣는지 크림을 넣는지? 설탕ㅇ 또는 스윗엔 로우? 설탕이라면 몇 스푼? 까지 말해주어야만 겨우 커피 한잔 얻어 마신다.
나는 커페이 크림을 탄 석을 좋아한다. 크림을 너무 조금 넣으면 부드러운 맛이 안 나고 너무 많이 넣으면 커피의 맛이 죽고 하니까 그야말로 커피색이 옅은 밤색이 되오록 적당히 넣어야하는데, 사무실에서 마실 이 '적당한' 커피 한잔을 출근 길에 사는 일이 고통이다.
던킨 도너츠이 커피 맛이 좋아서 일부러 좀 멀리 있는 더킨 도너츠에 가곤했는데, 최근 며칠을 연거퍼 크림이라고 주문해도 마셔보면 유유가 들어있길레, 아마 전달이 안돼었나 싶어 다음날엔 크림을 넣을 때 그것이 확실히 크림이야고까지 물어봤는데, 인도인 두명이 동시에 "예스예스, 크림크림" 했다. 그러나 역시 그날도 우유가 들어 있었다. 그 다음날은 늘지나다기기만 했던 한국 델리에 들여 "커피 한잔 주세요. 크림만 넣어 주세요."했는데 한국 아저씨 "설탕은요' 하고 물어봐서 "아니요." 했다. 그런데 커피 잔에 크림을 하도 살짝 부어 넣길래, "크림을 좀 더 넣어주세요." 하니까 그 아저씨는 말없이 컵의 커피를 확 딸아 버리고 거기에 크림을 확 부어 넣으면서, "처음에 그렇게 말 하세요." 한다. 야단을 맞은 거다. 중요한 공중도덕을 어긴 사람처럼.
크림 값이 비싸서 그런가? 아침에 재수 없게 왠 여자가 말이 많아서였나? 그 아저씨 고달픈 인생이 이해는 가지만.....그날의 그 거의 흰색을 뛴 베이지 색 커피! 그 커피 맛은 쓴 맛이었다.
Wednesday, August 7, 2019
조선일보 : 노려의 맨해튼 저널/ 신문 쓰레기
2002년 5월 2일
신문 쓰레기
오늘도 7시 16분 기차를 놓치지는 않았다. 1분이라도 일찍 나오면 이렇게 뛰지 않아도 되는데... 기차 문이 열릴 자리를 겨냥하고 뛰엄뛰엄 한 무더기 씩 몰려서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커피 샾으로 먼저 뛰어간다.
언제나첯럼 문으 들어서기가 뭡게 아가씨는 내 커피를 카운테에 놓는다. 한국 사람들만 잽싼줄 알았더니 1분 안에 전쟁을 치루느 ㄴ기차역에서 이 정도의 써비스는 기본이리라.
나도 집에서부터 주머니에 넣어 온 1불짜리를 카운터에 놓고 플랫 폼으로 뛴다. 커피를 든 손을 치켜들고 우루루 몰려가는사람들 위에 서서 차속으로 들어서면 자리를 찾아 앉는 일서부터 하루 전쟁이 시작된다.
그 때부터 그랜드 센츄럴 역까지의 30분은 누구도 뺏을 수 없는 나만의 시간이다. 느긋이 ㅓ피를 마시면서 차내를 둘어본다. 꽉 찬 기차 속, 천태만상의 삶이 시작되는 순간, 각자 나름대로의 하루를 살아나갈 준비를 하는 모습도 천태만상이다. 모르른 잠을 자는 사람, 화장을 하는 사람, 아침을 먹는 ㅏ람, 그런 중에도 공통점이 있다면 거의 모두가 신물을 보고 있는 것이다.
기차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서서 신문을 읽는 사람도 있지만, 집 앞에 배달된 신문을 비니루 봉지에 들어있는 체로 들고 와서는 기차속에서 풀어 본다. 어떤 사람은 처음부터 샅샅이 읽는가하면 어떤이는 두꺼운 신문더미속에서 다른 것은 다 제쳐 놓고 필요한 것만 딱 꺼내 ㅗ느 ㄴ사람도 있느가 하면 또 어떤 사람은 여기저기 훑어보다가 흥미가는 것을 찾아 천천히 읽기도 한다.
신문을 반듯반듯 접어서 읽는 사람, 두서없이 여기저기 보느라 무릎위에 산더미를 만들어 놓고 헤메는 사람도 있다. 아마 어느 회사 사앙님쯤 되시는가 나이가 지긋한 아저씨는 아예 아침부터 낱말 퀴즈를 하고 있기도 하다. 나도 나나름 대로 수첩으 뒤적이면 오늘 하루 살아나갈 준비를 한다.
기차가 역에 들어서면 지워진 립 스틱을 고쳐 바르고 빈컵을 들고 꾸역꾸역 사람들 위를 쫗아 나온다. 개찰구 안에 놓여진 튼튼한 철제로 만들어진 신문 수거용 거대한 쓰레기 통은 사람 키만큼이나 높다. 몇 ㅁ년 전 이 쓰레기통이 보통 쓰레기통만할 시절에는 쓰레기 통속에서 숩게 신물을 집어 들기도 했었다. 챙피한 일은 아니다. 남들도 다 그러니까. 어쨋든 지금은 감옥소의 철망 보다도 촘촘한 철망으로 만들어진 쓰레기 통 속에 들어있는 신문을 꺼내낼수가 없다. 7시 16ㅂㄴ 기차를 놓쳤을 때 보니 신문들이 미쳐 다 이 속에 들어가질 못하=ㅐ 밖으로 넘펴나고 있었다. 저런 저 신문 한장 아니 그 한 페이지 속 하나의 기사가 나오기까지 얼마나 난리를 치는데, 짧은 기사 하나를 만드느라 며칠 씩 소비하기도 한다. 그런데 더러는 읽히고 더러는 읽히지도 못한채, 하루 24시간이란 수명도 다 채우지를 못하고 쓰레기 통으로 사라져가는 모습을 봄면서 신문을 만들러 나가는 나로서는 착잡한 김정이다. 그러나, 그러기에 낵 ㅏ있구나 생각해보기도 한다. 저 신문이 없어지지 ㅇ낳고 있다면 다음 날 또 그 다음 날 무더기로 쏟아져 나오는 신문더미는 그야말로 'ㅅ=쓰레기'더미가 됤 밖에 없으리라.
하루 이틀만 지나도 선더미 만큼 싸이는 신문 땜에 스트레스가 쌓여요. 라는 소리를 자주 듣곤한다. 그러기에 쓰레기 통에 버려지기 짖전까지 한줄이라도 더 일겨진ㄴ 기사를 써야한다.
빈 컵은 Trash라고 써 붙인 다른 쓰레기 통에 던져 놓고, 오늘도 한 바탕 난릴ㄹ 칠 우리 신문사로 향하느 내 발걸음이 더욱 힘차다. -부국장-
신문 쓰레기
오늘도 7시 16분 기차를 놓치지는 않았다. 1분이라도 일찍 나오면 이렇게 뛰지 않아도 되는데... 기차 문이 열릴 자리를 겨냥하고 뛰엄뛰엄 한 무더기 씩 몰려서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커피 샾으로 먼저 뛰어간다.
언제나첯럼 문으 들어서기가 뭡게 아가씨는 내 커피를 카운테에 놓는다. 한국 사람들만 잽싼줄 알았더니 1분 안에 전쟁을 치루느 ㄴ기차역에서 이 정도의 써비스는 기본이리라.
나도 집에서부터 주머니에 넣어 온 1불짜리를 카운터에 놓고 플랫 폼으로 뛴다. 커피를 든 손을 치켜들고 우루루 몰려가는사람들 위에 서서 차속으로 들어서면 자리를 찾아 앉는 일서부터 하루 전쟁이 시작된다.
그 때부터 그랜드 센츄럴 역까지의 30분은 누구도 뺏을 수 없는 나만의 시간이다. 느긋이 ㅓ피를 마시면서 차내를 둘어본다. 꽉 찬 기차 속, 천태만상의 삶이 시작되는 순간, 각자 나름대로의 하루를 살아나갈 준비를 하는 모습도 천태만상이다. 모르른 잠을 자는 사람, 화장을 하는 사람, 아침을 먹는 ㅏ람, 그런 중에도 공통점이 있다면 거의 모두가 신물을 보고 있는 것이다.
기차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서서 신문을 읽는 사람도 있지만, 집 앞에 배달된 신문을 비니루 봉지에 들어있는 체로 들고 와서는 기차속에서 풀어 본다. 어떤 사람은 처음부터 샅샅이 읽는가하면 어떤이는 두꺼운 신문더미속에서 다른 것은 다 제쳐 놓고 필요한 것만 딱 꺼내 ㅗ느 ㄴ사람도 있느가 하면 또 어떤 사람은 여기저기 훑어보다가 흥미가는 것을 찾아 천천히 읽기도 한다.
신문을 반듯반듯 접어서 읽는 사람, 두서없이 여기저기 보느라 무릎위에 산더미를 만들어 놓고 헤메는 사람도 있다. 아마 어느 회사 사앙님쯤 되시는가 나이가 지긋한 아저씨는 아예 아침부터 낱말 퀴즈를 하고 있기도 하다. 나도 나나름 대로 수첩으 뒤적이면 오늘 하루 살아나갈 준비를 한다.
기차가 역에 들어서면 지워진 립 스틱을 고쳐 바르고 빈컵을 들고 꾸역꾸역 사람들 위를 쫗아 나온다. 개찰구 안에 놓여진 튼튼한 철제로 만들어진 신문 수거용 거대한 쓰레기 통은 사람 키만큼이나 높다. 몇 ㅁ년 전 이 쓰레기통이 보통 쓰레기통만할 시절에는 쓰레기 통속에서 숩게 신물을 집어 들기도 했었다. 챙피한 일은 아니다. 남들도 다 그러니까. 어쨋든 지금은 감옥소의 철망 보다도 촘촘한 철망으로 만들어진 쓰레기 통 속에 들어있는 신문을 꺼내낼수가 없다. 7시 16ㅂㄴ 기차를 놓쳤을 때 보니 신문들이 미쳐 다 이 속에 들어가질 못하=ㅐ 밖으로 넘펴나고 있었다. 저런 저 신문 한장 아니 그 한 페이지 속 하나의 기사가 나오기까지 얼마나 난리를 치는데, 짧은 기사 하나를 만드느라 며칠 씩 소비하기도 한다. 그런데 더러는 읽히고 더러는 읽히지도 못한채, 하루 24시간이란 수명도 다 채우지를 못하고 쓰레기 통으로 사라져가는 모습을 봄면서 신문을 만들러 나가는 나로서는 착잡한 김정이다. 그러나, 그러기에 낵 ㅏ있구나 생각해보기도 한다. 저 신문이 없어지지 ㅇ낳고 있다면 다음 날 또 그 다음 날 무더기로 쏟아져 나오는 신문더미는 그야말로 'ㅅ=쓰레기'더미가 됤 밖에 없으리라.
하루 이틀만 지나도 선더미 만큼 싸이는 신문 땜에 스트레스가 쌓여요. 라는 소리를 자주 듣곤한다. 그러기에 쓰레기 통에 버려지기 짖전까지 한줄이라도 더 일겨진ㄴ 기사를 써야한다.
빈 컵은 Trash라고 써 붙인 다른 쓰레기 통에 던져 놓고, 오늘도 한 바탕 난릴ㄹ 칠 우리 신문사로 향하느 내 발걸음이 더욱 힘차다. -부국장-
한인 YWCA / 나, 가정, 천국
1995년 5월
나, 가정, 천국
화창한 날씨를 예상하면서 맞이한 5월은 첫날부터 바람이 부는 쌀쌀한 날/시에 마음도 으시시 춥기만 했습니다. 그 전날 일요일은 교회 어린이 생일 파티에 쓸 컵 케이크를 가져가느라 아침 일찍부터 서둘렀고, 예배 후에는 부서별로 회의가 있었는데 그날 따라 오후에 큰 ㅇ이의 무용바표회를 위한 리허설과 작은 아이의 동네 대항 축구시합이 있어서 오후 내내 허둥지둥 했었습니다.
남편은 교회 탁구대회에 출전하느라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저녁에 조차 구역례배에대가 옛 친구들의 친목 모임이 겨볏 충실치 못하게 양쪽으로 얼굴을 내미느라 또 허둥지둥했습니다. 밤이 늦ㅇ서야 집에 왔고, 그 다음날인 5월 1일 아침엔 나부터 일어나기가 힘들면서도 할수 없이 일어나서는 못 일어나는 이이들 깨우랴, 아침식사 준비에 도시락 싸랴, 학교 준비물 챙겨보내랴, 정신이 없었고 그리고나니 내 팡에 태산처럼 ㅇ리려있는 일더미에 짜증스럽기부터 했습니다. 결국 그날은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에게 화를 내고 저녁엔 별것 아닌일로 남편과 말다툼을 하면서 하루의 막을 내리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가정의 달'이라는 5월 첫날 저희 집이 상황이었습니다. 아니 거의 매일이 이렇습니다.
가정의 달이라...... 나에게 있어서 가정이란 어떤 의미가 있는 곳인가? 가정이란 말에서 느껴지는 평온함, 따스함, 부드러움 ㄱ리고 얼마든지 어리광을 부릴 수 있는 곳, 아낌없는 사랑...... 과연 나에게 있어서 가정은 그런 곳인가?
아마도 이것은 어린시절 잠간 누렸었던 ㅈ자정의 환상인가 봅니다. 지금은 "가정'의 주체인 내가 이 "가정'이란 틀에 얽매여서 살고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보다 세련된 여성으로서 살아보고자 노력을 합니다만 참 별수가 없는 내 모습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일과 해야할 일의 주화를 위해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햐야할 일을 못한 것에서 오는 부담감과 하고 싶은 일을 못한 것에서 오는 안타까움으로 법벅이 되어있는 내 모습을 봅니다. 무엇인가 잘 못된것 같습니다.
가정이란 천국의 그림자라는 말도 들었습니다. 천국은 하나니므이 나라이고 하나님은 사랑이시니 천국은 사랑의 나라일 것입니다. ㄱ렇다면 내 가정이 사랑의 나라일것입니다,. 그렇다면 내 가정이 사랑의 나라의 촉소판이 되어야 겠는데, 하루하루 바쁘게 살다보면 ㄱ 사랑은 어디에 ㅅㅁ어있는지 보이질 않습니다. 열심ㅎ 가족들에게 해 먹이고 입히고 집안을 치우고 하지만 사랑이 주는 기쁨을 느끼기 보다는 '아이참 해도해도 끝이 없구나'하는 ㅍ념이 더 많습니다. 암만 10년 넘게 해온 일이지만 내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무엇이 부조가지를 알ㅇ내고 지금이라도 빨리 고쳐야 겠단ㄴ 생각이 절실합니다.
방법ㅇㄴ 진정한 의미의 사랑을 공부하는 길이 아닌가 ㅏㅂ니다. 그런데 이 사랑이 가정 내에서는 저절로 된다고 행각해온 것이 문제였던것 같습니다. 가족이 아닌 남을 사랑하는 것으느 어려워도, 내 가족에게야 뭐 특벼히 '사랑해야지!'하ㅗ 결심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온 것입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자아의 범위를 넓혀나가는 일이라 했습니다. 먼저 "여기까지가 나다.'라고 그어 놓은 경계선을 허물어야만 더 넓은 영역으로 펼쳐가기 마련인데, 처음 그 '나'란 경계선 허무는 일에 실패를 합니다. 그래서 가정 속에서도 '내가 할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나를 내세우며 나를 구분 짓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춥지 않았던 지난 겨울을 보상하듯 봄이 늦ㄴ ㄴ올해 비록 쌀쌀하게 시작한 가정의 달을 '사랑 실천의 달'로 잡고, 우리 가정을 연습장으로 삼아 작은 천국이란 정답을 향해 열심히 공부해야 겠습닏.
나, 가정, 천국
화창한 날씨를 예상하면서 맞이한 5월은 첫날부터 바람이 부는 쌀쌀한 날/시에 마음도 으시시 춥기만 했습니다. 그 전날 일요일은 교회 어린이 생일 파티에 쓸 컵 케이크를 가져가느라 아침 일찍부터 서둘렀고, 예배 후에는 부서별로 회의가 있었는데 그날 따라 오후에 큰 ㅇ이의 무용바표회를 위한 리허설과 작은 아이의 동네 대항 축구시합이 있어서 오후 내내 허둥지둥 했었습니다.
남편은 교회 탁구대회에 출전하느라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저녁에 조차 구역례배에대가 옛 친구들의 친목 모임이 겨볏 충실치 못하게 양쪽으로 얼굴을 내미느라 또 허둥지둥했습니다. 밤이 늦ㅇ서야 집에 왔고, 그 다음날인 5월 1일 아침엔 나부터 일어나기가 힘들면서도 할수 없이 일어나서는 못 일어나는 이이들 깨우랴, 아침식사 준비에 도시락 싸랴, 학교 준비물 챙겨보내랴, 정신이 없었고 그리고나니 내 팡에 태산처럼 ㅇ리려있는 일더미에 짜증스럽기부터 했습니다. 결국 그날은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에게 화를 내고 저녁엔 별것 아닌일로 남편과 말다툼을 하면서 하루의 막을 내리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가정의 달'이라는 5월 첫날 저희 집이 상황이었습니다. 아니 거의 매일이 이렇습니다.
가정의 달이라...... 나에게 있어서 가정이란 어떤 의미가 있는 곳인가? 가정이란 말에서 느껴지는 평온함, 따스함, 부드러움 ㄱ리고 얼마든지 어리광을 부릴 수 있는 곳, 아낌없는 사랑...... 과연 나에게 있어서 가정은 그런 곳인가?
아마도 이것은 어린시절 잠간 누렸었던 ㅈ자정의 환상인가 봅니다. 지금은 "가정'의 주체인 내가 이 "가정'이란 틀에 얽매여서 살고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보다 세련된 여성으로서 살아보고자 노력을 합니다만 참 별수가 없는 내 모습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일과 해야할 일의 주화를 위해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햐야할 일을 못한 것에서 오는 부담감과 하고 싶은 일을 못한 것에서 오는 안타까움으로 법벅이 되어있는 내 모습을 봅니다. 무엇인가 잘 못된것 같습니다.
가정이란 천국의 그림자라는 말도 들었습니다. 천국은 하나니므이 나라이고 하나님은 사랑이시니 천국은 사랑의 나라일 것입니다. ㄱ렇다면 내 가정이 사랑의 나라일것입니다,. 그렇다면 내 가정이 사랑의 나라의 촉소판이 되어야 겠는데, 하루하루 바쁘게 살다보면 ㄱ 사랑은 어디에 ㅅㅁ어있는지 보이질 않습니다. 열심ㅎ 가족들에게 해 먹이고 입히고 집안을 치우고 하지만 사랑이 주는 기쁨을 느끼기 보다는 '아이참 해도해도 끝이 없구나'하는 ㅍ념이 더 많습니다. 암만 10년 넘게 해온 일이지만 내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무엇이 부조가지를 알ㅇ내고 지금이라도 빨리 고쳐야 겠단ㄴ 생각이 절실합니다.
방법ㅇㄴ 진정한 의미의 사랑을 공부하는 길이 아닌가 ㅏㅂ니다. 그런데 이 사랑이 가정 내에서는 저절로 된다고 행각해온 것이 문제였던것 같습니다. 가족이 아닌 남을 사랑하는 것으느 어려워도, 내 가족에게야 뭐 특벼히 '사랑해야지!'하ㅗ 결심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온 것입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자아의 범위를 넓혀나가는 일이라 했습니다. 먼저 "여기까지가 나다.'라고 그어 놓은 경계선을 허물어야만 더 넓은 영역으로 펼쳐가기 마련인데, 처음 그 '나'란 경계선 허무는 일에 실패를 합니다. 그래서 가정 속에서도 '내가 할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나를 내세우며 나를 구분 짓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춥지 않았던 지난 겨울을 보상하듯 봄이 늦ㄴ ㄴ올해 비록 쌀쌀하게 시작한 가정의 달을 '사랑 실천의 달'로 잡고, 우리 가정을 연습장으로 삼아 작은 천국이란 정답을 향해 열심히 공부해야 겠습닏.
Tuesday, August 6, 2019
27 스트리트/ 아이의 축구와 아빠
1993년 10월 21일
아이의 축구와 아빠
아무래도 추울것 같아 아이에게 긴 소매 셔츠와 긴 바지를 입혔는데, 남편은 뛰면 땀 난다고 다 벗기고 9번이라는 넘버가 붙은 짧은 셔츠와 반바지를 입히낟. 워낙 잘 안 먹는 아이에게 그렇지 않으면 너 또 넘어진다면서 씨리얼을 더 쏟아준다.
이번 학기부터 작은 아이는 토요일마다 한글학교를 그만두고 축구게임을 간다.
운동은 좋아하지 않을 정도가 아니라 중계방송을 보는 거 조차 ㅇㅇ싫어하는 나는 암만 우리애가 처음으로 하는 축구라고 해도 큰 흥미가 없었다.
그래도 남자는 운동을 좀 해야 할 것 같고 또 이만 때면 다른 애들 다하니까 시키는격이었다.
동네 공원엘 가니 졸망졸망 어린애들이 엄마 아빠랑 모여들어 게임 전 연습들을 한다. 키만 컸지 말른 우리 아이에게는 그저 운동삼아 공차며 1시간 뒤는 것 만도 다행이라고 생각하는데, 남편은 안 그렇다. 쭈빗쮸빗 거리는 아이에게 공을 찰 때는 이렇게 저렇게 하라는 등 뭔가를 계속 가르쳐주고있다.
한 꺼번에 너무 많은 말을 해주면 어린애가 더 혼동할 것 같아서 말려도, 우선 멀리 차고 나서 쫓아가라는 등 저쪽 팀은 보니까 별 볼일이 없을 것 같다는 등 남편은 열심이다.
게일이 시작하자 나는 언덕 위에 엉거주춤 앉아서 구경하다가 점점 일어나 언덕 아래로 내려 와서는 무조건 "인준아 차라 차.'하고 소리를 질른다.
그런데 남편은 아이에게 손으로 무슨 표시를 하기도하고 심각하게 혼자말로 중얼거리기도 한다.
아이가 이리저리 애들이랑 엉겨 뛰어 다니다가 공을 서너번 차고 줄 밖으로 나아 손으로 던지는 것도 몇 버나고 한번 넘어지고 하는 것 눈으로 따라다니며 보다보니, 게임이 끝났다. 뭐 사줄까 멕도날? 버커킹? 하며땀에 적은 아이에게 너 참 잘하드라고 건성으로 말해준다.
저쪽 팀의 등치 ㅋㄴ 아이가 힘있게 공을 멀리 차던 것 아슬아슬하게 보던 생각 밖에 없는 데, 남편은 제임 ㄲㅌ나고 오는 차에서부터 그 다음날 까지도 '그 때 8번이 공을 노머 오래 갖고 있었잖아? 그땨는.." 하며 어수선하게 뒤어다니다 끝난 게임이 장면 장면을 기억해 ㅇ이게게 설명을 해주고 코치해준다.
요즈음은 토요일 골프도 끊고 시간만 나면 잊 방페서 아이랑 공 차고 놀면서 남편 ㅏㄹ로는 무슨 '묘기'인가를 가츠렸다고 한다.
아마도 아이 키우는 재미라는게 이런건가 보다.
아이의 축구와 아빠
아무래도 추울것 같아 아이에게 긴 소매 셔츠와 긴 바지를 입혔는데, 남편은 뛰면 땀 난다고 다 벗기고 9번이라는 넘버가 붙은 짧은 셔츠와 반바지를 입히낟. 워낙 잘 안 먹는 아이에게 그렇지 않으면 너 또 넘어진다면서 씨리얼을 더 쏟아준다.
이번 학기부터 작은 아이는 토요일마다 한글학교를 그만두고 축구게임을 간다.
운동은 좋아하지 않을 정도가 아니라 중계방송을 보는 거 조차 ㅇㅇ싫어하는 나는 암만 우리애가 처음으로 하는 축구라고 해도 큰 흥미가 없었다.
그래도 남자는 운동을 좀 해야 할 것 같고 또 이만 때면 다른 애들 다하니까 시키는격이었다.
동네 공원엘 가니 졸망졸망 어린애들이 엄마 아빠랑 모여들어 게임 전 연습들을 한다. 키만 컸지 말른 우리 아이에게는 그저 운동삼아 공차며 1시간 뒤는 것 만도 다행이라고 생각하는데, 남편은 안 그렇다. 쭈빗쮸빗 거리는 아이에게 공을 찰 때는 이렇게 저렇게 하라는 등 뭔가를 계속 가르쳐주고있다.
한 꺼번에 너무 많은 말을 해주면 어린애가 더 혼동할 것 같아서 말려도, 우선 멀리 차고 나서 쫓아가라는 등 저쪽 팀은 보니까 별 볼일이 없을 것 같다는 등 남편은 열심이다.
게일이 시작하자 나는 언덕 위에 엉거주춤 앉아서 구경하다가 점점 일어나 언덕 아래로 내려 와서는 무조건 "인준아 차라 차.'하고 소리를 질른다.
그런데 남편은 아이에게 손으로 무슨 표시를 하기도하고 심각하게 혼자말로 중얼거리기도 한다.
아이가 이리저리 애들이랑 엉겨 뛰어 다니다가 공을 서너번 차고 줄 밖으로 나아 손으로 던지는 것도 몇 버나고 한번 넘어지고 하는 것 눈으로 따라다니며 보다보니, 게임이 끝났다. 뭐 사줄까 멕도날? 버커킹? 하며땀에 적은 아이에게 너 참 잘하드라고 건성으로 말해준다.
저쪽 팀의 등치 ㅋㄴ 아이가 힘있게 공을 멀리 차던 것 아슬아슬하게 보던 생각 밖에 없는 데, 남편은 제임 ㄲㅌ나고 오는 차에서부터 그 다음날 까지도 '그 때 8번이 공을 노머 오래 갖고 있었잖아? 그땨는.." 하며 어수선하게 뒤어다니다 끝난 게임이 장면 장면을 기억해 ㅇ이게게 설명을 해주고 코치해준다.
요즈음은 토요일 골프도 끊고 시간만 나면 잊 방페서 아이랑 공 차고 놀면서 남편 ㅏㄹ로는 무슨 '묘기'인가를 가츠렸다고 한다.
아마도 아이 키우는 재미라는게 이런건가 보다.
女記者 벤치 / 말
199* ?
말
언젠가 아나운서들이 '말죽거리에 말을 사러 갔더니 말이 많아서...'하면서 '말'과 '마알'을 구별해 가며 말하기 연습을 하는 것을 보았다.
그걸 보면서 누가 뭐 그런 것까지 신경 쓰면 들을까 생각했다. 밤, 차, 배 처럼 같은 소리지만 뜻이 다른 말이 많은데," 밤을 먹었다." "어제 밤에는.." '배를 저어라' '신고 배가 달다.' 등 굳이 밤이나 바암이나 하지 않아도 그 뜻을 다 통하지 않는가.
이렇게 쉽게 생각해 버리 수 없는 다른 이유가 있어서, 말하는 연습들을 하겠지 사면서 좀 다른 생각을 해 보았다.
즉, 똑 같은 말이라도 말하는 사람의 의도와 표정과 분위기에 따라 다르게 연출되어 지는 말에 대해서이다.
"그러니?" 하고 되 묻는 말 하나에도 열멸와 호감이 나타나기도 하고, 무관심 또느 ㄴ멸시까지도 표현 될 수가 있다. 어떤 세련된 사람들은 호감을 보이는 척하면서 듣는 사람의 자존심을 슬쩍 상하게 하는 말을 할줄 안다.
어느 사회, 어느 집단, 어느 사이에서건 말이 많으니 누가 그 말을 했느니 하면서 흔히 그 말들이 문제가 되어 말이 많다.
새삼 내 자신을 샆펴보니 단순한 단어들의 나열인 말에도 '의사전달'이 외의 온갖 것을 기대하며 말을 하고 살아온 것을 깨닫는다.
돈 안들이고 스트레스를 해소하며, 더우기 천냥 빚까지도 갚으려 하고, 다 너 좋으라고 하는 말이다 하는 말 뒤에서는 결국 내 이익을 따지고, 욕심을 채우려 한다.
그리고는 자랑이다. 자기를 자랑하기 위해서 남의 흉을 보고, 남이 잘 못을 걱정스럽게 말하는 속에서 내 자랑을 하고 있다.
아침부터 아이들에게 소리소리 지르며 이거 먹어라, 빨이 입어라, 그거 하지 말아라 하는 것과, 저것좀 해 달라고 절실하게 하는 말들을 빼고는....글 쎄 열을 올려 떠들어 댄 많은 말의 거의 다 그런 식이다.
더 나쁜 건, 그런 점에서는 남도 나아ㅗ 비슥한 터인데, 남이 하는 그런 말들을 못 참아하는 점이다.
그저 웃으면서 들어 주면 될 것을 '누가 물어봤어?'라고 코미디의 유행어를 장난인척 농담인척 하면서 마랗던 사람에게 무안을 주기도 했다.
사실 유행어치고는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말이긴 하다.
남이 물어 본 말에 옳바른 대답하기도 어려운데, 물어보지도 ㅇ낳은 말을 하기는 얼마나 더 어려운 일인가?
그러니, 단순한 말에도 두세가지 숨은 목적을 두지 말고, 말 자체의 순수함을 살려서 "말하기 연습'을 나도 해야 할 것 같다.
배냐, 배에냐, 말이냐 마알이냐 하는 것 부터.
말
언젠가 아나운서들이 '말죽거리에 말을 사러 갔더니 말이 많아서...'하면서 '말'과 '마알'을 구별해 가며 말하기 연습을 하는 것을 보았다.
그걸 보면서 누가 뭐 그런 것까지 신경 쓰면 들을까 생각했다. 밤, 차, 배 처럼 같은 소리지만 뜻이 다른 말이 많은데," 밤을 먹었다." "어제 밤에는.." '배를 저어라' '신고 배가 달다.' 등 굳이 밤이나 바암이나 하지 않아도 그 뜻을 다 통하지 않는가.
이렇게 쉽게 생각해 버리 수 없는 다른 이유가 있어서, 말하는 연습들을 하겠지 사면서 좀 다른 생각을 해 보았다.
즉, 똑 같은 말이라도 말하는 사람의 의도와 표정과 분위기에 따라 다르게 연출되어 지는 말에 대해서이다.
"그러니?" 하고 되 묻는 말 하나에도 열멸와 호감이 나타나기도 하고, 무관심 또느 ㄴ멸시까지도 표현 될 수가 있다. 어떤 세련된 사람들은 호감을 보이는 척하면서 듣는 사람의 자존심을 슬쩍 상하게 하는 말을 할줄 안다.
어느 사회, 어느 집단, 어느 사이에서건 말이 많으니 누가 그 말을 했느니 하면서 흔히 그 말들이 문제가 되어 말이 많다.
새삼 내 자신을 샆펴보니 단순한 단어들의 나열인 말에도 '의사전달'이 외의 온갖 것을 기대하며 말을 하고 살아온 것을 깨닫는다.
돈 안들이고 스트레스를 해소하며, 더우기 천냥 빚까지도 갚으려 하고, 다 너 좋으라고 하는 말이다 하는 말 뒤에서는 결국 내 이익을 따지고, 욕심을 채우려 한다.
그리고는 자랑이다. 자기를 자랑하기 위해서 남의 흉을 보고, 남이 잘 못을 걱정스럽게 말하는 속에서 내 자랑을 하고 있다.
아침부터 아이들에게 소리소리 지르며 이거 먹어라, 빨이 입어라, 그거 하지 말아라 하는 것과, 저것좀 해 달라고 절실하게 하는 말들을 빼고는....글 쎄 열을 올려 떠들어 댄 많은 말의 거의 다 그런 식이다.
더 나쁜 건, 그런 점에서는 남도 나아ㅗ 비슥한 터인데, 남이 하는 그런 말들을 못 참아하는 점이다.
그저 웃으면서 들어 주면 될 것을 '누가 물어봤어?'라고 코미디의 유행어를 장난인척 농담인척 하면서 마랗던 사람에게 무안을 주기도 했다.
사실 유행어치고는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말이긴 하다.
남이 물어 본 말에 옳바른 대답하기도 어려운데, 물어보지도 ㅇ낳은 말을 하기는 얼마나 더 어려운 일인가?
그러니, 단순한 말에도 두세가지 숨은 목적을 두지 말고, 말 자체의 순수함을 살려서 "말하기 연습'을 나도 해야 할 것 같다.
배냐, 배에냐, 말이냐 마알이냐 하는 것 부터.
女記者 벤치/ 나들이
199* 년 ?
"나들이"
얼마전 서울에 잠깐 다녀왔다.
2,3년 사이에 또 많이 달라진 서울이었다. 몇 가지 공적인 일로 간 여행이었지만 내게는 친구들을 만나 본 일이 더 큰 몫을 차지했었던 것 같다,
미국에서 산 나의 세월에도 긴 이야기가 있으나 다 생략되어지고, 나는 마치 화면이 끊어져 엉뚱한 장면에서 불쑥 새로 시작되는 영화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그들과 만났다.
뚜렸한 세월의 흔적들... 이제는 별 수 없이 '중년'이란 나이를 실감하게 해주는 모습들이었다. 워낙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한국이라서인지, 내 학교 때 친구들이 벌써 성공이란 말이 어색치 않을 위치에 서 있는 것에 은근히 놀라왔다.
비서실에서 한 10분 기다렸다가 만날 수 있었던 친구, 알아주는 예술가가 이미 되어버린 친구, 또 나를 위해 운전수를 보내주는 친구도 있었다.
유명인이 된 어느 친구와는 가는 곳마다 나도 덩달아 특별 대접을 받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이작 독신으로 정신적인 방황을 하는 사업가, 예술가의 아내가 되어 "난 너무 외로워" 하고 절규를 하는 중년여인. 그리고 남편 바지 다리게에 적당히 지쳐있는 모범 아내도 만났다.
"미국에서는 너흳들 너무 사치스럽ㄱ 산다고 얼마나 걱정들을 하가ㅗ 있는 줄 알아?" 하고 말을 꺼냈었으나, 아이들의 장래를 염려하는 진지한 마음들, 좀 더 나은 가ㅊ지를 찾으려 애쓰는 정서들. 그 '열심'에 오히려 내 자신을 돌아 보게 되고 말았다.
우리들은 순간순간 '어머 너 아직도 그 버릇 있구나' 하며 학교 때의 너와 나로 돌아가 감탄을 하면 깔깔거리곤 했더.
"여전하구나." 그러다보면 순수한 감정들이 솟아나고 퉁퉁해진 몸매와 달라진 어휘에도 불구하고 아음은 10년 전, 15년 전으로 돌아갔다. 마술에 걸린 듯 그 당시의 비밀들을 털어 놓았다.
얼마나 유치한 문제들이었던가!
우연이라 하기엔 너무 기적처럼, 어느 차집에 들어 섰을 때 학교 시절 거의 매일 귀가 멍멍해지도록 듣던 멜라니 사프카의 노래가 나오기도 했다.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변변할 수 밖에 없어서 변해가고, 또 억지로 변화시켜 가면서 사는 우리들 인생 속에서 '그래도 변하지 않은 것들을 발견하는 기쁨은 컸다.
실은 올리픽 대로를 다리며 바라보는 변한, 너무나 변한 한각와 서울의 모습에 주눅이 들었었다. 그러다 광화문, 퇴계로, 스카라 극장 앞 골목골목에서 옛 모습 그대로를 보고 마음이 푸근해 졌던 것 처럼, 무척 달라진 친구들이 겉 모습 속에서 결코 변하지 않고 잇는 구석들을 대 할수 있었던 것이 정말 너무 좋았다.
변하지 않는 것의 귀중함을 알았다.
그리고 그 순수함으로 듬뿍 청전시키고 온 이번 서울 나들이었다.
"나들이"
얼마전 서울에 잠깐 다녀왔다.
2,3년 사이에 또 많이 달라진 서울이었다. 몇 가지 공적인 일로 간 여행이었지만 내게는 친구들을 만나 본 일이 더 큰 몫을 차지했었던 것 같다,
미국에서 산 나의 세월에도 긴 이야기가 있으나 다 생략되어지고, 나는 마치 화면이 끊어져 엉뚱한 장면에서 불쑥 새로 시작되는 영화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그들과 만났다.
뚜렸한 세월의 흔적들... 이제는 별 수 없이 '중년'이란 나이를 실감하게 해주는 모습들이었다. 워낙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한국이라서인지, 내 학교 때 친구들이 벌써 성공이란 말이 어색치 않을 위치에 서 있는 것에 은근히 놀라왔다.
비서실에서 한 10분 기다렸다가 만날 수 있었던 친구, 알아주는 예술가가 이미 되어버린 친구, 또 나를 위해 운전수를 보내주는 친구도 있었다.
유명인이 된 어느 친구와는 가는 곳마다 나도 덩달아 특별 대접을 받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이작 독신으로 정신적인 방황을 하는 사업가, 예술가의 아내가 되어 "난 너무 외로워" 하고 절규를 하는 중년여인. 그리고 남편 바지 다리게에 적당히 지쳐있는 모범 아내도 만났다.
"미국에서는 너흳들 너무 사치스럽ㄱ 산다고 얼마나 걱정들을 하가ㅗ 있는 줄 알아?" 하고 말을 꺼냈었으나, 아이들의 장래를 염려하는 진지한 마음들, 좀 더 나은 가ㅊ지를 찾으려 애쓰는 정서들. 그 '열심'에 오히려 내 자신을 돌아 보게 되고 말았다.
우리들은 순간순간 '어머 너 아직도 그 버릇 있구나' 하며 학교 때의 너와 나로 돌아가 감탄을 하면 깔깔거리곤 했더.
"여전하구나." 그러다보면 순수한 감정들이 솟아나고 퉁퉁해진 몸매와 달라진 어휘에도 불구하고 아음은 10년 전, 15년 전으로 돌아갔다. 마술에 걸린 듯 그 당시의 비밀들을 털어 놓았다.
얼마나 유치한 문제들이었던가!
우연이라 하기엔 너무 기적처럼, 어느 차집에 들어 섰을 때 학교 시절 거의 매일 귀가 멍멍해지도록 듣던 멜라니 사프카의 노래가 나오기도 했다.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변변할 수 밖에 없어서 변해가고, 또 억지로 변화시켜 가면서 사는 우리들 인생 속에서 '그래도 변하지 않은 것들을 발견하는 기쁨은 컸다.
실은 올리픽 대로를 다리며 바라보는 변한, 너무나 변한 한각와 서울의 모습에 주눅이 들었었다. 그러다 광화문, 퇴계로, 스카라 극장 앞 골목골목에서 옛 모습 그대로를 보고 마음이 푸근해 졌던 것 처럼, 무척 달라진 친구들이 겉 모습 속에서 결코 변하지 않고 잇는 구석들을 대 할수 있었던 것이 정말 너무 좋았다.
변하지 않는 것의 귀중함을 알았다.
그리고 그 순수함으로 듬뿍 청전시키고 온 이번 서울 나들이었다.
Monday, August 5, 2019
27 스트리트/ 평생교육
1993년 9월 1일
평생교육
아이들이 새 선생님이 결정된 통지서를 받고는 친구들과 전화하고 어느 선생님이 되었는지 같은 반인지 갈라졌는지, 좋아하고 섭섭해하고 야단들이다.
나도 덩달아 각 학교 성인 교육 프로그램 저녁반이나 토요반에 들을 만한 강의가 있는지 카다로그를 뒤적여 본다. 이번 학기에는 미술감상이나 영어회화 말고 좀 더 미국이란 사회를 잘 알수 있고, 어차피 이곳 사람이 될 아이들 하고의 문화차이도 줄여볼 강의가 없나 살펴 본다.
집에 가서도 또 한바탕의 일이 있고, 토, 일요일은 지내고 나면 오히려 월요일 출근 기차속에서 마음과 몸을 쉬곤하는 '일하는 엄마'가 적당한 시간 내기는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자세히 설명되어 있는 강의 내용들을 볼때, 어떻게서든 한 과목이라도 신청해봐야 겠다는 생각이다.
미국ㅇ느 '사람은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한다.'라는 말이 실감나는 나리안것 같다.
대학이나 YWCA 등 큰 기관 말고도 동네의 '성인 프로그램'만 해도 취미생활에서부터 전문적인 기술에까지 그 전문성과 다양함이 대단하다.
문화, 예술, 육체, 정신 건강, 경제 문제, 운동, 언어,, 요리, 원예, 뉴욕 시내와 뉴욕 근교에 산재해 있는 뮤지움, 역사적인 건물 등 관람까지....
특히 요즈음엔 학교마다 각 나라 식당을 다니면서 믕식 맛을 보고 요리법까지 배우느 ㄴ코스라든가, 월 트레이드 센터 폭탄 사건 강의, '2천달라 미만으로 뉴욕에서 시작할수 있는 사업' 강의 등 복잡한 사회의 고도로 다양해진 삶에 맞는 프로그램 들을ㅇ 만들어 내고 있다.
이런 프로그램ㅇㄹ 가보면 유난히도 나이 많은 사람들이 많다. 머리가 하얗게 된 나이에 뭔가를 또 새로 배우려고 하는 그들에게서 느끼고 반상하는 바가 크다.
나는 어떠한가. 시험 답안지 위주의 주입식 공부만을 해온 20여세 나이에 이미 굳혀져 버린 머리로 그 이후 나머지 인생을 밀고 나가고 있는게 아닌가. 잘 난척 놀기만 하고 공부도 열심히 하지 않은 대학시절을 마치고 그 때 부터 자신의 머리에 떠 오른 생각은 다 옳은 것으로 여기고 살아오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반성이다.
다른 것 말고도 우리 아이들과 대화하며 자신있게 살기 위해서라도 (그애들에게 한국말만 가르칠것이 아니라), 평생 배워야한다는 생각으로 어른인 내가 지금이라도 자꾸 배워야겠다는 절실한 생각이 든다.
얼마 전 인터뷰를 했던 어떤 교수님의 말이 떠오른다.
"배우려면 먼저 몰라야 됩니다. 우리는 이미 자기자신이 뭐든지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넓고 새로운 세ㅖ를 전혀 배울 수가 없어요."
이번 학기에는 '뉴욕 타임즈 신문사를 방문해 편집자와 토론하는 프로그램에 한번 참여해 볼까 마음을 굳혀본다.
평생교육
아이들이 새 선생님이 결정된 통지서를 받고는 친구들과 전화하고 어느 선생님이 되었는지 같은 반인지 갈라졌는지, 좋아하고 섭섭해하고 야단들이다.
나도 덩달아 각 학교 성인 교육 프로그램 저녁반이나 토요반에 들을 만한 강의가 있는지 카다로그를 뒤적여 본다. 이번 학기에는 미술감상이나 영어회화 말고 좀 더 미국이란 사회를 잘 알수 있고, 어차피 이곳 사람이 될 아이들 하고의 문화차이도 줄여볼 강의가 없나 살펴 본다.
집에 가서도 또 한바탕의 일이 있고, 토, 일요일은 지내고 나면 오히려 월요일 출근 기차속에서 마음과 몸을 쉬곤하는 '일하는 엄마'가 적당한 시간 내기는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자세히 설명되어 있는 강의 내용들을 볼때, 어떻게서든 한 과목이라도 신청해봐야 겠다는 생각이다.
미국ㅇ느 '사람은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한다.'라는 말이 실감나는 나리안것 같다.
대학이나 YWCA 등 큰 기관 말고도 동네의 '성인 프로그램'만 해도 취미생활에서부터 전문적인 기술에까지 그 전문성과 다양함이 대단하다.
문화, 예술, 육체, 정신 건강, 경제 문제, 운동, 언어,, 요리, 원예, 뉴욕 시내와 뉴욕 근교에 산재해 있는 뮤지움, 역사적인 건물 등 관람까지....
특히 요즈음엔 학교마다 각 나라 식당을 다니면서 믕식 맛을 보고 요리법까지 배우느 ㄴ코스라든가, 월 트레이드 센터 폭탄 사건 강의, '2천달라 미만으로 뉴욕에서 시작할수 있는 사업' 강의 등 복잡한 사회의 고도로 다양해진 삶에 맞는 프로그램 들을ㅇ 만들어 내고 있다.
이런 프로그램ㅇㄹ 가보면 유난히도 나이 많은 사람들이 많다. 머리가 하얗게 된 나이에 뭔가를 또 새로 배우려고 하는 그들에게서 느끼고 반상하는 바가 크다.
나는 어떠한가. 시험 답안지 위주의 주입식 공부만을 해온 20여세 나이에 이미 굳혀져 버린 머리로 그 이후 나머지 인생을 밀고 나가고 있는게 아닌가. 잘 난척 놀기만 하고 공부도 열심히 하지 않은 대학시절을 마치고 그 때 부터 자신의 머리에 떠 오른 생각은 다 옳은 것으로 여기고 살아오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반성이다.
다른 것 말고도 우리 아이들과 대화하며 자신있게 살기 위해서라도 (그애들에게 한국말만 가르칠것이 아니라), 평생 배워야한다는 생각으로 어른인 내가 지금이라도 자꾸 배워야겠다는 절실한 생각이 든다.
얼마 전 인터뷰를 했던 어떤 교수님의 말이 떠오른다.
"배우려면 먼저 몰라야 됩니다. 우리는 이미 자기자신이 뭐든지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넓고 새로운 세ㅖ를 전혀 배울 수가 없어요."
이번 학기에는 '뉴욕 타임즈 신문사를 방문해 편집자와 토론하는 프로그램에 한번 참여해 볼까 마음을 굳혀본다.
27 스트리트/ 어머니의 편지
1993년 7월 8일
어머니의 편지
처음 미국 왓을 때 '편지'는 내 생활에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어머니와 아버지께서 따로 따로 편지를 주셨고, 세 동생들이 질세라 편지를 보냈으며 또 학교 동창들 회ㅗ사 다닐때 동료들과도 왜 그리 할 말이 많ㅇ느지 편지를 자주 주고 받았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오가는 편지의 숫자가 줄어가 것은 자연스런 일이리라. 웬만한 일은 전화와 팩스를 쓰면서도 편지를 받는 일은 반가와서 될 수록 시간ㅇ르 내서 동생들이나 친구들에게 편지를 쓰려고 노력은 하고 있다.
그런 중에도 10 여년을 끊이지 않는 편지가 어머니의 편지다.
"어제의 맑은 날에 이어 오늘은 줄줄 비야요. 그러나 언제나 태산 같이 흔들림 없는 자세가 필요하지. 어제 개었다고 좋아는 했을 망정 오늘의 비에 기氣 죽지 않는....'
이렇게 시작하는 어머니의 편지를 엊그제도 받았다.
마당에 심어 놓으신 온갖 꽃 야채에 대한 얘기, 동생네 사는 이야기, 친구분들과 만나셨던 이야기, 영화를 보시거나 재미있는 책을 읽으신 감상 등 그때그때 생활에서 오는 감정들, 그리고 이곳의 내 생활에 대한 ㅂ배려 등등...탁월하신 관찰격과 독특한 표현법으로 특유의 유오어를 섞어 자세하게 구구절절 적어서 보내주시는 두툼한 편지는 우선 한번 빨리 읽어두겄다가 나중에 애들 다 잘 적에 내 책상머리에 앉아 차근차늑ㄴ 다시 읽으며 혼자 "엄마는 차암...'하며 웃기도 하고 또 눈싱러을 적시기도 한다.
거통에는 꼭 하트 모양을 그려놓고,9살,7살 두 손녀 손자에게도 생일때나 크리스마스 때 아니래도 그림을 많이 그려서 편지를 자주 해주시니, 아이들도 할머니 편지를 참 조하한다.
꼬박꼬박 배달되는 어머니의 편지만큼 가슴을 뿌듯하게 하는, 정이 듬뿍 배인 사랑이 세상에 또 어디 있을까 한다.27 ㅅ
우리가 흔히 존경하는 현모(賢母)에 비해서 어머니는 오히려 우리 형제들과 같은 수준으로 매사에 함께 울고 웃고하는 생활을 해오셨다.
요즈음엔 편지마다 스스로를 제대로 엄마노릇 못한 엄마라고 말씀 하시곤 하는데, 아마도 이렇듯 번번히 어머니와 어머니 주변의 생활을 생생하게 그려낸 편지를 보내주셔서 그 무엇으로도 대치할수 없는 귀중하고 멋드러진 정情을 아직도 다 큰 자식에게 퍼부어 주고 계시다는 것을 모르시는 모양이다.
"나는 참을성이 많아서 너희 편지 안 올때도 잘 참을수 있다." 하시는 어머니에게 내가 더 자주 마련해야 할 것은 편지를 쓸 시간이 아니라 편지를 쓸 마음이라는 것을 잘 알고있다.
어머니의 편지
처음 미국 왓을 때 '편지'는 내 생활에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어머니와 아버지께서 따로 따로 편지를 주셨고, 세 동생들이 질세라 편지를 보냈으며 또 학교 동창들 회ㅗ사 다닐때 동료들과도 왜 그리 할 말이 많ㅇ느지 편지를 자주 주고 받았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오가는 편지의 숫자가 줄어가 것은 자연스런 일이리라. 웬만한 일은 전화와 팩스를 쓰면서도 편지를 받는 일은 반가와서 될 수록 시간ㅇ르 내서 동생들이나 친구들에게 편지를 쓰려고 노력은 하고 있다.
그런 중에도 10 여년을 끊이지 않는 편지가 어머니의 편지다.
"어제의 맑은 날에 이어 오늘은 줄줄 비야요. 그러나 언제나 태산 같이 흔들림 없는 자세가 필요하지. 어제 개었다고 좋아는 했을 망정 오늘의 비에 기氣 죽지 않는....'
이렇게 시작하는 어머니의 편지를 엊그제도 받았다.
마당에 심어 놓으신 온갖 꽃 야채에 대한 얘기, 동생네 사는 이야기, 친구분들과 만나셨던 이야기, 영화를 보시거나 재미있는 책을 읽으신 감상 등 그때그때 생활에서 오는 감정들, 그리고 이곳의 내 생활에 대한 ㅂ배려 등등...탁월하신 관찰격과 독특한 표현법으로 특유의 유오어를 섞어 자세하게 구구절절 적어서 보내주시는 두툼한 편지는 우선 한번 빨리 읽어두겄다가 나중에 애들 다 잘 적에 내 책상머리에 앉아 차근차늑ㄴ 다시 읽으며 혼자 "엄마는 차암...'하며 웃기도 하고 또 눈싱러을 적시기도 한다.
거통에는 꼭 하트 모양을 그려놓고,9살,7살 두 손녀 손자에게도 생일때나 크리스마스 때 아니래도 그림을 많이 그려서 편지를 자주 해주시니, 아이들도 할머니 편지를 참 조하한다.
꼬박꼬박 배달되는 어머니의 편지만큼 가슴을 뿌듯하게 하는, 정이 듬뿍 배인 사랑이 세상에 또 어디 있을까 한다.27 ㅅ
우리가 흔히 존경하는 현모(賢母)에 비해서 어머니는 오히려 우리 형제들과 같은 수준으로 매사에 함께 울고 웃고하는 생활을 해오셨다.
요즈음엔 편지마다 스스로를 제대로 엄마노릇 못한 엄마라고 말씀 하시곤 하는데, 아마도 이렇듯 번번히 어머니와 어머니 주변의 생활을 생생하게 그려낸 편지를 보내주셔서 그 무엇으로도 대치할수 없는 귀중하고 멋드러진 정情을 아직도 다 큰 자식에게 퍼부어 주고 계시다는 것을 모르시는 모양이다.
"나는 참을성이 많아서 너희 편지 안 올때도 잘 참을수 있다." 하시는 어머니에게 내가 더 자주 마련해야 할 것은 편지를 쓸 시간이 아니라 편지를 쓸 마음이라는 것을 잘 알고있다.
여기자 벤치/ 손님
1990년 8월 11일(토요일)
손님
어렸을 때는 집에 손님이 오신다 하면 마음이 들떠서 공연히 뛰어 다니며 좋아하곤 했었다.
'친구가 멀리서 찾아 오니 이 아니 기쁜가-'하면서 학교에서 한문공부를 하던 기억도 있고,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온다는 우리말의 '손님'에서는 어딘지 반갑고 기쁜 이미지가 들어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요사이 나는 "누가 또 오신대요?" 하면서 순님이 오실거라는 소식에 "아휴-"하느 ㄴ한숨이 저절로 나오게 되어 버렸다.
미국에서 살면서 그것도 뉴욕에서 살면서 수 없이 맞게 되는 손님들! 관광여행이건 사업차이건 유학으로 이건 미국으로 오는 사람들은 목적지가 어디이던지, 거의가 뉴욕을 거쳐 머물다 가곤한다. 물론 우리가 살고 ㅇㅆ으니까 우리도 만날겸 유학생들은 방학이나 크리스마스 때면 또 다시 찾아온다.
처음엔, 뉴욕엘 왔으니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은 좀 봐야겠지? 하며 맨하탄엘 나가고 우리도 덕분에 한가롭게 구경도 하고 챠이나 타운에 가서 저녁도 먹곤하여 좋았었다.
사실 나는 자유의 여신상이며 쌍둥이 빌딩 등을 손님들 덕분에 구경하였다. 또 뭘 좀 꼭 사야겠다는 손님들을 모시고 다니며 덩달아 나도 뭘 좀 사기도 했다.
늘 똑같은 생활의 반복이다가 한국서 손님들이 오시면 애들 내의며 김, 멸치, 고추가루 등 선물도 푸짐하고 좀 북적거리는 것이 즐겁기도 하였었다.
그러나 세월이 가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아이들에 직장 일에, 자연히 나의 생활이 바빠져 가는데 웬일인지 손님이 수도 부쩍 부쩍 늘어났다.
관광이나 사업차 출장 오시는 본 뿐만 아니고 그 동안 줄줄이 왔던 시댁쪽 친정 쪽 유학생들의 부모님들이 졸없식 참석차 오시고, 또 이삿짐을 꾸려주신다고도 오신다.
환갑여행, 유럽여행, 성지순례로 오시는 분, 미국 구경 못한 아들 군대가기 전에 한번 데리고 오시는 분까지...... 한이 없다.
한 집은 요새 시댁 부모님, 친정 부모님에 다른 지방에 사는 친척까지 함께 와 계셔서 정신이 없다고 한다.
한팀은 이미 미국여행을 하셨던 분들이고, 한 팀은 뉴욕 시내 관광부터 워싱턴, 나이아가라 관광에 유럽여행까지 하실 분들이며, 무도 다 발들이 없으시다.
60년 망에 미국에 오신 분들 대접을 잘 해야겠고, 공항 모셔다 ㄱ드리고 모셔오고 하면서 한편으로 다른 팀들 스켖류에도 맞춰서 움직여여 되고, 아이들 데이캠프며 온갖 집안일들에다..... 허리아픈 그 집 주부가 가엾기까지 하다.
우리 집도 이 여름을 오고 가는 손님으로 생활의 질서가 허물어진 채로 지내고 있다.
지금 계시고 있는 친정 이모님 내외분 가시면 곧 ㅏㄴ국서 또 시댁 숙모님이 오시기로 되어 있다.
냉장고 속엔 김이 쌓여가고, 할 일들도 태산같이 쌓여 밀려 있는데. 미리 몸살이 날 지경이다.
손님
어렸을 때는 집에 손님이 오신다 하면 마음이 들떠서 공연히 뛰어 다니며 좋아하곤 했었다.
'친구가 멀리서 찾아 오니 이 아니 기쁜가-'하면서 학교에서 한문공부를 하던 기억도 있고,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온다는 우리말의 '손님'에서는 어딘지 반갑고 기쁜 이미지가 들어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요사이 나는 "누가 또 오신대요?" 하면서 순님이 오실거라는 소식에 "아휴-"하느 ㄴ한숨이 저절로 나오게 되어 버렸다.
미국에서 살면서 그것도 뉴욕에서 살면서 수 없이 맞게 되는 손님들! 관광여행이건 사업차이건 유학으로 이건 미국으로 오는 사람들은 목적지가 어디이던지, 거의가 뉴욕을 거쳐 머물다 가곤한다. 물론 우리가 살고 ㅇㅆ으니까 우리도 만날겸 유학생들은 방학이나 크리스마스 때면 또 다시 찾아온다.
처음엔, 뉴욕엘 왔으니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은 좀 봐야겠지? 하며 맨하탄엘 나가고 우리도 덕분에 한가롭게 구경도 하고 챠이나 타운에 가서 저녁도 먹곤하여 좋았었다.
사실 나는 자유의 여신상이며 쌍둥이 빌딩 등을 손님들 덕분에 구경하였다. 또 뭘 좀 꼭 사야겠다는 손님들을 모시고 다니며 덩달아 나도 뭘 좀 사기도 했다.
늘 똑같은 생활의 반복이다가 한국서 손님들이 오시면 애들 내의며 김, 멸치, 고추가루 등 선물도 푸짐하고 좀 북적거리는 것이 즐겁기도 하였었다.
그러나 세월이 가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아이들에 직장 일에, 자연히 나의 생활이 바빠져 가는데 웬일인지 손님이 수도 부쩍 부쩍 늘어났다.
관광이나 사업차 출장 오시는 본 뿐만 아니고 그 동안 줄줄이 왔던 시댁쪽 친정 쪽 유학생들의 부모님들이 졸없식 참석차 오시고, 또 이삿짐을 꾸려주신다고도 오신다.
환갑여행, 유럽여행, 성지순례로 오시는 분, 미국 구경 못한 아들 군대가기 전에 한번 데리고 오시는 분까지...... 한이 없다.
한 집은 요새 시댁 부모님, 친정 부모님에 다른 지방에 사는 친척까지 함께 와 계셔서 정신이 없다고 한다.
한팀은 이미 미국여행을 하셨던 분들이고, 한 팀은 뉴욕 시내 관광부터 워싱턴, 나이아가라 관광에 유럽여행까지 하실 분들이며, 무도 다 발들이 없으시다.
60년 망에 미국에 오신 분들 대접을 잘 해야겠고, 공항 모셔다 ㄱ드리고 모셔오고 하면서 한편으로 다른 팀들 스켖류에도 맞춰서 움직여여 되고, 아이들 데이캠프며 온갖 집안일들에다..... 허리아픈 그 집 주부가 가엾기까지 하다.
우리 집도 이 여름을 오고 가는 손님으로 생활의 질서가 허물어진 채로 지내고 있다.
지금 계시고 있는 친정 이모님 내외분 가시면 곧 ㅏㄴ국서 또 시댁 숙모님이 오시기로 되어 있다.
냉장고 속엔 김이 쌓여가고, 할 일들도 태산같이 쌓여 밀려 있는데. 미리 몸살이 날 지경이다.
Saturday, August 3, 2019
27 스트리트/ 잘난 척, 겸손한 척
1993년 3월 16일
잘난 척, 겸손한 척
"잘 난척 하는 사람보다 겸손한 척 하는 사람이 더 싫다."라는 말에 너무나 동감을 한 적이 있다.
물론 잘난 척 하는 사람이 그것보다 덜 싫은 것은 아니니 어쨋던 그 "척" 하는 사람이 생리적으로 싫은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리라.
겸손한 척 하는 것도 사실은 잘났다고 하는 것이니 결국은 마찬가지이긴 하다.
그런데 사회생활을 하면서 가장 많ㄴ이 말꺼리글 만드는 것 중에 하나가 이 "척"하는 문에에 관한 것이다.
"별것도 아닌것이 잘 난 척을 한단 말이야."라고 말로 하는 사람은 그래도 순수한 편이다.
정말 못 봐주겠다는 사람에 대한 이유들이 가지각색인 것 같은데 실은 거의가 그 사람이 자기보다 못한데도 불구하고 자기보다 나은 척을 한다는데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사람은 절대 자기 자신을 알 ㅅ 없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나는 이런 사람입니다." 하면서 자기 자신을 가장 잘 안다고 착각하고 있다.
더우기 자기가 가장 옳고 그 누구 보다도 괜찮다고 생각하고 그 점을 자꾸 남에게 알리고 싶어하는 것이다.
그리고 진짜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자기는 잘 난것을 알리고 싶으면서도(이것은 거의 본는이 아닌가한다.) 남이 자신과 똑 같은 이유로 잘 난것을 나타낼 때 그것은 너무 싫다는 겅디ㅏ.
그러므로 자랑하고 싶고 잘 났다는 거을 말하고 싶을 때는(특히 자기 아이들에 대해) 자꾸 빙빙 돌려 말하게 되는데, 오히려 듣는 사람은 척하는 것을 금방 알아채고 빙빙 돌려 말한ㄴ 것이 더 밉기 마련이다.
나는 언제 부터인가 나의 그런 속성을 인식하고 내 주변에 왠만큼 잘난 사람이 잘 난 척은 '진심'으로 받아 드리기로 했다.
내 친구 중에 정말 '잘난 사람'이 있는데 본인도 자기는 그 잘난 맛에 산다고 농담삼아 말하지만 그것이 진싱이 아닌가 한다.
다 자기 잘난 맛에 산다고 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남도 그렇다는 것을 너그럽게 알아주면 세상이 지금보다는 한 차원 높은 데서 시작될것도 같다.
항상 "으응, 그건 그게 아니야..."로 남의 말에 답변하는 ㅂㄴ이 있는데, 실제로 그분은 많이 아시고 굉장히 부지런 하시고 매사에 꼼꼼하시고 정확하시고 경제적이고 그리고 미저감각도 뛰어 나셔서 암만 잘난척 하셔도 관히 마음 상하지 않기로 하니 그분이 오히려 좋아졌다.
ㄱ또 언제나 '나는' 내가' '나를'을 빼면 말이 안되는 사람도, 머리도 좋고 1인 3역으로 그 야말로 열심히 사느느 사람이기에 봐주기로 하고 잘 지낸다.
그런데 그가 자랑하는 자신의 순수함을 인정해줬었던 한 친구는 그의 딸과 우리 딸이 1살 때부터 10년간 매년 서로의 생일에 초대하던 사이인데, 작년 딸의 밤샘 생일 파티(Sleep Over Party)때 우리 아이가 잘 때 토를 곤다고 초대를 하지 않아서 즉시로 그의 잘난 점을 가차없이 일체 백지로 돌려 ㅂ렸다.
어쨋거나 직접 잘난 척 하는 사람은 대충 넘어가겠는데 남은 숙제는 "제가 뭘 아나요." "전 못해요" 로 상대방으로 부터 "잘 하시잖아요." 라는 말을 듣고 싶어하는 사람의 얄미운 것을 어떤 이론으로 받아들이냐는 문제인데, 답은 안다.
이런 겸손한 척하는 본능이 내 속에도 똑 같이 들어 있ㅇ므로 역시 귀엽게 봐주야 한다는 것이다.
잘난 척, 겸손한 척
"잘 난척 하는 사람보다 겸손한 척 하는 사람이 더 싫다."라는 말에 너무나 동감을 한 적이 있다.
물론 잘난 척 하는 사람이 그것보다 덜 싫은 것은 아니니 어쨋던 그 "척" 하는 사람이 생리적으로 싫은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리라.
겸손한 척 하는 것도 사실은 잘났다고 하는 것이니 결국은 마찬가지이긴 하다.
그런데 사회생활을 하면서 가장 많ㄴ이 말꺼리글 만드는 것 중에 하나가 이 "척"하는 문에에 관한 것이다.
"별것도 아닌것이 잘 난 척을 한단 말이야."라고 말로 하는 사람은 그래도 순수한 편이다.
정말 못 봐주겠다는 사람에 대한 이유들이 가지각색인 것 같은데 실은 거의가 그 사람이 자기보다 못한데도 불구하고 자기보다 나은 척을 한다는데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사람은 절대 자기 자신을 알 ㅅ 없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나는 이런 사람입니다." 하면서 자기 자신을 가장 잘 안다고 착각하고 있다.
더우기 자기가 가장 옳고 그 누구 보다도 괜찮다고 생각하고 그 점을 자꾸 남에게 알리고 싶어하는 것이다.
그리고 진짜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자기는 잘 난것을 알리고 싶으면서도(이것은 거의 본는이 아닌가한다.) 남이 자신과 똑 같은 이유로 잘 난것을 나타낼 때 그것은 너무 싫다는 겅디ㅏ.
그러므로 자랑하고 싶고 잘 났다는 거을 말하고 싶을 때는(특히 자기 아이들에 대해) 자꾸 빙빙 돌려 말하게 되는데, 오히려 듣는 사람은 척하는 것을 금방 알아채고 빙빙 돌려 말한ㄴ 것이 더 밉기 마련이다.
나는 언제 부터인가 나의 그런 속성을 인식하고 내 주변에 왠만큼 잘난 사람이 잘 난 척은 '진심'으로 받아 드리기로 했다.
내 친구 중에 정말 '잘난 사람'이 있는데 본인도 자기는 그 잘난 맛에 산다고 농담삼아 말하지만 그것이 진싱이 아닌가 한다.
다 자기 잘난 맛에 산다고 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남도 그렇다는 것을 너그럽게 알아주면 세상이 지금보다는 한 차원 높은 데서 시작될것도 같다.
항상 "으응, 그건 그게 아니야..."로 남의 말에 답변하는 ㅂㄴ이 있는데, 실제로 그분은 많이 아시고 굉장히 부지런 하시고 매사에 꼼꼼하시고 정확하시고 경제적이고 그리고 미저감각도 뛰어 나셔서 암만 잘난척 하셔도 관히 마음 상하지 않기로 하니 그분이 오히려 좋아졌다.
ㄱ또 언제나 '나는' 내가' '나를'을 빼면 말이 안되는 사람도, 머리도 좋고 1인 3역으로 그 야말로 열심히 사느느 사람이기에 봐주기로 하고 잘 지낸다.
그런데 그가 자랑하는 자신의 순수함을 인정해줬었던 한 친구는 그의 딸과 우리 딸이 1살 때부터 10년간 매년 서로의 생일에 초대하던 사이인데, 작년 딸의 밤샘 생일 파티(Sleep Over Party)때 우리 아이가 잘 때 토를 곤다고 초대를 하지 않아서 즉시로 그의 잘난 점을 가차없이 일체 백지로 돌려 ㅂ렸다.
어쨋거나 직접 잘난 척 하는 사람은 대충 넘어가겠는데 남은 숙제는 "제가 뭘 아나요." "전 못해요" 로 상대방으로 부터 "잘 하시잖아요." 라는 말을 듣고 싶어하는 사람의 얄미운 것을 어떤 이론으로 받아들이냐는 문제인데, 답은 안다.
이런 겸손한 척하는 본능이 내 속에도 똑 같이 들어 있ㅇ므로 역시 귀엽게 봐주야 한다는 것이다.
Friday, August 2, 2019
27 스트리트/ 인생의 작은 지침서
1993년 1월 13일
인생의 작은 지침서
지난 크리스마스 때 선물로 받은 책을 바쁘고 바쁜 연말 연시가 다 지나고 나서야 편안한 마음으로 가치에서 펴보면서 다시한번 이 작은 책을 주신 분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다.
책 이름은 '인생의 작은 지침서'. 'Life's Little Instruction on Book'이란 타이틀 밑에 '보람있고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 관찰하고 일 깨워주는 511개이 제안/ 이란 소제목이 달린 진짜 조그만 책이다.
이 책은 뉴욕 타임즈의 베스트 셀러에 오랫동안 제 1위로 올라있는 책으로, 작가가 "부모의 의무는 자식들이 나아갈 길에 포장을 해 주는 것이 아니라 자식에게 지도를 주느 ㄴ것"이라는 글을 읽고 작가 자신의 아들이 집을 떠나 기숙사로 갈 때 선물로 써준 글을 나중에 책으로 낸 것이라고 했다.
이 책을 주신 부부는 나보다 꼭 12년이 위이신데, 자신도 이 책을 선물로 받고 보니 좋아서 다시 다른 사람들에게 선물하신다고 하면서," 다 아는 말이지만 다시 한번쯤 생각케 해주니 참 좋다."고 하셨다.
그러니 이책은 대학 1년 생이나 50대 부부나 아니 미국에서 베스트 셀러이니 누구에게나 공감이 가는, 즉 모든 보통사람이 다 좋아할 수 있는 책인것이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이책을 읽고 있자니 웬지 이제까지의 내 생활을 ㅈ정리하는 마음이 된다.
물론 우리 한국사람으론ㄴ 이해하기 어려운 문화적인 차이에서 오는 내용도 많이 들어있으나, 유모어스럽게 쓰여진 명언들에 혼자서 쓱 웃기도 하며 또 어떤 말엔ㄴ 가슴이 찔리기도 하며, 그 동안 인생을 너무도 여유없이 매일매일을 빠듯하게만 산것이 후회스러웠다.
어려서부터 나는 별로 그 뜻을 마음에 새기는 것도 아니면서도 '아는 것이 힘'이다라든지 '침묵은 금이다.' 등 명언을 책상머리에 붙여두기도 잘 했고, 첫 아이가 생기고는 '어린이 천재 교육'이니 하면서 유태인의 탈무드에 관한 책도 열심히 보곤 했다.
또 신문에서 '마으므이 등대' '오늘의 명언' 등 짜막한 지혜의 글을 잘 읽는 편이다.
그러나 수천년 동안 인간의 생활 속에서 언제나 진리로 여겨져 내려 오는이런 글들은 주로 내 생활 속에서 실수와 실패 후에야 " 엤 명언이 하나도 안 틀려..." 하고 후회를 할 때에나 다시 떠오른다.
그런데 지금은 너무도 평범한 말이지만 '행복한 삶' '보람있는 삶'을 위한 이 작은 지침서가 내 경험들과 겹쳐서 다 알고 있는 평범한 한마이 한마디가 절실히 마음에 새겨지는 것이다.
'Read Your Favorite Book' 'Don't Gossip' 'Sing in the Shower' 등 등...
유난히도 정신이 없이 보람도 없이 지낸 지난 한 해를 생각하면서 이제부터는 조금이라도 어릴때 순수한 마음으로 가슴 부풀게 결심하곤 하던 '보람있ㄴㄴ 생활'을 위한 정신 재무장을 하기로 했다.
인생의 작은 지침서
지난 크리스마스 때 선물로 받은 책을 바쁘고 바쁜 연말 연시가 다 지나고 나서야 편안한 마음으로 가치에서 펴보면서 다시한번 이 작은 책을 주신 분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다.
책 이름은 '인생의 작은 지침서'. 'Life's Little Instruction on Book'이란 타이틀 밑에 '보람있고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 관찰하고 일 깨워주는 511개이 제안/ 이란 소제목이 달린 진짜 조그만 책이다.
이 책은 뉴욕 타임즈의 베스트 셀러에 오랫동안 제 1위로 올라있는 책으로, 작가가 "부모의 의무는 자식들이 나아갈 길에 포장을 해 주는 것이 아니라 자식에게 지도를 주느 ㄴ것"이라는 글을 읽고 작가 자신의 아들이 집을 떠나 기숙사로 갈 때 선물로 써준 글을 나중에 책으로 낸 것이라고 했다.
이 책을 주신 부부는 나보다 꼭 12년이 위이신데, 자신도 이 책을 선물로 받고 보니 좋아서 다시 다른 사람들에게 선물하신다고 하면서," 다 아는 말이지만 다시 한번쯤 생각케 해주니 참 좋다."고 하셨다.
그러니 이책은 대학 1년 생이나 50대 부부나 아니 미국에서 베스트 셀러이니 누구에게나 공감이 가는, 즉 모든 보통사람이 다 좋아할 수 있는 책인것이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이책을 읽고 있자니 웬지 이제까지의 내 생활을 ㅈ정리하는 마음이 된다.
물론 우리 한국사람으론ㄴ 이해하기 어려운 문화적인 차이에서 오는 내용도 많이 들어있으나, 유모어스럽게 쓰여진 명언들에 혼자서 쓱 웃기도 하며 또 어떤 말엔ㄴ 가슴이 찔리기도 하며, 그 동안 인생을 너무도 여유없이 매일매일을 빠듯하게만 산것이 후회스러웠다.
어려서부터 나는 별로 그 뜻을 마음에 새기는 것도 아니면서도 '아는 것이 힘'이다라든지 '침묵은 금이다.' 등 명언을 책상머리에 붙여두기도 잘 했고, 첫 아이가 생기고는 '어린이 천재 교육'이니 하면서 유태인의 탈무드에 관한 책도 열심히 보곤 했다.
또 신문에서 '마으므이 등대' '오늘의 명언' 등 짜막한 지혜의 글을 잘 읽는 편이다.
그러나 수천년 동안 인간의 생활 속에서 언제나 진리로 여겨져 내려 오는이런 글들은 주로 내 생활 속에서 실수와 실패 후에야 " 엤 명언이 하나도 안 틀려..." 하고 후회를 할 때에나 다시 떠오른다.
그런데 지금은 너무도 평범한 말이지만 '행복한 삶' '보람있는 삶'을 위한 이 작은 지침서가 내 경험들과 겹쳐서 다 알고 있는 평범한 한마이 한마디가 절실히 마음에 새겨지는 것이다.
'Read Your Favorite Book' 'Don't Gossip' 'Sing in the Shower' 등 등...
유난히도 정신이 없이 보람도 없이 지낸 지난 한 해를 생각하면서 이제부터는 조금이라도 어릴때 순수한 마음으로 가슴 부풀게 결심하곤 하던 '보람있ㄴㄴ 생활'을 위한 정신 재무장을 하기로 했다.
27스트리트/ 가을, 낙엽, 인생
1992년 11월
가을. 낙엽. 인생
"나무는 비야."
몇 년전 노오랗게 물든 나무에서 정말 나뭇잎이 비가 쏟아지듯 떨어지는 광역을 무심코 바라보며 운전을 하는데 디에 앉았던 네살 짜리 두째 아이가 한 말이었다.
저물어가는 저녁임에도 불구하고 크리스마스 장식용 전기 불처럼 노오란 나뭇잎들이 도로 이에 비처럼 흩날리는 장면은 철 없는 어린남자아이 조차도 시인의 마음이 되게 하는 힘이 있었는지.
그 후로 가을이 되어 단풍이 들기 시작하면 "인준아 나무가 비야?" 하고 꼬마를 놀리면서 찬찬히 계절을 음미하곤 한다.
미국에 와서 처음 맞은 가을 단풍을 잊을 수가 없다.
멀리 시골로 나간 것도 아닌데, 살고 있는 동네의 거리마다 집집마다 그 많은 나무들이 색색으로 물들던, 그리고는 발 밑에 수북이 수북이 쌍이던 낙엽.
쓸어내어도 쓸어내어도 돌아서면 또 쌓이는 낙엽에 압도도기 말았었다.
한 여름 더위가 가시면서 어느날 문득 마치 흰머리카락 생기듯 나무잎이 하나씩 둘씩 물들다가, 갑자기 추워지기 시작하면서는 몽퉁이로 나무색이 변하기 시작한다.
밤새 비라도 온날 아침이면 그 색이 더욱 더 선명해진다.
서울에서 산 30년 동안 그런 선명한 색의 단풍잎을 못 보았던 것 같다.
한 며칠을 왠지 바쁘게 지내다 어느 날 해질 녁 집으로 돌아 가는 길에 새삼스럽게 울긋불긋 물든 나무들이 눈에 들어와 가슴이 뭉클 하곤 한다.
나뭇잎의 색이 변하는 가을은 세월의 변화를 가장 마음 깊이 새겨주는 때인것 같다.
언 땅을 헤치고 돋아나는 새싹을 보는 봄이나, 뜨거운 햇빛의 여름이나 또 꽁꽁 어는 겨울과 달리 가을에는 공연히 옛 생각에 잠기고 떨어지는 낙엽을 하나 줏어 보기도 하면서 나의 인생을 생각한다.
뭔가... 이루지 못하고만 과거의 일들이 이 때쯤엔 더욱 더 안타깝게 여겨지고 고향 생각에도 젖는다.
서울서는 대학 시절 도봉산 가은 곳으로 단풍구경이라고 핑계를 대고 남학생들과 어울려 등산을 하곤 했었다. 그때는 사실 단풍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었을 것이다. 회사를 다니면서 출장으로 단풍 든 설악산에도 간 기억이 있으나 그 때의 일과 같이 갔던 사람들과의 재미있는 추억만이 남아 있다.
지금 내게 노오라 ㄴ단풍이며, 떨어지는 낙엽이며가 마음에 닿은 걱은 분명 인생의 가을을 어쩔 수 없이 인식해야만 할 나이 탓이 아닌가 한다.
그래서 이렇게 감상적이 되는가.
출근 기차 속에서도, 북적대는 서브웨이 속에서도 우수에 젖은 여인의 모습이라도 흉내내듯 보던 책을 무릎에 놓고 멍청히 앉자있곤 한다.
얼만 전에 일로 잠깐 서울엘 갔을 때" 얘, 온김에 설악산에 가서 송이 먹고 가라. 간풍도 한창이라는데..."하는 친구들을 보며, 우리가 어느 새 이렇게 팔자 조은 여자들의 대열에 끼게 되었는지 했다.
가을이니 한국에 온 김에 함께 옛날처럼 멋있는 연극이라도 구경하고, 동숭동 찻집에 앉아 커피향 속에서 옛 일을 이야기 해보자고 하는 것이 아니고 '송이 버섯 먹으로 가자'고 하는 그 ㅈㅇ연 아주마들이 바로 내 또래라는 것이 더욱 나의 인생의 가을을 강조해 주었다.
여기서도 교포 여행사들이 뉴욕 북쪽지방으로 단풍놀이 관광 들을ㅇ 마련하고 있어, 특별히 외출이나 여행을 하기 어려운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는 좋은 기회가 되는 것 같다.
아직은 단체관광으로 단풍놀이 갈 마음은 전혀 없다.
송이버섯은 못 먹어도 어디고 온갖 빨간색과 온갖 노란 색으로 물든 나무들을 보면서, 비처럼 우수수 흩어지는 낙엽 속에서 이번 가을은 더 늙기 전에 한번 센치하게 지내보는 것도 괜찮겠다.
가을. 낙엽. 인생
"나무는 비야."
몇 년전 노오랗게 물든 나무에서 정말 나뭇잎이 비가 쏟아지듯 떨어지는 광역을 무심코 바라보며 운전을 하는데 디에 앉았던 네살 짜리 두째 아이가 한 말이었다.
저물어가는 저녁임에도 불구하고 크리스마스 장식용 전기 불처럼 노오란 나뭇잎들이 도로 이에 비처럼 흩날리는 장면은 철 없는 어린남자아이 조차도 시인의 마음이 되게 하는 힘이 있었는지.
그 후로 가을이 되어 단풍이 들기 시작하면 "인준아 나무가 비야?" 하고 꼬마를 놀리면서 찬찬히 계절을 음미하곤 한다.
미국에 와서 처음 맞은 가을 단풍을 잊을 수가 없다.
멀리 시골로 나간 것도 아닌데, 살고 있는 동네의 거리마다 집집마다 그 많은 나무들이 색색으로 물들던, 그리고는 발 밑에 수북이 수북이 쌍이던 낙엽.
쓸어내어도 쓸어내어도 돌아서면 또 쌓이는 낙엽에 압도도기 말았었다.
한 여름 더위가 가시면서 어느날 문득 마치 흰머리카락 생기듯 나무잎이 하나씩 둘씩 물들다가, 갑자기 추워지기 시작하면서는 몽퉁이로 나무색이 변하기 시작한다.
밤새 비라도 온날 아침이면 그 색이 더욱 더 선명해진다.
서울에서 산 30년 동안 그런 선명한 색의 단풍잎을 못 보았던 것 같다.
한 며칠을 왠지 바쁘게 지내다 어느 날 해질 녁 집으로 돌아 가는 길에 새삼스럽게 울긋불긋 물든 나무들이 눈에 들어와 가슴이 뭉클 하곤 한다.
나뭇잎의 색이 변하는 가을은 세월의 변화를 가장 마음 깊이 새겨주는 때인것 같다.
언 땅을 헤치고 돋아나는 새싹을 보는 봄이나, 뜨거운 햇빛의 여름이나 또 꽁꽁 어는 겨울과 달리 가을에는 공연히 옛 생각에 잠기고 떨어지는 낙엽을 하나 줏어 보기도 하면서 나의 인생을 생각한다.
뭔가... 이루지 못하고만 과거의 일들이 이 때쯤엔 더욱 더 안타깝게 여겨지고 고향 생각에도 젖는다.
서울서는 대학 시절 도봉산 가은 곳으로 단풍구경이라고 핑계를 대고 남학생들과 어울려 등산을 하곤 했었다. 그때는 사실 단풍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었을 것이다. 회사를 다니면서 출장으로 단풍 든 설악산에도 간 기억이 있으나 그 때의 일과 같이 갔던 사람들과의 재미있는 추억만이 남아 있다.
지금 내게 노오라 ㄴ단풍이며, 떨어지는 낙엽이며가 마음에 닿은 걱은 분명 인생의 가을을 어쩔 수 없이 인식해야만 할 나이 탓이 아닌가 한다.
그래서 이렇게 감상적이 되는가.
출근 기차 속에서도, 북적대는 서브웨이 속에서도 우수에 젖은 여인의 모습이라도 흉내내듯 보던 책을 무릎에 놓고 멍청히 앉자있곤 한다.
얼만 전에 일로 잠깐 서울엘 갔을 때" 얘, 온김에 설악산에 가서 송이 먹고 가라. 간풍도 한창이라는데..."하는 친구들을 보며, 우리가 어느 새 이렇게 팔자 조은 여자들의 대열에 끼게 되었는지 했다.
가을이니 한국에 온 김에 함께 옛날처럼 멋있는 연극이라도 구경하고, 동숭동 찻집에 앉아 커피향 속에서 옛 일을 이야기 해보자고 하는 것이 아니고 '송이 버섯 먹으로 가자'고 하는 그 ㅈㅇ연 아주마들이 바로 내 또래라는 것이 더욱 나의 인생의 가을을 강조해 주었다.
여기서도 교포 여행사들이 뉴욕 북쪽지방으로 단풍놀이 관광 들을ㅇ 마련하고 있어, 특별히 외출이나 여행을 하기 어려운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는 좋은 기회가 되는 것 같다.
아직은 단체관광으로 단풍놀이 갈 마음은 전혀 없다.
송이버섯은 못 먹어도 어디고 온갖 빨간색과 온갖 노란 색으로 물든 나무들을 보면서, 비처럼 우수수 흩어지는 낙엽 속에서 이번 가을은 더 늙기 전에 한번 센치하게 지내보는 것도 괜찮겠다.
27 스트리트/ 개학
1992년 9월 10일
이번 노동절 연휴를 개학 준비로 노동을 하면서 지냈다.
개학 전에 노동절로 휴일이 있다는 것은 나처럼 게으른 엄마로서는 참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그야말로 방학하는 날 던져두었던 아이들 책가방을 찾아 놓고 한글학교 가방까지 아예 챙겨두기도 했다.
준비해야 할 특별한 일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오랫동안 신나게 놀기만 한 아이들에게 학교가는 분위기를 잡아주는 뜻에서 일부러 백 투 스쿨( Back to School)샤핑도 데리고 가고 연필도 미리 ㄷ 깍아서 필통에 넣어 두라고 시켰다.
집안 여기저기 굴러 다니는 동네 도서관에서 빌리 온 책들도 한 곳에 모아두게 하고, 노틉ㄱ, 폴ㄷ, 런치 박스 등을 꺼낸 놓는 일 등 '학교 갈 준비'를 아이들이 직접하게 했다.
아이들도 재미있는지 큰 일이나 하는 듯 열심히 집안을 뛰어 다니며 책이며 연필을 찾아 내곤 했다.
아이들이 이만큼 큰 것이 실감이 나기도 하고 실감이 안 나기도 하다.
큰 애가 처음으로 널서리 스쿨을 갈 때, 선생님 인텁 며칠전 부터 아이가 영어를 못하는 걱정과 내가 선생님과 이야기를 해야 할 일에 너무나 흥분이 되었었다.
할말을 미리 영어로 생각해 두고 머리 속으로 볓번이나 연습을 했고, 막상 그 날 아침엔 마치 시험보는 학생처럼 떨리는 마음으로 아이 손을 잡고 학교로 향했었다.
무사히 10분간의 인터뷰를 끝내고 나올 때 그제서야 내가 드디어 학부모가 되었다는 감격을 하기도 했다.
한국에 있는 동생이 "선생님 만나러 가서 다 영어로 말해? 야 서로 간에 오해가 많겠구나" 놀리던 말이 아직도 지난 날이 농담만은 아니다.
첫번 선생님 면담 이후로도 매년 아이들 학교에 가는 일이나 선생님을 만나는 일에 늘 조금은 흥ㅂㄴ이 되곤 한다.
어쨋든 학부모 초년생은 벗어나서 두째 아이가 1학년이 되는 올해는 아이들에게 직접 준비를 시키기도 하면서 마음이 느긋하다.
매일 매일 그날이 그날 같으면서도 어쩌다 생활의 리듬을 깨는 일이 생기면 가슴이 설레이는 대신에, 그렇지 않아도 바빠 죽겠는데 이런 일 까지 생긴다고 짜증부터 나는 어른 들의 삶 속에도 이렇게 1년에 한 두번씩 여직껏이 생활을 정리하고 앞날을 준비하는 '개학'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긴장된 마음으로 오랜 만에 만날 친구들, 새로운 선생님에 대한 기대와 또 항상 큰 애들로만 보이던 높은 학년으로 나도 올라간다는 가슴 뿌듯함도 느껴 볼것이다.
어쨋든 긴긴 여름이 지나고 드디어 개학이다!
이제부터 또 다시 매일 아침 도시락을 싸줘야 하고 저녁엔 다음날 입을 옷을 꺼내두는 일을 시작해야 하지만, 하루종일 아이들이 놀 꺼리를 마련해주느라 머리 쓰지 않아도 되니까 우선은 홀가분한 기분이다.
나도 개학이다.
이번 노동절 연휴를 개학 준비로 노동을 하면서 지냈다.
개학 전에 노동절로 휴일이 있다는 것은 나처럼 게으른 엄마로서는 참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그야말로 방학하는 날 던져두었던 아이들 책가방을 찾아 놓고 한글학교 가방까지 아예 챙겨두기도 했다.
준비해야 할 특별한 일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오랫동안 신나게 놀기만 한 아이들에게 학교가는 분위기를 잡아주는 뜻에서 일부러 백 투 스쿨( Back to School)샤핑도 데리고 가고 연필도 미리 ㄷ 깍아서 필통에 넣어 두라고 시켰다.
집안 여기저기 굴러 다니는 동네 도서관에서 빌리 온 책들도 한 곳에 모아두게 하고, 노틉ㄱ, 폴ㄷ, 런치 박스 등을 꺼낸 놓는 일 등 '학교 갈 준비'를 아이들이 직접하게 했다.
아이들도 재미있는지 큰 일이나 하는 듯 열심히 집안을 뛰어 다니며 책이며 연필을 찾아 내곤 했다.
아이들이 이만큼 큰 것이 실감이 나기도 하고 실감이 안 나기도 하다.
큰 애가 처음으로 널서리 스쿨을 갈 때, 선생님 인텁 며칠전 부터 아이가 영어를 못하는 걱정과 내가 선생님과 이야기를 해야 할 일에 너무나 흥분이 되었었다.
할말을 미리 영어로 생각해 두고 머리 속으로 볓번이나 연습을 했고, 막상 그 날 아침엔 마치 시험보는 학생처럼 떨리는 마음으로 아이 손을 잡고 학교로 향했었다.
무사히 10분간의 인터뷰를 끝내고 나올 때 그제서야 내가 드디어 학부모가 되었다는 감격을 하기도 했다.
한국에 있는 동생이 "선생님 만나러 가서 다 영어로 말해? 야 서로 간에 오해가 많겠구나" 놀리던 말이 아직도 지난 날이 농담만은 아니다.
첫번 선생님 면담 이후로도 매년 아이들 학교에 가는 일이나 선생님을 만나는 일에 늘 조금은 흥ㅂㄴ이 되곤 한다.
어쨋든 학부모 초년생은 벗어나서 두째 아이가 1학년이 되는 올해는 아이들에게 직접 준비를 시키기도 하면서 마음이 느긋하다.
매일 매일 그날이 그날 같으면서도 어쩌다 생활의 리듬을 깨는 일이 생기면 가슴이 설레이는 대신에, 그렇지 않아도 바빠 죽겠는데 이런 일 까지 생긴다고 짜증부터 나는 어른 들의 삶 속에도 이렇게 1년에 한 두번씩 여직껏이 생활을 정리하고 앞날을 준비하는 '개학'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긴장된 마음으로 오랜 만에 만날 친구들, 새로운 선생님에 대한 기대와 또 항상 큰 애들로만 보이던 높은 학년으로 나도 올라간다는 가슴 뿌듯함도 느껴 볼것이다.
어쨋든 긴긴 여름이 지나고 드디어 개학이다!
이제부터 또 다시 매일 아침 도시락을 싸줘야 하고 저녁엔 다음날 입을 옷을 꺼내두는 일을 시작해야 하지만, 하루종일 아이들이 놀 꺼리를 마련해주느라 머리 쓰지 않아도 되니까 우선은 홀가분한 기분이다.
나도 개학이다.
27 스트리트/ 탐정소설
1992년 7월
탐정소설
요즈음 단편 추리 소설을 오가는 기차 속에서 열심히 읽고 있다.
나는 탐정 소설을 좋아한다.
탐정 소설광은 아니지만, 한참 살다가 웬지 생활이 지루하게 여겨지거나, ㄱ저 그렇고 그런 애정 소설, 내용이 머리에 남지 않는 수필들, 또는 정신수양으로 읽곤 하는 '사람은 모름지기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는 종교, 철학 책들에 질릴때는 탐정소설을 찾게 된다.
그러다 보니 매년 몇 번 씩은 꼭 탐정소설에 빠지곤 한다.
수많은 범죄 거의 모두가 인간의 본능인 돈 욕심과 질투에서 비롯한다는 것이 재미있다. 그 단순한 범행동기에 비해 교묘한 범행자체, 그리고 기막힌 추리력이 재미가 있는데 그 모든 것 보다 나는 범인과 주변 인물들, 사건을 해결해 내는 사람의 심리를 살펴보는 일이 더욱 재미있다.
등장 인물들은 극한 상황에서 사랑이나 도덕심, 정의감 보다는 어쩔 수 없는 인간 본능을 내보이기 마련이다.
세월이 세월이 지나다보니 낵 좋아하는 작가는 아가사 크리스티라는 것을 자연히 알게 되었다.
어릴적 읽던 샬록 홈즈 식 철저하고 치밀한 두뇌의 추리력 발휘보다는, 뜨게 바늘을 손에 들고 볼이 발그레하니 온화한 얼굴을 한 할머니 미스 마플이 순전히 여자 특유의 남에 대한 호기심으로 사건을 풀어 낸다는 식이 마음에 든다.
그녀는 어떤 사건이든지 호기심의 발동으로 관여하게 되고 그리고는 어떠어떠한 유형의 사람들은 주로 어ㄸ어떠한 행동을 하기 마련이라는, 오랜 경험에서 나온 통찰력으로 범인을 찾아내곤 한다.
바로 그 점에서 난, 그 이야기를 엮어내는 아가사 크리스티에 감탄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주변 사람들과 일상생활에서 늘 벌어지는 문제들(싸움)을 대할 때에 나도 마치 미스 마플과 같은 시각으로 사건을 객관화 시켜본다.
새로 사귄 사람이 어떤 행동으로 날 당화예 할 때가 있다. 그러면 난 예전에 알던 그와 비슷한 유형의 사람과의 경험을 살려서 그 사람의 성격과 행동을 판단해 본다.
재미있게도 밋 마플의 '이런 사람은 이런 행동을 하기 마련'이란 추리의 적용은 의외로 잘 맞아 떨어지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또 가정에서나 친구 사이, 그 외 사회집단 속에서 흔히 일어나는 크고 작은 불협화음도 탐정 소설의 버맹 동기처럼 거의가 다 개인의 욕심과 질투에서 시작된다는것, 그리고 그 악한 본능을 은폐하기 위해 교묘히 복잡한 이론과 지식을 총동원시켜 겉으로는 심각한 사상의 갈등처럼 보이게 한다는, 내 나름대로의 결론도 추리소설을 많이 읽은 덕택에 터득했다. 사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인간은 실생활과는 터무니 없이 다르게 과장된듯이 여겨지는 탐정소설의 등장 인물들 처럼 본래가 악하게 태어난 것이 아닌가 하게 된다.
이런 망ㅁ으로 나는 부부싸움도 고부간의 갈등도 친지와의 다툼도 또 어떨땐 형제지간의 문제까지도 풀어본다.
나와 상대방이 갖고 있는 단순한 본능(욕심, 질투) 이 문제의 핵심인 것을 알면 문제는 쉽게 풀리고 마음이 편해지곤 하는 것이다.
오늘도 기차 속에서 세번이나 자기 ㅂ인을 살해하려다 오히려 자기가 죽고마는 이야기와 남편 있는 여인을 소유하려고 그 애인마저 ㅈㄱ여버리는 코믹한 추리소설을 재미있게 읽으며 출근을 했다.
탐정소설
요즈음 단편 추리 소설을 오가는 기차 속에서 열심히 읽고 있다.
나는 탐정 소설을 좋아한다.
탐정 소설광은 아니지만, 한참 살다가 웬지 생활이 지루하게 여겨지거나, ㄱ저 그렇고 그런 애정 소설, 내용이 머리에 남지 않는 수필들, 또는 정신수양으로 읽곤 하는 '사람은 모름지기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는 종교, 철학 책들에 질릴때는 탐정소설을 찾게 된다.
그러다 보니 매년 몇 번 씩은 꼭 탐정소설에 빠지곤 한다.
수많은 범죄 거의 모두가 인간의 본능인 돈 욕심과 질투에서 비롯한다는 것이 재미있다. 그 단순한 범행동기에 비해 교묘한 범행자체, 그리고 기막힌 추리력이 재미가 있는데 그 모든 것 보다 나는 범인과 주변 인물들, 사건을 해결해 내는 사람의 심리를 살펴보는 일이 더욱 재미있다.
등장 인물들은 극한 상황에서 사랑이나 도덕심, 정의감 보다는 어쩔 수 없는 인간 본능을 내보이기 마련이다.
세월이 세월이 지나다보니 낵 좋아하는 작가는 아가사 크리스티라는 것을 자연히 알게 되었다.
어릴적 읽던 샬록 홈즈 식 철저하고 치밀한 두뇌의 추리력 발휘보다는, 뜨게 바늘을 손에 들고 볼이 발그레하니 온화한 얼굴을 한 할머니 미스 마플이 순전히 여자 특유의 남에 대한 호기심으로 사건을 풀어 낸다는 식이 마음에 든다.
그녀는 어떤 사건이든지 호기심의 발동으로 관여하게 되고 그리고는 어떠어떠한 유형의 사람들은 주로 어ㄸ어떠한 행동을 하기 마련이라는, 오랜 경험에서 나온 통찰력으로 범인을 찾아내곤 한다.
바로 그 점에서 난, 그 이야기를 엮어내는 아가사 크리스티에 감탄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주변 사람들과 일상생활에서 늘 벌어지는 문제들(싸움)을 대할 때에 나도 마치 미스 마플과 같은 시각으로 사건을 객관화 시켜본다.
새로 사귄 사람이 어떤 행동으로 날 당화예 할 때가 있다. 그러면 난 예전에 알던 그와 비슷한 유형의 사람과의 경험을 살려서 그 사람의 성격과 행동을 판단해 본다.
재미있게도 밋 마플의 '이런 사람은 이런 행동을 하기 마련'이란 추리의 적용은 의외로 잘 맞아 떨어지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또 가정에서나 친구 사이, 그 외 사회집단 속에서 흔히 일어나는 크고 작은 불협화음도 탐정 소설의 버맹 동기처럼 거의가 다 개인의 욕심과 질투에서 시작된다는것, 그리고 그 악한 본능을 은폐하기 위해 교묘히 복잡한 이론과 지식을 총동원시켜 겉으로는 심각한 사상의 갈등처럼 보이게 한다는, 내 나름대로의 결론도 추리소설을 많이 읽은 덕택에 터득했다. 사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인간은 실생활과는 터무니 없이 다르게 과장된듯이 여겨지는 탐정소설의 등장 인물들 처럼 본래가 악하게 태어난 것이 아닌가 하게 된다.
이런 망ㅁ으로 나는 부부싸움도 고부간의 갈등도 친지와의 다툼도 또 어떨땐 형제지간의 문제까지도 풀어본다.
나와 상대방이 갖고 있는 단순한 본능(욕심, 질투) 이 문제의 핵심인 것을 알면 문제는 쉽게 풀리고 마음이 편해지곤 하는 것이다.
오늘도 기차 속에서 세번이나 자기 ㅂ인을 살해하려다 오히려 자기가 죽고마는 이야기와 남편 있는 여인을 소유하려고 그 애인마저 ㅈㄱ여버리는 코믹한 추리소설을 재미있게 읽으며 출근을 했다.
Thursday, August 1, 2019
27 스트리트/ 친정 어머니와 '봄'
1992년
드디어 5월.
‘화창한 봄날’이란 말이 어울리는 계절이 되었다.
촌스럽기까지한 노란색의 개나리와 하얀 목련이 흐드러지게 피기까지 올 봄은 내게 참 어렵게 찾아왔다.
사실 그 동안 ‘솔솔 부는 봄 바람 쌓인 눈 녹이고, 잔디 밭에 새싹이 파릇파릇 나고요….’하는 고향의 봄을 잊고 살아왔었다.
씨 뿌려 놓고 오시겠다는 것을 순전히 내 욕심만 생각하고 이왕 오실건데 좀 빨리 오시라고 재촉하여, 지난 2월에 오신 친정 어머니는 오시면서 부터 봄을 기다리셨다.
겨울당ㄴ 눈도 없이 포근했던 2월에는 어서 춘 3월이 오기를 기다리셨고, 3월이 되자 계혹 내리는 눈에 언제 봄이 오냐고 기다리셨다.
하루 이틀 햅칭에 성급히 화분들을 내다 좋으시고는 다시 화분을 들여 오시곤 하면서 무척 우울해 하시고 속상해 하셨다. 또 화도 내셨다.
4월이 되어도 날씨가 춥기만 하자 “대동강 물도 녹을 때가 지났는데…” “지금 쯤은 씨를 뿌려야 하는데…” 하시며 하루 하루를 세듯이 날씨를 살피셨다.
그러니 나는 어머니께서 아이들을 봐 주시는 덕에 회사를 다니는 처리라 덩달아 매일 어머니랑 같이 오늘은 몇 도나 되는지, 왜 이렇게 봄이 안 오는지 신경을 곤두 세우면서, 날씨와 어머니 기분을 함께 살피게 되었다.
비가 오고 춥고 하다가 어쩌다 따듯한 날은 “ 엄마 걱정 마. 오늘은 날이 따듯할 거래. 어머 정말 봄 날씨네! 이제야 뭐 더 춥겠어?” 하고 먼저 어머니의 기분을 맞추곤 했다.
어느 날은 어머니께서 오히려 “ 얘 걱정 마라. 나 이제 봄 안 기다리기로 했어.”라며 날 위로해 주셨다.
내 평생 올해 처럼 봄을 기다려 본 적이 없다.
그러다 보니 눈과 찬 바람 속에서 딱딱한 땅으로부터 삐죽이 솟아 나는 풀잎도 발견했고, 마른 가지에 눈에 보일듯 말듯 물이 오르는 것도 알아 챌수 있었다.
아직도 날은 으시시 춥지만 어머니는 요 며칠 사이 부쩍 자라난 부추를 뜯어 부추전을 맛있게 만들어 주셨다.
어쨋던 봄은 기다렸거나 안 기다렸거나 신비한 자연의 섭리대로 왔다.
이 봄은 소녀ㅓ럼 감상적이신 우리 어머니가 한껏 즐기실 수 있는 명실공히 “봄’이 되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비록 한국에서 맛 보던 푸른 들판에 아지랑이 피어 오르던 그런 봄은 없었으나, 이나마 갑자기 여름이 되어 버릴까 미리 걱정이 되기도 한다.
27 스티리트/ 신선한 충격과 큰 꿈
1992년
신선한 충격과 큰 꿈
새벽에 전화 벨이 울린다.
“나,OOO야, 기억나니?”
기억이 안난다. 상대방은 열심히 자신을 설명한다.
아아- . 어렴풋이 그 이름이 얼굴이 떠 오르는 듯 하다. 같은 과가 아닌 대학 동창이다.
네가 뉴욕에서 열심히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어. 실은 …” 하면서 그 동창은 결국 뭘 좀 알아봐 달라고 한다.
이 곳에 살면서 한국에 있는 친지들로부터 뭔가를 ‘알아봐 달라’는 부탁을 많이 받는다. 어떤 어떤 상품의 시장성 같은 것을 문의해 오기도 하지만, 주로는 대학이나 예는 관계의 학교에 관해서이다. 요즈음 ‘조기 유학’이 유행이라 기숙사 있는 사립 중고등학교를 물어오는 경우도 많다.
나도 10년 전, 친구가 학교를 알아보고 서류를 보내줘서 미국엘 왔다.
이 새벽에 온 전화의 내용은, 미대를 나오고 고향에둘아가 아이 키우며 살림하면서 한편 미술 학원도 운영하며 착실히 그림 그리고 전시회도 종종 열어 왔었는데, 이제 한계를 느낀다고ㅎ했다. 그래서 이제 좀 더 넓은 세상에 나와, 새로운 것을 보고 피부로 느끼며, 새롭게 자신의 작품 세계를 펼쳐 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는 사람 하나 없고, 뉴ㅠ욕에 대해 하나도 모르니까 좀 알아봐 달라는 것이었다.
이 경우 나는 40이 다 된 가정주부인 동창생의 새롱ㄴ 세ㅖ를 경험하려는 뀸을 높이 평가, 1, 2, 3…. 번호를 붙여가며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심히 써서 보냈다.
또 한번은 내가 아는 사람이 잘 아는 어느 지방 미술교사인데, 자신의 작품에 신선한 충격을 주기위해, 세계 미술의 중심지인 뉴욕에서 그것도 꼭 그리니치 빌리지나 소호에서 지내고 싶으니, 방학동나 한달간 있을 장소를 찾아 달라는 부탁을 받았어다. 참 용감한 독신 여성의 자유가 부럽기도 하여, 그 험한 소호 지역에 영어 한 마디 못하는 여자가 지낼 곳을 알아 보느라 사방팔방 전화해 보며 애쓴 적이 있다.
그런데, 최근 받은 부탁 편지는 도저히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아무런 답을 봇하고 있다.
‘... 내가 잘 아는 가정인데 막내 딸을 미국에 보내, 국민학교에 들어가기전 유치원 과정을 미국식으로 받게하여, 어린 나이에 보다 더 큰 꿈을 키워주려고 한단다….. 부유한 집이니 부모가 한 달에 한 번 쯤 미구에 가서 아이를 만나 볼 예정인데… 한 1년 아이를 친 딸 처럼 데리고 있어 줄 가정을 좀 알아봐 주렴. 혹 네가 좀 만타 줄수는 없는지?...’였다.
6살 아이를 어떻게 홀로 미국에 보내겠다느 ㄴ생각을 할 수가 있을까? 그 부모에게 기가 질려 답장을 못 보내고 있는 것이다.
세월이 엄청나게 바뀌고 특히 한국에서는 옛날의 10년이 요새 며칠이라는 것도 많은 면에서 경험을 하고 있다.
그러나 앞서가는 생각이 중요하고 ‘큰 꿈’과 ‘신선한 출격’ 다 참 그럴 듯한 말이기는 하지만, 6살 조기 유학? 좀 너무 했다.
27 스트리트/ 뉴욕에 살기 때문에
1991년
얼마전 ‘센추럴 파크’에서 폴 싸이몬이 노래한다(11월 5일)
는 소식을 듣고는 금방 “어머, 꼭 가봐야지. 어디 한국에서라면 꿈이라도 꿔 볼 일인가?” 하며 마음이 들떴었다.
그 옛날 <Simon and Garfunkel> 시절 부터 내가 얼마나 좋아한 가수인가…..
어두컴컴한 다방에 앉아 그냥 시간 보내던 대학시절이 생각나고, 친구들 얼굴이 떠오르기도 했다.
“얘, 나 폴 싸이몬 공연 봤다. 역시 많이 늙었더라…..”하며 자랑할 생각까지 했다.
그런데, 공연날이 목요일? 가족과 함께 여행을 떠나기로 한 바로 전 날이었다.
여름 내내 동네에서 하는 ‘데이 캠프’에만 보내고 애들 좋아할 일을 못해줘서 미리부터 벼루어 날을 잡아 두었는데, 옷가지 등을 챙기고, 김밥도 싸야지, 준비할 것이 무척 많았다.
그렇지만 폴 싸이몬은 일생에 한번 있을까한 기회인데, 게다가 “한번 같이 안 가볼래요?” 하고 아는 사람이 전화까지 걸어왔다. 갈등이 생겼다. 억지로라도 가볼까? 일찍 가서 자리 잡고 있다가 중간 일찍 나오면 되잖아. 정말 뉴욕 아니면 맛 볼수 없는 절호의 챤스인데. 그리고 내가 얼마나 좋아하는 가수인데 말야. 궁리를 했다. 궁리할 일이란 남편과 가족을 설득 시키는 일이었다.
분명히 못 마땅해 할 남편에게 구구절절 구차하게 말을 늘어 놔야 할 일에 그만 미리 지쳐버리는 기분이 들었다. 휴~. 수없이 많은 사람이 모일텐데, 오고 가는 차편은 또 얼마나 복잡할까. 암만 그래도 밤 늦게야 집에 오게 될거야. 관두지 뭐. 놓치고 사는게 한 두개인가, 어디.
그리고는 공연이 있는 날, 아침부터 비가 오락가락 하는 날씨에 공연히 창밖을 내다보며 신경을 쓰면서도, HBO에서 공연 중계를 해주는 것 조차도 놀러 갈 준비에 하도 바빠서 못보고 말았다.
뉴욕에 살면서 미국이니까, 더구나 뉴욕이기 때문에만 할 수 있고,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것들을ㅇ 한 껏 내 생활에 포함시키며 살아보려고 했다. 그래야만 아직도 내게는 어색하기만 한 ‘이민 생활’로 인해 당하는 외로움, 보고 싶고 만나고 싶고 얘기하고 싶은 가족들, 친구들을 멀리 둔 억울한 생활을 그나마 좀 보상하는게 된다고, 내 나름대로 생각해 낸 것이었다.
그래서 주말엔 한가한 시간을 내서 박물관에도 가고, 센투럴 파크 연못가에 앉아 쉬기도 하고, 소호나 그리니치 빌리지에 나가 구경을 하면서 재미있는 남미산 물건을 사 모으기도 하고, 브로드웨이 뮤지칼도 1년에 한 두번은 관람하며 또 뉴욕서 가꺼운 곳으로 단풍 들땐 허드슨 강 근처 쯤에 소풍을 갔다가, 돌아 오는 길엔 ‘앤틱 스토어’에도 들리며 그렇게 살고 싶었다.
친구랑 어느 오후엔 ‘웨스트 브로드웨이’ 찻 집에서 카푸치노 커피 한잔 마시며 얘기도 나누고. 또 매트 오페라는 …… 등등
잡지 책을 뒤적여서 안ㄴ 것도 많고 여기저기서 줏어들은 것도 많았다.
그런데 그게 잘 안됐다. 잘 안되는 정도가 아니라 꼭 해야 될 일조차 뒤로 미루며 시간은 어김없이 1주일 단위로 정말 꼭 책 장 들치듯 휙휙 지나가버리고 말았다. 이걸 깨닫기는 실은 오래 되었다.
그래도 아직도 <뉴욕> 잡지책을 꼬박꼬박 보면서 새로 나온 영화는 뭐가 있나, 또 어느 뮤지움에 특별 전시가 있는지를 찾아보고 달력에 표시를 해놓기도 한다. 물론 그 뿐이다.
처음에 내 뜻대로 생활이 되어지지 않음을 알았을 땐 이게 뭐람, 뉴욕에 산다고 뭐 다른거 하나 없고 하면 진정 화도 났었다.
그러나 아직도 그 꿈에의 희망은 버리지 않았다.
쉽게 시간을 내어 문화생활을 즐길 순 없지만 대신에 손쉬운 방법을 터득했다. 서울에서라면 결코 볼 수 없는 맨하탄 섬에 놓여진 수 많은 멋진 다리들을 감상한다든가, 하루 종일 60년대, 70년대 흘러간 팝송만을 하는 라디오를 들으며 옛날을 회상하다든가.
매일 아침 저녁 7번 트레인 유리창을 통해 바라다 보이는 맨하튼 빌 딩 술의 모습을 보는 일, 또는 오고가며 만나는 각 나라 사람들의 특징을 살펴보는 일 등은 분명 이곳 뉴욕이 아니면 해볼수 없는 일 아닌가.
1974년 1월 14일, 일간 스포츠
1974년 1월 14일, 일간 스포츠
아르바이트
아르바이트를 안 해본 대학생이 있을까?
흔히들 하는 가정교사 - 경기고 卒, 서울大, 경험 多, 책임지도, 입주 원 - 도 좋은 재미있는 아르바이트일지도 모른다.
내 경우 지난 어느 여름 웬지 아르바이트는 꼭 햐야될걸로 생각했다.
친구와 돈을 합쳐 그래도 전공분야를 해보겠다는 꿈을 갖고 염천교 가죽상회에서 쇄가죽(한마리)를 샀다.
좁은 방에 가죽을 펼쳐놓고 그 고약한 냄새를 맡으며 당시 아직 유행하지 않던 피터 막스의 별이며, 히피마크며를 그렸다. 파라핀 끓이는 연기에 기침을 연발하고 염색물감이 잘 안 먹어 붓뒤로 막 문질러대면서도 계속 라이오에 박자를 맞췄고, 드디어 외국 책을 보고 디자인한 가방이 만들어졌을 때 난 너무 좋아 흥분했었다. 팔아버릴 생각을 하니 아까왔다.
아주 잘 팔릴것 같았고 친구와 둘이서 그 많은 돈을 어떻게할까? 여행? 등록금에 보태자, 아니 밎천으로 하자, 의견은 계속 비약했었다. 그러나 사람들의 첫 마디는 “ 아유 비싸.”였다.
가격을 푹 내렸다. 오징어, 찐빵, 콜라라 값은 빼고라도 엄마한테 빌린 원금도 모자랐다.
기가 막혔다. 너무 허무했다.
그러나, 비참한 상태로 남은 가죽 조각들을 바라보다가 그걸 이용할 방법을 생각했다. 작은 지갑, 벨트, 시계줄…… 가격도 쌌다. 그런데 그 히피 마크와 별은 인기가 대단했다. 피터 막스 씨가 우리를 살려준 셈이다. 이대 앞 가게에서는 주문을 재촉하고, 우리는 신이 났고, 돈도 많이 생겼다. 정말 잘 팔렸다.
거리에서 우리가 만든 가방을 폼나게 메고 가는 사람을 보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고, 낡은 청바지에 별을 그린 벨트를 한 대학생을 보면, 뛰어가 “그건 내가 그린 거라오.” 말을 걸고 싶었고, 아케이드에서 홍콩제라고 바싸게 팔릴땐 어이가 없었고, 점점 여러가게에 유사품이 진열될 때 약이 올랐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온다. 좀 더 많은 지식과 실력을 쌓을 중요한 시간들을 낭비한건 아닌가 불안도 하고, 돈계상에 밝아진 것이 쑥스럽기도 하지만, 난 그해 그 여름 열흘간의 즐거운, 멋진 여행을 했었고 그것으로써 만족하고 있다.
Wednesday, July 31, 2019
기자의 눈/ 아직도 핫바지인가
2019년 1월 17일
아직도 여전히 핫바지
핫바지란 말이 무슨 뜻으로 쓰이던가? 구굴을 해봤다. 여러가지 해석 중에 <1. 솜을 두어 지은 바지. 2. 시골 사람 또는 무식하고 어리석은 사람을 얕잡아 이르는 말.>이라는 설명이 있었다. 바로 2번이 내가 찾던 뜻과 비슷하다. 여기에다 예의가 없다까지 덫 붙여야 한다.
이민 116주년을 기념하며, 대 뉴욕 한인회가 주최하는 제 59회 ‘코리안 아메리칸 갈라 ‘ 행사엘 갔다가, 화려한 플라자 호텔 로비를 걸어나오면서 떠오른 생각이 ‘한국사람 아직도 핫바지 못 벗는구나’ 였다. 사회인이라면 지켜야 할 가장 상식적인 사회규범을 아직도 배우지 못하고 여전히 핫바지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로컬 뉴스에만 집중하다보니,뉴욕 한인회 행사에는 참석해본적이 없었던 내가 이번에 한인회의 행사에 갈수 있었던 것은 가까운 친지가 상을 받게 된 때문이었다. 역사도 오랜 유명한 호텔에서 열리는 ‘대大’ 뉴욕한인회 행사니 만큼 무척 세련되었을것이라는 기대가 컸었는지 모르겠다.
흔히 이곳 한인들의 사고방식은 이민 올때 한국의 시대상에서 벗어나질 못한다고들 하는데, 400 여 명이 모인 이자리에서 가장 핫바지였던 사람은 , 오래 전 한국을 떠나온 이민자들이 아니라 며칠 전 한국에서 온 국회의원들이었다.
우선은, 뉴욕에 살고 있는 한인들의 잔치인 이자리에, 요즘처럼 심하게 나라가 둘로 나뉜 상황에, 한국 국회의원들을 초대된 것에 놀랐다. 더구나 몇몇 참석자들이 눈살을 찌푸리며 ‘빨갱이’라고 손짓을 한 국회의원은 다른 스피커들 보다 더 열열하고 길게 정치성 강한 연설을 늘어놓았다. 그는 과연 여기가 어떤 자리인지를 생각해보기나 한 것일까. 혹시 뉴욕 한인회 행사 참석을 해외여행의 건수로 잡아 온것일까. 그렇다해도 적어도 초대된 행사 성격에 충실했어야 하는 것 아닐까. 뿐이 아니다.
한국 뉴스를 통해 얼굴이 익은 5명의 국회 의원들은 연회장 한 가운데 길게 마련된 자리에 -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 앉아 있다가, 중간에 우루루 다 나가버렸다. 그 모습을 지켜본 1세, 1.5세, 2세 그리고 내 옆에 앉아있던 40대의 입양인 여성까지 모두 혀를 찼다.
이날의 하이라이트여야 할 이민자들의 수상식은, 연회장 뒤자리 테이블이 텅빈 상태에서 어수선 하게 치루어 졌다. 행사를 끝까지 지켜보지 않고 나가는 건, 한국에서 온 국회의원이나, 70년대 한국을 못 벗어난 일부 동포들이나 비슷했다.
그러나 한 가지 얻은 건, 남의 나라에 당당히 뿌리내리어 각 분야에서 독특한 재능과 끈기와 노력의 산 결과인 수상자들의 값진 모습을 볼수 있었던 것이다. 특히 어린 나이에 남의 나라 남의 가정에 와, 남으로 살면서 온몸으로 겪어낸 이야기를 진솔하게 들려준 나의 친지의 수상소감은, 직함에 맞지 않게 연예인이나 되는 듯 요란하게 차려입은 한인 인사, 자유당 시대를 방불케 하는 한국 정치인들, 식사하고 나면 의례 행사장을 떠나는 동포들, 이 모든 핫바지들 속에서, 은은하게 긴 울림으로 울려왔다. 한국 전쟁당시 그 누구 보다 헐 벗은 꼬마 핫바지였던 친지가 무척 자랑스러웠다.
기자의 눈/ 스페니시 엄마
2019년 7월 30일
스패니쉬 엄마
잔디 깍는 사람을 바꾸었다.
나무 주위를 북돋아주었다는 항목으로 꾀 많은 돈을 청구하길레 나가보니, 다 죽어 갈색이 된 향나무 밑 둥이에도 흙을 둥그렇게 파 놓았다. 불평을 하자 자기가 한 것이 아니라 자기 밑의 일꾼이 했다고 한다. 아 그 동안 가드닝 비지네스가 큰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불만스러운 일이 많던 차에, 동네 어느 집 잔디밭에 두명의 남자와 여자 한명이 열심히 일하고 있는 것을 보고 차를 멈추었다. 여자 정원사는 처음 봤다. 우리를 본 여자가 다가와 얘기를 듣고는 젊은 남자를 불러 스패니쉬로 말을 주고 받더니, 전화번호를 준다.
우리 집에 한번 오라고 한 날, 이번에는 우루루 4명이 왔다. 남편과 부인 그리고 두 아들이었다. 아버지는 전혀 영어를 못했고, 엄마는 좀 알아듣고는 무슨 말에나 웃으면서 대답을 하고, 20대 쯤의 아들 둘은 영어를 잘했다.
오케이 오케이, 값을 정하고 마당 일을 맡겼다.
아들이 잡초를 자르고 떨어진 나무가지를 바람으로 날리는 동안 아버지는 잔디를 깍고, 엄마는 쓰레기 봉지를 들고 아들과 남편 뒤를 따라다니며 뒷 처리를 했다.
남자들은 건축공사 판에서도 일하고 겨울엔 눈치우는 일을 하며 부인은 청소일을 한다고 했다.온 가족이 1년 내내 풀가동인 것이다. 전형적인 이민 가정이다.
나도 처음 이 나라에 왔을 때 얼마나 열심히 일을 했던가. 하루에 1시간만 더 있었으면 할 때가 있었다. 돈을 벌고 벌어도 학비가 모자라 허리끈을 졸라매던 시절. 이제 그 힘든 세월 잘 견뎌내고, 비교적 편안한 생활을 하는 줄 알았던 나는, 여름 햇볕에 남자들 틈에서 땀 뻘뻘 흘리며 일하는 여자에게서 문득 내 모습을 보았다.
우리 한인들이 비지네스를 하기 위해서는 스패니쉬들과 관계를 하지 않을수가 없다. 알고보면, 그들 중에는 자기 나라에서 고등 교육을 받은 사람들도 있고, 우리 한인들 처럼 그야말로 자녀들을 미국 주류사회로 진출시키려고 밤낮으로 애쓰는 사람들이 참 많다.
내가 알고 있는 에쿠아도르 여자가 딸이 대학을 간다고 했다. “축하해요. 어느 대학교?” 하자마자 ” NYU !”한다, 나도 모르게 ‘와우, 와우'를 연발했다. 기대하지 않았던 대학교 이름인 것이다. 이 여자는 처음 와서는 청소하는 일을 했고 그러다가 가게 종업원으로 일요일 없이 일을 하다가, 얼마전에 10 여년 만에 처음으로 가족을 만나러 에쿠아도르에 간다고 했었다. 그런가보다 했다. 그런데 딸이 NYU 간다고 하자 , 나도 모르게 그 여자를 다시 보게 되었다. 맞아, 은근히 자랑하고 싶어하는 저 모습이 바로 나 아니었던가?
여기 한국인들, 이민자를 한데 싸잡아 죄인 취급하는 트럼프 시대인 지금, 잔디 깍는 일하는 스페니쉬 엄마와, 청소부 일을 하던 스페니쉬 엄마와 무슨 별다른 차이가 있단 말인가. 얼굴 색으로 일괄 취급을 당하는데 말이다. 우리 한국인들이 이제는 잘 먹고 잘 입고 고급스런 문화생활을 한다고 거드름을 부릴 처지가 아닐 수도 있다. 어디까지나 눈총 받는 이민자다.
먹고 살자고 온 사람들의 어린아이를 따로 잡아 가두는 공포의 이 나라에서, 과연 ‘아메리칸 드림’이란 단어가 무슨 말인가 싶다.
기자의 눈/ 국기 누구 편인가
“국기, 누구 편인가”
미국 독립기념일이 눈 앞이다.
‘독립’하면 무엇보다 먼저 국기가 떠오른다.
우리나라 서양화의 선구자이신 김병기 화백이 오래 전에 들려주신 이야기가 마치 영화장면처럼 그려진다. 광복이 되던 다음 날 평양에서 기차를 타고 서울로 가실 때, 정거장 마을마다 사람들이 일장기의 빨간 동그라미를 태극문양으로 바꿔 그린 임시 태극기를 흔드는 것을 봤다고 하셨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의 송기정 씨 가슴에 달린 일장기가 얼마나 한국인의 가슴을 저리게 했었는가.
요즈음은 태극기하면 태극기 부대가 떠오른다. 우파, 아니 극 우파다. 태극기를 들고 박근혜 전 대통령 얼굴과 트럼프 얼굴을 들고 북을 치며 행진하던 모습이다. 지난 봄 어머니를 뵈러 서울에 간 그 주말에 명동에 나갔는데, 광화문서부터 교통을 차단시키며 꾕가리를 치며 내 앞으로 지나간 태극기 부대다. 지금 홍콩의 시가지를 메운 시민들의 데모가 온통 뉴스를 장식하고 있지만, 내가 경험한 이 태극기 부대는 뉴스에도 나오지를 않았고, ‘양쪽이 붙어서 끝장을 내야지"하며 끌끌 혀를 차던 택시 운전사의 불평 정도였다.
태극기는 우리나라의 상징인가 아니면 우파의 상징인가.
그렇다면 미국 국기 성조기는 어떤가? 미국의 상징인가 아니면 트럼프 지지자의 상징인가.
한국에선 삼일절이나 광복절에나 보던 태극기에 비해서, 미국에 오자마자, 맨해튼 5번가 34가 - 얼마전 문을 닫은 -로드 앤드 테일러(Lord & Taylor) 백화점 빌딩에 쭈욱 걸린 성조기를 보며, 미국은 자기나라 국기를 온갖 곳에 참 잘 이용하는구나 했었다. 대학 다닐때 히피의 상징인 피스 마크와 함께 미국 국기를 이용한 여러가지 장식용 상업 상품들을 많이 보긴 했었다. 우리는 태극기라면 마치 집안 어른 대하듯했는데 말이다.
딸애가 강아지를 사러 구글로 찾아 필라델피아 시골에 도착해보니 어느 집에 미국 남북전쟁 당시에 남부를 상징하던 미국남부 연합기(Confederate Flag)가 달려 있어서 깜짝 놀랬다고 했다. 숨어있던 백인우월주의자들이 나 보란듯이 나타나는 현실에 겁이 났던 것이다.
미국 국기를 상징으로 들고 나선 트럼프가, 이제는 계속해서 미국을 위대하게 하자고, 다음번 대통령에 출마하는 모양이다. 성조기에 대한 경례를 마다하는 흑인 운동선수에 대해서도 문제가 많았듯이, 미국도 성조기가 정치 성향을 가르는 것이 되어버린 것도 문제인듯 하다.
프랑스에서 열리고 있는 여자축구 월드컵에 미국 선수를 응원하는 미국인 남녀노소들이 얼굴에 성조기를 그리고 프랑스 작은 마을 거리에서 성조기를 들고 다니는 모습이 참으로 신선해보였다. 며칠 전엔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한지 50년이 된 기념 방송을 보며 달 표면에 미국국기가 달리는 순간 미국 대통령이 통화를 하는 장면에 새삼스럽게 감격했다.
“국기는 바로 저 것인데. ” 독립전쟁이나 운동경기에서나 어떤 형태로든, 국기는 국민을 상징해야 것인데….
하이웨이에서 성조기를 차에 달고 다니는 사람을 보면, 언뜻 저사람 혹시 이민자 싫어하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민자로서, 암만 미국 사람이 다 되었다해도,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우리를 어떻게 볼까를 생각하면 겁이 난다. 저것들이 언제 무슨 짓을 할까….하는.
어떻게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는 것일까.
그 모습만으로도 한 나라의 긍지와 자부심을 나타내는 국기가 한 쪽으로 일그러져 보인다.
2019 6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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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도 미동부한인문인협회 문인극 대본/지상의 양식 -앙드레 지드
앙드레 지드 지상의 양식 등장인물 : 앙드레 지드, 나레이터, 시인 1, 2, 3, 4, 5, 6 …가수, 무용수 장면 : 거리의 카페 …테이블, 의자, 가로등… 정원 ….꽃, 화분, 벤치 숲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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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렌치 레드 와인 식초 불란서 아가씨 알리스가 항아리를 조심스레 상에다 내려 놓는다. 하얀색 사기 항아리 한쪽에는 초록색 닭이 다른 쪽에는 붉은 색 닭이 그려져 있다. 나무 국자로 휘 저어 커다란 표고 버섯 뚜껑 같은 덩어리를 꺼내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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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2/11 자신을 소개할때 호칭은 생략해야 한국에서 온 사람을 데리고 멀리 늊지에 사는 사람을 만나러 간적이 있었다. 서로가 초면이고 초행길이라 무슨 색 무슨 차라고 미리 알렺고, 톨게이트에서 만나 거기서 부터 차를 쫗아가기로 했었다. ...